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영국민의 교회사
저자 : 비드
출판사 : 나남
출판년 : 2011
ISBN : 9788930085472
책소개
영국의 중세 암흑기를 밝히는 비드의 대작인『영국민의 교회사』는 5세기에서 8세기 중반까지 앵글로색슨(Anglo-Saxon) 왕국의 종교, 정치, 종족, 언어, 왕조, 사회상 등을 내러티브 형식을 빌려 기록한 영국 사학의 시조이다. 이 책은 모세오경(Pentateuch)을 연상시키는 다섯 권의 구조로 이루어진 백과사전식으로 저술한 성인열전이며, 비드는 이 책을 통해 영국민을 교화하고자 교회의 성인들은 물론 그리스도를 신봉한 지상의 군왕들의 삶과 태도를 일종의 역할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흥미와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기적(奇跡)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 기적을 통해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목차
옮긴이 머리말
머리말
제1권
I. 브리튼, 아일랜드, 스코트 섬의 지정학적 위치와 최초의 거주자들에 관하여
II. 로마의 첫 번째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가 브리튼을 방문하다
III. 로마의 두 번째 황제 클로디우스가 브리튼을 방문하고 오크니 제도를 로마령에 편입시켰다. 그러고 나서 황제는 베스파시아누스를 보내 와이트 섬을 로마의 지배하에 두었다
IV. 브리튼의 왕 루시우스가 성 엘레시리우스 교황에게 서신을 보내 신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 간청은 이루어졌다
V. 황제 세베루스가 브리튼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다른 야만족의 영토와 분리하기 위해 둑을 쌓았다
VI.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치세와 그리스도인을 처형한 일에 대하여
VII. 성 올번과 그의 동료들이 수난을 당하여 주님을 위해 동시에 피를 흘렸다
VIII.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끝났을 때 브리튼에 있는 교회는 아리안파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한동안 평화를 맞이하였다
IX. 그레시아누스의 치세에 브리튼에서 막시무스 황제가 태어났다. 그는 후에 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골(갈리아)로 진격해 들어갔다
X. 아케이디오스 치세에 브리튼 사람인 펠라기우스가 신의 은총에 대한 믿음에 반대되는 그릇된 교리를 받아들였다
XI. 오노리우스 치세에 브리튼에서 그레시아누스와 콘스탄티우스가 태어났고 그레시아누스는 브리튼에서 콘스탄티우스는 골에서 생을 마쳤다
XII. 브리튼족이 스코트와 픽트족의 침입을 당하고 로마에 원조를 요청하다
XIII.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치세에 그리스도를 믿는 스코트인들을 위해서 팔라디우스 주교가 파견되었다. 브리튼인도 로마의 아이티우스 왕에게 주교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XIV. 극심한 기근을 겪은 브리튼인들은 야만인들을 국경너머까지 몰아냈다. 이 일이 있은 후 오래지 않아 풍작을 맞고 사람들은 향락과 죽음과 질병으로 몰락했다
XV. 브리튼인들이 앵글족을 브리튼으로 불러들였다. 앵글족은 처음에는 브리튼인의 적군들을 물리쳐주었으나 머지않아서 그들과 협정을 맺더니 브리튼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XVI. 처음에는 로마인 암브로시우스가 이끄는 브리튼 군이 앵글족에 대항하여 승전했다
XVII. 게르마누스 주교가 루퍼스와 함께 배를 타고 브리튼에 왔다. 성스러운 힘이 거센 바다를 잠재우고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거센 저항까지도 잠잠하게 가라앉혔다
XVIII. 게르마누스 주교가 행정관 딸의 시력을 되찾아주었다. 그후 게르마누스 주교는 성 올번의 무덤에 와서 첫 유물을 받은 다음 그것을 성스러운 사도들과 그 외의 여러 순교자들의 유물 옆에 안치하였다
XIX. 그곳에서 병을 얻어 발이 묶인 게르마누스 주교는 그곳에 일어난 대화재의 불꽃을 기도로 껐다. 그리고 환상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고쳤다
XX. 게르마누스 주교가 전투중인 브리튼인들에게 성스러운 원조를 해주고 다시 자신의 고향인 로마로 돌아갔다
XXI. 새삼스럽게 펠라기우스의 유해한 이단이 성장하자 게르마누스 주교가 세베루스와 함께 브리튼에 돌아왔다. 그는 절름발이 청년에게 걸을 수 있는 힘을 되찾아 주었으며, 이단자들을 힐난하거나 개종시켜서 신의 백성들이 다시 참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XXII.한동안 브리튼인들은 외세의 침략을 당하지 않았으나 자기들끼리 내란을 일으켜 서로 싸우고 수많은 죄를 지었다
