서브메뉴

본문

노을
노을
저자 : 김원일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판년 : 1999
ISBN : 8932008817

책소개


6.25의 참담한 체험과 현재의 상황을 병치시키면서 사상의 분열과 민족 분단의 비극을 밀도 있게 다룬 문제작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인식한다.

목차


서산마루를 가득 채우며 노을은 붉게 번지고 있었고, 수백 마리의 갈가마귀떼가 어지럽게 원을 그리며 노을 속 깊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대장간의 불에 달군 시우쇠처럼 붉게 피어난 노을을 보자 엄마를 만나 가슴 뛰던 기쁨도 어느덧 사그라지고, 나는 그만 노을에 몸을 던져 한줌 재로 사위어버리고 싶을 만큼 못 견디게 울적했다. 죽고 싶었다. 죽음이 두렵기는커녕 죽는 순간이 지극히 평안할 것만 같았다.

나는 타박타박 걸으며 혼잣말로 외쳐보았다. 아, 노을이 곱다. 아부지는 밉다. 아부지가 노을색이라면 엄마가 하늘색일까. 그러면 두 가지 색을 보태모 보라색이 되겠지. 그런데 엄마나 아부지는 왜 합쳐지기를 싫어하노. 노을은 죽고 싶도록 저렇게 아름다운데 말이다. (<노을> 제4장)

아름다운 보라색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싫고 무서운 것은 보라색이 하늘색을 연상시키기보다 죽음의 핏빛, 공포의 어둠을 생각키우기 때문이다. 작품 <노을>은 과연 이 핏빛과 어둠빛으로 뒤덮인 광란과 살육의 세계를 과거로 갖고 있다. 백정인 아버지는 먹기 싫은 소의 생피를 마시게 했고 그것을 만류하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 피빛 멍이 들었으며 그 아버지는 폭동의 선봉장인, 삼촌과 외삼촌은 거기에 말려들어간 '빨갱이'였고, 시뻘겋게 열이 오른 아버지는 도수장에서 '반동'들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