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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저자 : 이해경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02
ISBN : 8982816119

책소개


이해경 장편소설.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소설쓰기와 관련된 본질적이고도 다양한 문제 의식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경쾌하게 그려낸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 실직한 뒤 소설을 쓰라는 아내의 강권에 밀려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주인공과 그 주변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쓰려는 소설, 쓰고 있는 소설, 쓰다 만 소설, 소설을 쓰는 중에 읽는 소설, 인용하는 소설, 쓰지 못하는 소설 등 수많은 텍스트들로 미로를 이루기 시작하는데..

목차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 그리고 제5회 [숲의 왕]의 김영래로 이어지면서 '대형신인'의 산실로 자리잡아온 '문학동네소설상'이 제8회 당선작으로 이해경 장편소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를 선보인다. 본심 심사는 김윤식, 김화영, 오정희 세 분이 맡았다. 지난 6,7회 수상작을 내지 못한 만큼 걸출한 신예 탄생에 대한 기대와 수상작 선정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컸으나, 세 분 심사위원은 "탄탄한 저력"을 갖추었다 판단되는 이해경씨의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는 위기에 놓인 한 남자에 대한 얘기. 이 남자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구도도 비밀의 결사도 절대정신도 아닌 '소설'이라는 괴물이었다. 말을 바꾸면 소설이 바로 절대정신이며 비밀의 결사이며 구도 자체였다. 요컨대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는 확실하다. 작가의 통제력 덕분이리라. 이 통제력이 소설을 질식시킬지 아니면 숨통을 열게 될지 두고 볼 만하다. ―김윤식(문학평론가, 명지대 석좌교수)

처음부터 끝까지, 오랫동안, 지칠 줄 모르고, 일관되게 이끌어나가는 지구력과 돌파력은 장차 소설쓰기의 장거리여행을 보증하는 역량이다. 또한 그 문장 구성의 치밀함에 있어서도 신뢰가 느껴진다. 이 작가의 탄탄한 저력을 굳게 믿는 바이다. ―김화영(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그에게 소설쓰기는, 아니 소설을 쓰느라 끙끙대는 그 과정들은 과거로의 여행이자 삶의 길찾기, 방향 잡기에 다름아닐 터이다. 남이 쓰는 소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그러나 씌어지지 않는 소설 속에 갇혀서 좌충우돌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쓴웃음과 함께 가슴 찡한 아픔을 자아낸다. 작품의 긴 호흡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 작품 전편을 흐르는 건강한 해학성, 상처와 환멸을 넘어선 따뜻하고 넉넉한 시선이 보다 큰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으로 여겨진다. ―오정희(소설가)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는 직장을 그만둔 '그'가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소설을 쓰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얼핏 무거운 주제의 예술가 소설이 되리라는 독자의 짐작은 채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이내 여지없이 깨어진다. 고뇌에 찬 예술가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좌충우돌 대리 인생(주인공은 누구보다 '대리'라는 직함을 아끼고 사랑해, 과장으로 진급할까 걱정하던 인물이다), 평범하다 못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생활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회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규인 여섯시 퇴근을 철칙으로 여기고 칼퇴근을 하다가 상사에게 밉보이고, 또 그런 상사의 나무람에 모두들 퇴근할 때 혼자 남아 야근을 하는 열의를 보이다가 동료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회사의 변덕(묵묵히 일하라 해서 일만 하면, 일을 만들어서 하지 못한다 하고, 또 창조적인 아이디어만이 살길이라 해서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쓸데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하라 하고……)에 못 이겨 사표를 내면서도 며칠간의 유예기간이 있으리라 생각한 '그'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는 갑자기 소설가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아내에게 뭐라 말할까 고민했던 '그'에게 아내는 잘됐다며 집도 처분하고 "핸드 헬드 피씨" 데이빗(아내가 붙여준 별칭이다)을 사주며 소설을 쓰라 한다. 처음 아내가 '그'에게 반한 것도 고등학교 교지에 실린 '그'와 동명이인이 쓴 소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물론 '그'는 사실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그'의 소설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소설가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는 아내가 사준 데이빗을 들고 날마다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고…… 도무지 소설쓰기가 막막한 '그'는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으며, 첫 문장을 장식할 근사한 문장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그녀'('그녀'와는 늘 "우연히" 만나게 되는 "운명적인" 관계다)를 만나게 된다. 마침 '그녀'는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었고, 컴퓨터가 없다는 '그녀'에게 '그'는 낮 동안 데이빗을 빌려주게 된다. 낮 동안에 쓴 '그녀'의 소설은 고스란히 데이빗에 저장이 되어 있고, '그'는 자신의 소설쓰기는 안중에도 없고. '그녀'와의 만남이 즐거울 뿐이다.

그러나 데이빗에 저장되어 있는 소설 「어떤 만남」을 아내가 몰래 보게 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진다. 아내는 '그녀'의 소설이 '그'의 소설인 줄로만 알고 소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새 '그녀'와 아내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된 '그'는 서서히 소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이 끝나면 '그녀'와의 만남도 끝. 이제 그녀와 헤어질 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이 유쾌한 예술가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손정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는 소설쓰기와 관련된 본질적이고도 다양한 문제의식을,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신인답지 않은 문장력과, 기존 소설 언어에서 보면 낯선 구어체 문장의 도입이 그것을 가능케 한 듯했다. 이른바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서로 교차되고 맞물리는 각각의 텍스트들은 항상 다른 식으로 굴절되어 도입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텍스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치밀하고 발랄하고 경쾌한 이 작품 속에는 소설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이 싸구려 소품 같은 현실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풀어나가고 있는, 이 수상한 소설의 작가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그려나가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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