XXIII. 성스러운 그레고리 교황이 어거스틴과 여러 수도승들을 함께 보내 하느님의 말씀과 믿음을 잉글랜드에 설파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힘을 주는 말씀을 담은 서신도 보냈다
XXIV. 어거스틴이 처음 브리튼의 사네트 섬에 당도하여 캔트의 왕에게 그리스도의 믿음을 설파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서 캔트에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보급하였다
XXV. 캔트에서 어거스틴이 초기 교회의 생활과 가르침을 따랐으며, 왕궁이 있는 도시에 교구를 마련하였다
XXVI. 어거스틴은 주교가 되었고 그레고리 교황에게 브리튼에서 그가 이룬 바를 보고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몇 가지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XXVII. 그레고리 교황이 어거스틴 주교에게 영대를 하사하였으며 신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XXVIII. 그레고리 교황이 에셀버트 왕에게 서신과 선물을 보냈다. 어거스틴은 크리스트 교회당을 복원하고 성 베드로 수도원을 만들었다
XXIX. 어거스틴이 에셀버트 왕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복원하여 세웠다
XXX. 어거스틴이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다. 그곳의 첫 수도원장인 피터에 관한 기록
XXXI. 노섬브리아의 왕 에델프리드가 스코트를 쳐부수고 국경까지 몰아냈다
제2권
I. 존경스러운 그레고리 교황의 서거
II. 어거스틴이 잉글랜드 교회의 주교들에게 가톨릭의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지도하고 훈계하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행했고 이어 그를 무시하는 주교들에게는 벌이 닥쳤다
III. 어거스틴은 멜리투스와 유스투스를 주교로 서위하였다. 어거스틴의 죽음
IV. 로렌시어스와 동료 주교들이 성스러운 교회의 화합을 이루라고 스코트인들을 훈계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부활절을 잘 지키도록 하였다. 멜리투스는 로마로 갔다
V. 에셀버트 왕과 세이버트 왕이 서거한 후 그의 계승자들이 우상을 숭배하자 멜리투스와 유스투스 주교가 브리튼에서 철수했다
VI. 로렌시어스 대주교가 사도 성 베드로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 에드볼드 왕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개종시켰으며 멜리투스 주교와 유스투스 주교를 다시 불러서 설교하도록 하였다
VII. 멜리투스 주교가 로렌시어스 대주교의 뒤를 이어 대주교가 되었으며, 화재가 일어난 도시를 기도로 진화했다
VIII. 에드윈 왕의 왕국에 관한 내용. 한편 폴리누스가 에드윈 왕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공주 등 여러 사람에게 성스럽고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믿음을 전하였다
IX. 보니페이스 교황이 에드윈 왕에게 편지를 보내 개종하도록 권하였다
X. 왕이 대신들과 함께 회의를 열어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XI. 에드윈 왕과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폴리누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XII. 동부 앵글도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였다
XIII. 폴리누스가 린지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설법하였다
XIV. 에드윈 치세의 평화와 안정에 관하여
XV. 유스투스 대주교 서거 후 오노리우스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어서 링컨에서 폴로니우스에게 서위받았다. 호노리오 교황이 오노리우스 대주교에게 서신과 영대를 보냈다
XVI. 에드윈 왕이 머시아의 왕 펜다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 폴리누스 주교는 캔트로 돌아가서 로체스터(Rochester)의 주교구를 받았다
제3권
I. 에드윈 왕의 후계자들이 백성의 신앙을 모독하였다. 그후 가장 신심 깊은 오스왈드 왕이 신앙과 왕권을 모두 회복시켰다
II. 오스왈드 왕의 요청으로 아이든이라는 주교가 스코트에서 왔고, 왕은 그에게 린디스판 섬에 주교구를 마련해주었다
III. 아이든 주교의 생애
IV. 오스왈드 왕의 신앙과 그의 독실한 신앙심
