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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저자 : 김용택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판년 : 1997
ISBN : 893647037X
책소개
시인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온 이웃들의 소박한 모듬살이와 결고운 마음,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오늘의 현실에 섬세하게 반추한다.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더디게 그러나 행복하게 가꾸며 살았던 한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정 넘치는 정겨운 문장에담았다.
목차
세월이 흘렀다. 나는 책을 어느정도 맘놓고 사보게 되었다. 담배는 90년엔가 끊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찾으니 담배가 없었다. 어머니께 물어보았더니 어머니 역시 떨어지셨단다. 우리 동네 담배가게에 가보니 거기도 떨어졌단다. 에이 이 더러운 담배, 내가 담배를 피우는가 봐라. 나는 침을 길바닥에 퉤퉤 뱉고 밥 먹고 학교길을 나섰다. 이층 교실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이든 주사님이 담배를 멋지게 피워물고 지나가고 계셨다. 그때 '주사님, 주사님' 하고 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담배 한 가치를 얻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빠는데 아침부터 여지껏 참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른 변소에 가서 똥통 속에 담배를 던져버렸다. 그 뒤로 나는 다시는 담배를 입에 물지 않았다. 흡연은 습관이었다. 그건 멋도 심심풀이도 아니었으며 화를 삭이는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냥 습관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하루에 한갑 반에서 두갑 정도를 피웠다. 아침에 일어나 피우고, 밥 먹고 피우고, 학교길에서 피우고, 징검다리 건너며 피우고, 한시간 끝나면 피우고, 시작하기 전에 피우고 이런 식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습관의 단절은 힘이 든다. 나도 힘이 들었다. 담배를 끊은 후 3년까지 꿈에서도 담배가 피워졌다. 담배를 한 가치 물고 불을 붙여 한번 빨고는 기분이 나빠 던져버리고 깨어보면 꿈이었다. 지독한 습관의 중독인 것이다. 걷다가 자전거 타보면 걷기가 싫어진다. 그러다 오토바이 타면 자전거는 죽어도 못 탄다. 이게 습관이다. 돈에 물든 습관이 제일 무섭다.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은 욕망을 부른다. 욕망이 충족된다면 그것이 무슨 욕망이겠는가. 욕망은 점점 크고 거대해진다. 크고 거대한 것들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행복을 건다. 봄이면 피어나는 저 이쁜 풀꽃들은 보며 나는 행복하다. 내 소원은 다 이루어졌다. 나는 소원이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