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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프스키와 뒤러 (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
파노프스키와 뒤러 (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
저자 : 신준형
출판사 : 시공사
출판년 : 2004
ISBN : 8952730348

책소개


패러다임의 형성 : 파노프스키와 뒤러의 대화

I부. 그림 읽기: 미술사와 지성사

1. 아이코노그래피와 아이코놀로지
2. 레비스트로스, 프로이트, 탐정 뒤팽: 실마리에서 구조로

II부. 그림 안으로: 종교적 주제

3. 그림을 읽는 성모 마리아
4. 만인의 순교자
5. 그리스도의 기사

III부. 그림 안으로: 인문주의적 주제

6. 번민하는 헤라클레스
7. 멜랑콜리아

IV부. 그림 밖으로: 인식과 권력
8. 다시 아이코놀로지: 세계를 보는 방법으로서의 그림
9. 다시 뒤러: 파노프스키가 멈춘 곳으로부터
10. 패러다임, 아이코놀로지 그리고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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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보는 방식’을 규정해버린 거인의 패러다임, 그리고 패러독스

도상해석법의 논리적 결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대개의 안티-아이코놀로지스트들과는 달리, 저자는 미술사 외적인 차원으로 한 걸음 물러나 거장의 인식세계를 조망한다. 그 결과 그림의 심층에 숨겨진 ‘의미’를 추구하는 파노프스키의 방법론이, 신화의 내적 구조에 주목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나 꿈의 이면을 분석한 프로이드의 심리학, 그리고 증거로써 사건 전모를 밝혀내는 E.A.포의 추리소설과 구조적 유사성을 띠고 있음이 밝혀진다. 의미와 상징에 천착하는 그림 독법 역시 20세기 전반 서구의 거대한 지적 흐름이며, 아이코놀로지는 바로 이 시기의 인식론적 문화유산이다. 이는 곧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순수학문적 방법론으로 세워진 아이코놀로지가 당대 서구인들이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결부되어 있음을 뜻한다.
미셸 푸코는 근대 학문의 지식체계가 지닌 권력지향적 속성을 ‘담론(discourse)'이란 개념으로 규정하고,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진리 탐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파노프스키의 연구도 마찬가지다. 파노프스키는 이탈리아의 미술을 르네상스 미술의 캐논으로 설정하고, 뒤러를 북유럽에 이탈리아 미술을 온전히 전달해 정착시킨 영웅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르네상스 미술은 숭고하고 엄숙한 종교적, 인문주의적 이상을 표현하는 것에 국한되었고, 당연히 그의 영웅 뒤러는 그런 르네상스 미술의 이상을 그려내야만 했다.
파노프스키가 생각한 르네상스란 19세기의 부르크하르트나 러스킨이 퍼뜨린 르네상스관-위대한 유럽문화의 절정으로서 제3세계의 문화보다 우월한 르네상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의 관점은 정점을 향한 선형적 발전을 인정한 헤겔 식의 목적론적 역사관의 면모를 지닌 동시에, 하나의 방법론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과 정신적 경향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거대 역사’를 추구했다. 결과적으로 파노프스키의 방대한 연구 성과와 어마어마한 학문적 영향력이 이런 편협한 관점을 이론적으로 세련되게 뒷받침하며 고착시킨 셈이다. 그야말로 파노프스키는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견고한 패러다임을 제공한 것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수단으로 봉사한 인류학과 마찬가지로, 찬사 일색인 르네상스관은 유럽이 제3세계에 비해 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우리에게 주입했다. 그것도 아주 우아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파노프스키의 업적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럽중심주의를 설파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럽인에 의해 쫓겨난 유태인 파노프스키가 가장 유럽적인 미술이라는 르네상스 미술 연구의 초석을 세웠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치스에 쫓겨 독일을 등지고 미국에서 영어로 학문해야 했던 유태인 파노프스키가 독일 미술의 영웅을 주목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곳에선 더없이 불운했던 유태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뒤러에게 투사해서 독일인이, 유럽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그토록 그가 정신적으로 동일시했던 뒤러가 사실은 변방 헝가리 이민의 후손이었고, 자신이 상정한 르네상스의 이상에 딱 들어맞지도 않았다는 아이러니는? 파노프스키가 알고도 모르는 척 외면한 르네상스 미술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진정 르네상스 미술은 모든 미술의 정점일까?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관념적 해석에 균열을 내는 저자의 지적 탐험은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갈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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