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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원년의 풋볼
만엔원년의 풋볼
저자 : 오에 겐자부로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출판년 : 2007
ISBN : 9788901067889

책소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현재와 과거, 일상과 광기를 넘나드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 대표작.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형제가 그곳에서 자신들의 증조부 세대가 백 년 전에 일으킨 농민봉기의 역사에 자신들의 현실을 투영함으로써 '현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1967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타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품은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그곳에서 자신들의 증조부 세대가 백 년 전(만엔원년, 1860년)에 일으킨 농민봉기의 역사에 그들 자신의 S형에 대한 1945년의 상이한 '기억'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1860년 만엔원년에 일어난 농민봉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 일미안보조약 이후 학생운동이 펼쳐진 1960년대. 백 년에 걸쳐 등장하는 세 시대와 등장인물들의 상처 그리고 치유가 개인의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것으로 전개되어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진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현재와 과거, 일상과 광기를 넘나드는 두 형제를 통해
오에 겐자부로라는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의《만엔원년의 풋볼》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만엔원년의 풋볼》은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이며, 일본에서도 일본근대가 낳은 최고작의 하나로 꼽혀온 작품이다. 작품이 발표된 지 4년 뒤인 1971년에는 The Silent Cry라는 제목으로 이미 영어로 번역되었고 1989년에는 스웨덴어로 번역되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당혹감 등 실존의 문제를 다루어왔다.”고 이 작품을 극찬했으며, 오에의 작품은 아시아에서 인도의 타고르,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만엔원년의 풋볼》은 백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이 거쳐온 폭력과 고통의
응축된 표현이자 이해와 치유의 소설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서른두 살에 쓴 1967년《만엔원년의 풋볼》은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그곳에서 자신들의 증조부 세대가 백 년 전(만엔원년, 1860년)에 일으킨 농민봉기의 역사에 그들 자신의 S형에 대한 1945년의 상이한 ‘기억’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미시마 유키오와 종종 비교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이 ‘상처’와 ‘치유’를 그리는 여타의 작품과 다른 것은 ‘치유’의 이야기가 한 ‘개인’의 것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것으로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상처는 그들 자신만의 사고와 행위의 결과가 아니며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구조’ 속의 일이라는 것이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에는 백 년에 걸쳐 세 시대가 등장한다.
우선 1860년 만엔원년에 일어난 농민봉기이다. 주인공 네도코로 가문의 증조부와 그의 동생이 일으킨 농민봉기를 둘러싼 행적은 마을의 전설이 되어 전해지지만 그 누구도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고 집안에서도 그들의 이야기는 금기시된다. 메이지 유신과 맥이 닿아 있는 농민봉기 때 기득권자로서 마을의 유지들의 입장에 섰던 증조부와 농민의 편에서 항거했던 그의 동생의 투쟁은 한 가문의 피의 역사이자 동시에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시작을 알린다.
두 번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인공의 둘째 형인 S형이 마을에 돌아온 시점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군대에 끌려갔다가 제대한 S형은 마을에 돌아와 조선인부락에 대한 첫 번째 습격에서 조선인부락에서 한 사람이 죽게 되자 그 보상적 성격을 띤 습격에서 죽는 역할을 맡아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습격에 참가한다. 그러나 다카시의 기억은 예과련 제복을 입은 S형이 골짜기 청년집단을 지휘해서 조선인부락의 억센 정예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지도자로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 번째는 일미안보조약 이후 학생운동이 펼쳐진 1960년대이다. 이 사회에 받아들여진 사람으로서의 미쓰사부로와 학생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다카시는 1960년 6월의 정치행동에 참가했던 학생들로 구성된 전향극 극단의 단원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다카시는 형과 함께 그들의 고향 시코쿠 마을로 돌아온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은 시내와 단절된 채 작년 여름의 홍수 때 끊긴 다리를 수리하지도 않은 채 고립되어 있다. 역사의 순환처럼 두 형제는 다시금 그들의 증조부와 그의 형제의 반목을 반복한다. 백 년 전 증조부 동생이 마을 청년들을 훈련시켜서 봉기를 일으켰듯이 다카시는 마을의 경제권을 잡고 있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에 대한 저항을 위해 마을청년들을 풋볼팀을 만들어 훈련시킨다. 닷새 동안 계속된 만엔원년의 봉기가 백 년 후에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 백승기에게 향해 있는 것이다. 두 형제 사이에 기억의 일치는 없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모두 상충되었고 그 상충된 기억으로 타협 없이 자신의 길을 모색한다.

다카시의 ‘폭력성’은 다카시가 받은 어렸을 때의 기억―아버지와 큰형의 부재 속에서 맞닥뜨린 둘째형의 처절한 죽음의 기억―의 결과이기도 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폭력의 피해자였던 자신이 여동생에게 가한 근친상간의 폭력의 기억에 바탕으로 한 ‘자기처벌’ 욕구의 발현이다. 그런데 다카시를 그러한 ‘행동’으로 직접 이끄는 것은 다카시의 내부에서 ‘영웅’화되고 있는 그의 조상과 S형의 기억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영웅’ 탄생이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혁명―내부적 투쟁―과 세계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외부적 투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진실을 말할까요?”
다카시에게 진실은 “한 사람의 인간이 그 말을 해버리면 남에게 살해당하든지 자살하든지 머리가 돌아버려 눈 뜨고 볼 수 없는 반인간적인 괴물이 되어버리든지 그중 어느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뜻한다. “그 진실은 일단 입에 올려놓으면 가슴속에 재조정할 수 없는 신관을 작동시킨 폭탄을 안게 되는” 그런 진실이다. 눈뜨고 살아 있는 인간이 심지가 타들어가고 폭발물 같은 전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진실을 말할 시기가 오면 그것을 형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형에게 얘기해야 비로소 진실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능을 잃은 눈을 두개골 안쪽의 어둠을 향해 열려 있는 눈으로 간주하기로 한 미쓰사부로에게는 가 닿지 않는 진실일 뿐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가을날 새벽녘에 무릎에 개를 앉히고 구덩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의식 상태에서 흙 속 벽돌 조각을 파내 흙벽을 무너뜨려 스스로를 생매장시키려 했고, 자발적으로 추방당한 자로서 곳간채에 스스로 갇혀 지내는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와 같은 ‘자기처벌’ 욕구에 이끌리지만 최종적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해낸다. 그렇게 미쓰사부로를 구해낸 것은 자신이 맞닥뜨린 고통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였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그런 고통들을 보다 더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미쓰사부로는 사는 일을 택했다. 이해하는 일을 통해 자신과 타자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죽은 이들과 그들의 ‘뜻’을 ‘기억’하는 일을, 죽는 일 대신 선택한 것이다.

“기대”라는 이름의 “풀로 만든 집”
농민봉기와 전쟁 통에도 살아남았던 곳간채가 마을의 경제권을 거머쥔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게 헐리면서 백 년 간 담아왔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기대’라는 이름의 ‘풀로 만든 집’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하는 미쓰사부로는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오에는 다카시의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나쓰코와 다카시의 자살 이후 결혼을 통해 새 출발을 모색하는 호시오와 모모코, 그리고 새 생활에 대한 기대의 집인 아프리카로 찾아 떠나는 미쓰사부로를 통해 비록 늘 행복이라는 결말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지옥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사람들, ‘막연히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를 포용한다. 설혹 ‘쥐새끼 같은’ 인간이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얘기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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