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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
저자 : 홍세화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
출판년 : 2003
ISBN : 8984311014
책소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의 저자가 4년간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모음집. 파업에 유독 알레르기를 보이는 집단들을 향한 '불편하지만 지지합니다'를 읽으면 그가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는 "우리는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고 했던 알베르 카뮈를 인용하면서 노동자 파업에 대해 무조건적인 알레르기를 보이는 거대 언론과 일부 국민 정서에 일침을 가한다(이 책이 출간된 2003년 8월 현재에는, 이 글에 대해 또 어떤 논란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또한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그 '국익'은 동물왕국의 국익이다"라며 '노무현'을 배신한 '대통령' 노무현을 비판한다.
신문연재라는 지면의 제약이 있긴 하지만,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고 사회 진보를 전망할 수 있는' 녹녹치 않은 깊이가 있는 글들에서 그의 고민과 성찰이 느껴진다. '빨간 신호등'은 '지켜져야만 하는' 약속인데도 그렇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들 또한 가감없이 실려 있다.
목차
고조되는 전쟁 위기와 사회귀족세력(극우정치인, 수구언론, 교회권력 등)의 반격에 개혁 세력의 ‘원칙과 소신’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한 편 한 편의 글은 우리 사회와 나를 들여다보고, 실천의 길을 찾는 ‘자기 성찰’의 거울로 빛이 난다.
자기성찰은 진보의 첫걸음
“모든 글쓰기가 어렵지만 칼럼 쓰기는 더욱 어려웠다. 우선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마감 사나흘 전부터 전전긍긍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또 전하고 싶은 내용을 한정된 매수로 담는 작업은 끝없는 고쳐 쓰기를 요구했다. 처음 다짐했던 대로 부족한 능력을 시간과 정성으로 채우려고 내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4년 동안 ‘빨간 신호등’과 씨름했다. 마치 오랜 동안 몸담지 못한 한국 사회를 ‘빨간 신호등’을 통해 치열하게 만나겠다는 듯이. 그래서인가, 지난 4년이 나에겐 그 이전의 20년에 비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빨간 신호등>은 1999년 5월부터 2003년 4월까지 2년 반은 프랑스에서 1년 반은 한국 사회에서 <한겨레>에 같은 제목의 칼럼으로 실리며 우리의 환부를 성찰한 기록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실천의 제언이다. 저자는 이번까지 네 권의 책을 내면서 논쟁을 불러오는 화두를 던졌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해야 한다는 똘레랑스부터, 질서에 우선해야 한다는 사회정의, 앵똘레랑스에는 앵똘레랑스로까지. 프랑스라는 거울과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지만, 우리 사회, 우리 의식을 좀더 구석구석까지 면밀히 비추고 있는 이번 책은 4년이라는 시간의 폭, 무엇보다 칼럼의 속성상 그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일상에서 해방을 가로막는 연속극과 복권 끊기부터 망국적인 국가주의 교육,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각축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희망을 불러오기 위한 진보정치 세력의 진로까지. 앞선 책의 연장선에서 여기서도 수구언론인 조?중?동의 조폭성,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신자유주의의 , 국가주의 교육의 폐해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지만, 어느 주제든 그 기저에는 주체(물론 개혁 세력이지만, 이 속에는 수구세력, 사회귀족도 포함한다)의 ‘자기성찰’(자기반성)이라는 화두가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다. 역사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이웃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성찰이 진보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낡은 의식을 깨뜨리고 파격하라
저자는 국가폭력, 수구언론, 충성정치, 부패사회, 전교조 죽이기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청산해야 할 의식과 지켜야 할(또는 부활시켜야 할) ‘건강한 의식’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먼저, 싸워서 청산해야 의식은 오만, 억지, 뻔뻔함, 지역주의, 국가주의, 선동, 야만성, 충성정치, 남성중심주의, 흥행주의, 체념과 냉소, 무지와 망각, 패배주의, 분열주의, 숨은 이기주의 등이다. 사회귀족, 극우세력은 이런 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권력을 유지하며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가 너무 오래되어서 아무도 의식 속에서 일상 속에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의식은 무엇인가?
저자는 자기성찰을 첫 번째로 꼽는다.
“브르디외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교수가 되었을 때 그 학교와 교수들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뒤 마지막 강좌에서 주제를 ‘피에르 브르디외’로 정해 자기 자신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요컨대 사회와 만나는 방식에 관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은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며 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글에서처럼 지식인의 자기성찰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인물들이, 힘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관철해온 자기성찰의 집단적 상실을 치유하고 진보를 밀고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성찰은 지식인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며 수구언론, 보수 정치인, 냉전의식을 북돋고 있는 교회세력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왜?’라고 묻는 성숙한 시민의식, 보기보다는 읽기, 명예로움, 토론의식, 연대의식, 사회정의, 다른 존재에 대한 인정(동성애), 원칙과 소신, 비판의식, 일상적 되돌아보기 등도 진보를 위해 지켜야 할 소중한 의식으로 꼽는다. 심지어 분열과 난상토론까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데, 우리 사회가 너무 오랫동안 고여 있어서 정의의 싹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 ‘깨뜨리고 파격하라’고 주문한다. 수구세력이 “마치 낡은 우물 안에서 배불리 먹고 살찐 개구리들이 영광스러웠던 과거와 오늘을 견주면서 파격 파격 개골거린다”해도 낡은 정치, 낡은 관행을 깨뜨리고 파격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