V. 비리누스 주교가 서부 색슨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주교가 된 에겔베르흐트와 레우테리우스에 관한 기록
VI. 캔트의 에르콘베르흐트 왕이 우상 파괴명령을 내렸다. 왕의 딸 에르켄고타 공주와 조카딸 에델부흐, 이 두 처녀는 신에게 자신의 몸을 봉헌하였다
VII. 오스왈드 왕이 죽은 바로 그 장소에서 기적이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한 여행자가 타던 말이 치유된 적도 있고, 절름발이였던 한 소녀가 치유되기도 하였다
VIII. 바로 그 장소에서 떠 온 흙은 불을 끄는 데에 효험이 뛰어났다
IX. 오스왈드 왕의 분묘 위로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비추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곳에서 치유되었다
X. 왕의 분묘에서 한 어린 아이의 열병이 치유되었다
XI. 죽음 직전에 갔던 아일랜드의 한 남자는 왕의 유물에 의해 치유되었다
XII. 폴리누스 주교가 서거하자 이사마가 그 뒤를 이어서 로체스터의 주교구를 맡게 되었다. 매우 겸허한 오스윈 왕이 오스위오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XIII. 아이든 주교는 곧 출항할 배에 폭풍이 몰아닥칠 것을 예언하고 선원들에게 축성유를 주었고, 선원들은 축성유를 이용하여 폭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
XIV. 아이든 주교는 왕궁이 있는 도시를 향해 번져오던 불길을 기도의 힘으로 방향을 바꿔버렸다
XV. 펜다 왕의 아들 피다 치세에 중부 앵글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XVI. 시그버트 왕 치세에 한때 신앙심이 약해졌던 동부 색슨도 오스위오 왕의 열성과 체드의 설법에 의해서 다시 신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되찾았다
XVII. 체드 주교는 에델왈드 왕으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아서 수도원을 세우고 기도와 금식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체드 주교의 죽음에 관하여
XVIII. 펜다 왕이 죽고 머시아인들이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오스위오 왕은 하느님께 감사의 뜻으로 수도원을 지을 수 있도록 수많은 재물과 땅을 봉헌하였다
XIX. 잉글랜드 혈통의 신성한 에즈버트는 아일랜드에서 수도사로 살았다
XX. 튜다가 죽자 윌프리드가 골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에셀버트 주교에 의해 서품받게 되었다. 체드는 웨색스에 있는 주교 위네에 의해 서품받았고 두 사람은 노섬브리아의 주교로 봉헌되었다
XXI. 브리튼의 대주교로 서위받기 위하여 사제 위그허드가 로마로 갔다. 로마로부터 사도 교황의 서신이 당도했는데 위그허드가 로마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XXII.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 동부 색슨은 다시 우?을 숭배하게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서 게르마누스 주교의 열의에 의해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개종하게 되었다
제4권
I. 데우스데디트 대주교가 서거하고 위그허드 사제가 로마로 가서 대주교 서위를 받고자 했으나 로마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로마에서 아드리안 수도원장과 함께 테오도르(Theodore) 대주교를 브리튼으로 파견하였다
II. 테오도르 대주교는 잉글랜드의 모든 교회를 방문하고 정통 교리와 성경과 세속적인 학문에 매진할 것을 명하였다. 다미안 주교를 대신하여 푸터가 로체스터의 주교가 되었다
III. 앞서 언급된 차드는 머시아의 주교로 서위되었다. 차드 주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장례
IV. 콜만 주교가 브리튼을 떠나서 스코트에 2개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하나는 스코트인들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데려간 잉글랜드인을 위한 것이었다
V. 오스위오 왕과 에즈버트 왕의 죽음. 테오도르 대주교가 지내던 하트포드에서 종교회의가 열렸다
VI. 윈프리드 주교가 퇴위된 후 세악설프 주교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에르콘왈드는 동부 색슨의 주교로 서위되었다
VII. 바킹(Barking)에 있는 수도원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 비추어 그곳에 성처녀들을 안장하라는 계시를 보여주었다
