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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저자 : 트레이시 슈발리에
출판사 : 강
출판년 : 2003
ISBN : 8982180575
책소개
네덜란드 정부가 세계적인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 보다도 더 아낀다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이 책은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명화 '진주 귀고리 소녀'를 토대로 베르메르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고 있는 소설이다. 정확한 미술사적 지식과 17세기 네덜란드 도시 '델프트'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꼼꼼하게 복원되어 있음은 물론, 작품 속 소녀를 햇살 아래 불러내는 작가적 상상력과 수완 또한 돋보인다.
작가 슈발리에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 대한 치밀한 복원과 정확한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그림 속 소녀를 세상의 햇살 아래 불러내는 놀라운 소설적 상상력을 선보인다. 물감의 제작, 빛의 사용, 카메라 옵스큐라의 활용, 인물과 배경의 배치 등 한 편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의 정밀한 보고서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델프트의 운하와 골목골목, 시장과 길드, 집 안의 세세한 풍경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풍속을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인다.
작가는 이 세밀한 풍속화를 바탕으로 주인과 하녀, 화가의 모델,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마주선 베르메르와 소녀 두 사람이 예술과 삶 사이에서 벌이는 아슬아슬하고도 열정어린 드라마를 빚어나간다. 색채가 뿜어내는 눈부신 빛의 세계에 사로잡히지만 화가이 차가운 욕망에 부딪쳐 끝내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한 소녀의 내밀한 초상은, 베르메르의 그림만큼이나 좀체 시선을 떼기 어려운 매력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책에는 소설 내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베르메르의 원색 도판 22점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아울러 책 말미에는 '작가 인터뷰'를 통해 이 소설과 관련된 궁금증을 함께 풀어놓고 있다.
목차
내 의자로 그가 걸어왔다. 턱 선이 죄어들어 오면서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내 귓볼을 어루만졌다. 숨이 막혔다. 마치 물 속에서 숨을 멈추고 있는 것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부풀어오른 내 귀를 문지르던 그가 귓볼을 팽팽히 당겼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귀고리의 고리를 잡고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이 지나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턱과 목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얼굴 선을 따라 뺨으로 닿았을 때 눈물이 넘쳐흘러 그의 엄지 손가락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엄지로 내 아래쪽 입술을 만졌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소금 맛이 났다. 두 눈을 감자 그의 손가락들은 나를 떠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젤 앞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팔레트를 들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귓불에 매달린 진주의 무게 때문에 귀가 타는 듯했다. 목에 닿았던 그의 손가락들과 입술 위에 놓였던 그의 엄지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침내 그가 움직였다. 뒤로 다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다른 한쪽 귀고리도 달도록 해라." 그는 다른 쪽 귀고리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그림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요?" 마침내 입을 뗐다. "어차피 다른 쪽은 그림에 나오지도 않는데.."
"양쪽 모두 달도록 해. 한쪽만 하는 것은 웃기는 연극이야."
"하지만...다른 쪽 귀는 뚫지 않은걸요." 내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그럼 뚫도록 해야지." 그는 계속 귀고리를 들고 있었다.
손을 뻗어 귀고리를 잡았다. 그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향유와 바늘을 가져와 다른 쪽 귀를 마저 뚫었다. 나는 울지도, 기절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오전 내내 양쪽 귀룰 뚫은 채로 앉아 있었고, 그는 보이는 쪽의 귀고리를 그려 넣었다. 그가 볼 수 없는 다른 쪽 귀에서는 불로 지지는 듯한 아픔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