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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박상우 장편소설)
지붕 (박상우 장편소설)
저자 : 박상우
출판사 : 지식의숲
출판년 : 2005
ISBN : 8991762034

책소개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1999년)을 수상한 작가 박상우의 신작 장편소설. “나의 소설은 공간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공간 이동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조건을 되새기는 작업이 신간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공간 이동의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작가는 이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독산동 천사의 詩』 등을 발표하며 ‘샤갈의 마을’, ‘사탄의 마을’, ‘사람의 마을’이라는 수평 공간을 탐색하며 그 정점인 『내 마음의 옥탑방』에 이르렀다. 이제 작가는 수평적 한계에 해당하는 ‘지붕’의 실체를 들여다보며 그것을 넘어 열린 공간을 향해 뻗어나가는 수직적 탐색을 시도한다.

목차


신간에는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인간, 인간의 입장에서 올려다보는 신이 있고, 거기에서 우연과 필연, 창작과 창조, 연극과 연기가 탄생한다. 작가인 주인공 이인호는 ‘해피엔딩’이라는 익명의 인물의 지시에 따라 원고료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금액의 돈을 받고 희곡을 쓴다. 무(無)의 세계에 심오한 질서를 부여하는 일, 곧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 창조자의 영역이라면 해피엔딩의 지시에 따라 희곡을 쓰는 이인호는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드는 창작자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지붕은 인간의 삶을 규정짓는 중요한 경계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은 지붕에서 마감되고, 지붕을 벗어나면 곧바로 막막한 우주공간이 시작된다. 지붕은 인간의 삶을 규정짓는 매우 중요한 덮개이지만 의외로 막연하게, 일종의 관념으로 우리를 덮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일종의 위성 시각을 활용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요컨대 내려다보는 세상에 대하여.”

“소설의 주인공을 작가와 일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독법이지만 나는 줄곧 주인공의 모습 뒤에서 소설가 박상우의 모습을 보았다”라는 소설가 하성란의 말처럼, 작가는 희곡을 쓰고 있는 주인공 이인호를 통해, 창작의 고통과 창조자의 질서를 알지 못해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그래서 문득문득 인간의 뜻을 벗어나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작가인 이인호가 쓰는 희곡과 그의 주변에서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의문으로 가득 찬 친구 석모의 죽음이라는 사건들을 통해 표현된다.

또한 작가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간의 이야기 축을 구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창작에 관해 깊이 고민해 왔다. 이 고민은 요즘의 한국 작가들이 치열하게 도약을 시도하면서도 좀처럼 그 위에 올라서지 못하는 지붕과도 같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를 창작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여 함께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동시대적인 수평적 공감을 얻으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수직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다. 작가 박상우는 계속 말한다.

“창조자인 신의 질서가 개입된 필연을 생각하면 우연이 장난이 아니지만, 창조를 생각하면 창작에 동원되는 상상력이 가소롭기 그지없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과 신을 가름하는 ‘지붕’이다. 뿐만 아니라 지붕이 있다는 사실이 지붕을 고독의 터전으로 자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붕의식이 깨어나야만 지구에도 지붕이 있고, 태양계에도 지붕이 있고, 우주에도 지붕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요컨대 지붕은 우주만물의 구획을 가름하는 동시에 한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계인 것이다.”

아울러 신간은 수평에서 수직으로 이동하다 보니 다차원적 구성을 띠고 있다. 작가의 창작에 대한 고뇌와, 주인공 이인호의 시선과 동선을 따라가며 보여 주는 우연적이고도 필연적인 실존 세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쓴 시나리오대로 옮기는 양파껍질 같은 구조는 다차원적인 우주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내용 단위의 모든 문단을 한 줄씩 띄어 써서 각각의 독립성과 연관성을 충분히 살린 것 또한 구성의 변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상우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해피엔딩은 이러한 고뇌와 공간 이동이 지붕을 넘어 앞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파격을 작가 하성란은 기왓장 깨지는 소리로 묘사한다.

지붕이란 어디인가. 사면초가인 지붕 위에 서면 보이는 것은 온통 지붕들뿐이다. 지붕에서 다른 지붕으로 건너뛰며 길을 만들 수밖에 없다. 지상의 길을 벗어나 이제 박상우는 공간에 떠 있는 길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퍽퍽, 기왓장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박상우는 오랫동안 소설과 불화했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불화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과정에서 ‘행복한 글쓰기’의 문제와 맞닥뜨렸다.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이 아니라 작가와 소설과의 관계가 행복한 글쓰기와 고통스런 글쓰기를 가름하는 근원임을 발견했다. 결국 소설과 작가는 오랜 대치 형국을 풀었고,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찾기의 묘미를 잃지 않으면서 ‘가지 않은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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