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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살다
저자 : 최성현
출판사 : 조화로운삶
출판년 : 2006
ISBN : 8995757779
책소개
이 책은 저자가 온몸과 영혼의 무게로 자연농법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산속의 이웃들과 싸우고 화해하며 자연농법으로 흙에 바탕한 자급자족의 성공적인 경제를 이루며 산 스무 해의 온전한 기록이다. 여기에서 최성현은 일생을 걸고 일관되게 바래왔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목숨 가진 것의 바탕인 공기와 물과 땅과 숲을 지키기 위한 자신의 고민과 실천, 거기서 얻는 보람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포기 풀을 존경하고, 벌레 한 마리에게서 배우는 삶을 통해 그는 삼라만상이 모두 신성한 존재이며 그러한 신성함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목차
쌀만으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없다. 영혼의 배가 부르지 않는 한 쌀이 창고에 가득해도 나는 거지다. 씨앗을 모아 두고. 모내기를 하고, 물 관리를 하고, 잡초를 베고, 벼를 베고, 탈곡을 하고, 밥을 먹는 그 순간순간 맑게 깨어 있는 것이 거지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오늘 종일 벼를 베며 알았다. ―더 바랄 게 없는 산속의 삶(p.150)
우리 집에는 세가지 배추 밭이 있다. 하나는 사람, 하나는 배추흰나비 애벌레, 다른 하나는 토끼를 위한 밭이다. 땅을 갈지 않고 배추 심을 곳만 파고 배추 모를 심는 우리 배추 밭에는 배추만이 아니라 온갖 풀이 다 있다. 사람의 몫은 세 알 가운데 한 알이다. 대단한 양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람만이 아니라 새와 벌레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사이좋게 사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중략) 지금 인류는 전 지구적으로 생태 농업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생해 가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 가고 있다. 벌레만 죽고 인간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는 그런 농업은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해 가고 있는 것이다.―머리맡에 콩 여섯알을 두고 잠들다(p.22)
텃밭에 나와 강물 소리를 들으며 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강물에 모래가 씻기듯이 가슴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감자를 심고 모내기를 한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비로소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내게는 달리 길이 없다. ―더 바랄 게 없는 산속의 삶(p.150)
벼 타작을 하던 날, 고맙게도 날씨가 좋았다. 그날 내가 썼던 탈곡 도구는 20년쯤 전에 주로 사용되던 발탈곡기였다.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기계이다. 불행하게도 다음 날은 날이 흐렸고, 뛰어다니며 비설거지를 마치고 하릴없이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자니 속이 탔다. 그렇게 되면 한 해 농사가 망가진다. 고맙게도 그날은 바람도 나았다. (중략) 돈으로 따지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해마다 벼농사를 빼먹지 않을 것인데, 그 이상의 기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언제고 왁자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여름 내내 밤마다 반딧불 구경을 할 수 있는 것도 논농사 덕분이다. 싱싱하게 자라는 벼는 또 얼마나 내 눈길을 사로잡았나. 그것이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얼마나 흐뭇했던가. 그런 것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살 수 있으랴. 논에 미꾸라지를 사다 넣던 날 내 가슴은 또 얼마나 설레었던가. 그 뒤로 논을 볼 때마다 저기 그 미꾸라지들이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다. 어떻게 이런 기쁨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으랴!
올 한해도 우리는 당신 품 안에서 잘 살았습니다. 저는 올 한 해 진정한 뜻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제가 이미 부자인 것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남을 위하는 것이 저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분명히 알고 그렇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만물 속에서 신을, 한울님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가을에 하루는 잔치를 하자(p.36)
현금 수입을 위한 일과 아울러 가족이 먹을 농사를 병행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그런 삶은 먼저 현금 수입을 위한 일 그 자체에 여유를 줄 것이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에게나 세상에나 바람직한 일을 긴 안목에서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반농반X(p.54)
불의 신이시여 비의 신에게 전해 주세요. 다음 주에는 벼 타작도 해야 하고, 호박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어요. 더 늙기 전에 썰어 널어 말려 들여야 해요. 제가 호박 좋아하는 거 잘 아시지요. 그러니 다음 주에는 참아 달라고 비의 신에게 전해 주세요. 잊으시면 안 돼요. ―알고 보면 사이좋은 물과 불(p.175)
식물이건 동물이건 우리는 모두 해의 종족이다. 우리는 모두 다시 낮이 길어지며 햇살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제 힘껏 갈무린 태양 에너지로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나야 하는 것이다. 간혹 눈보라를 헤치고 손님이 오면 그 또한 손님이라는 이름의 햇살이다. 그는 아궁이 불 앞에 앉아 그가 해온 여행 이야기를 내게 들려 줄 것이다. 햇살은 그를 통해, 우리를 통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햇살 거두어들이기((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