VIII. 바킹에 있는 그 수도원에서 한 어린 아이가 죽으면서 한 수녀를 지목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곳의 또 다른 수녀는 이승을 떠날 때가 되어서 하늘에서 빛이 내려 비추는 것을 보았다
IX. 대모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X. 대모의 서거 3년 후 하느님의 종인 토트기스는 여전히 이승에 남아 있었다
XI. 앞을 못 보는 한 여인이 바킹에 있는 그 수도원의 묘지에서 기도를 올리고 시력을 되찾았다
XII. 바킹의 왕 세버는 수도승이 되어 여생을 보냈다
XIII. 헤더는 엘레시리우스 주교의 뒤를 이어서 서부 색슨의 주교가 되었으며 크위크햄이 푸터 주교의 뒤를 이어 로체스터의 주교가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예프문드가 주교가 되었다. 예프문드는 후에 노섬브리아의 주교직도 맡았다
XIV. 혜성이라 불리는 별이 나타나서 3개월 동안 동틀 무렵이면 늘 나타났다. 바로 그 해에 노섬브리아의 왕 에즈프리드가 윌프리드 주교를 추방했다
XV. 윌프리드 주교는 떠나면서도 남부 색슨을 개종시켰다. 그러나 적들의 거센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부 색슨에 별도로 주교를 서위해주지는 못했다
XVI. 그리스도인이 와이트 섬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와이트 섬의 두 젊은 왕자들은 세례를 받자마자 목숨을 빼앗겼다
XVII. 주교구의 해트필드(Hatfield)라는 평원에서 테오도르 대주교의 주재로 종교회의가 열렸다
XVIII. 사도 교회의 주창자인 존이 브리튼에 설법하러 왔다
XIX. 처녀로 남아있던 에델드레다 왕비의 시신은 무덤에서도 썩지 않았다. 왕비에게 바치는 찬송가
XX. 테오도르 주교의 중재로 에즈프리드 왕과 에델레드 왕이 화평관계가 되었다
XXI. 한 죄수를 위한 미사가 열리자 그의 결박이 풀렸다
XXII. 여수도원장 힐드(Hilde)의 삶과 죽음
XXIII. 힐드 수도원장의 수도원에 노래하는 재능을 타고난 한 형제가 있었다
XXIV. 독실한 신자 한 사람이 콜딩햄에 있는 수도원 앞에서 그 수도원이 불에 타서 소실되는 환상을 보았다
XXV. 에즈프리드 왕과 흘로데레 왕의 죽음
XXVI. 성스러운 커스버트(Cuthbert)는 주교가 된 후에도 수도사의 마음가짐으로 배우고 설교하였다
XXVII. 커스버트는 은둔자로 살면서 기도의 힘으로 메마른 땅에 샘이 솟아나게 하였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먹었는데, 추수의 계절이 지나서도 작물을 거두었다
XXVIII. 커스버트 주교는 은둔자 헤레베르트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XXIX. 무덤에 안치된 지 11년 후에도 커스버트의 시신은 썩지 않았다. 그때는 커스버트의 뒤를 이은 주교도 세상을 뜬 직후였다
XXX. 최근에 커스버트의 유물에 의해 한 남자의 안질이 치유되었다
XXXI. 또 다른 남자는 그 무덤에서 마비가 치유됐다
제5권
I. 성 커스버트 주교의 뒤를 이어 에델왈드가 은둔자로 지냈다. 에델왈드는 해상에서 조난당한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로 폭풍을 가라앉혔다
II. 존 주교는 말 못하는 남자를 기도로 치유했다
III. 존 주교는 병든 소녀도 기도로 치유했다
IV. 존 주교는 한 종사의 병든 아내를 성수로 치유했다
V. 존 주교는 한 종사의 시종을 기도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되살려 내었다
VI. 또한 낙마하여 타박상을 입고 죽을 뻔한 사제 한 사람을 기도와 축도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구하였다
VII. 웨스트 색슨의 케아드왈라 왕은 세례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갔다. 후에 그의 뒤를 이은 이너 왕은 경건한 마음으로 바로 그 ‘성스러운 사도들의 문지방’을 방문하였다
VIII. 테오도르 대주교 서거 후, 베오르흐트왈드가 그 뒤를 이어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여러 주교들을 서품했는데, 로체몽터에 있는 교구에는 매우 학식 있는 토바이어스를 주교로 서위하였다
IX. 성스러운 에즈버트는 독일을 방문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는 가지 못했고, 위히트버트가 대신 독일로 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그의 출신지인 아일랜드로 되돌아왔다
X. 프리즈랜드의 윌브로드는 설교로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그의 두 친구는 박해를 받고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었다
XI. 윌브로드와 브리튼의 스위스버트는 모두 로마에서 프리즈랜드의 주교로 서위되었다
XII. 노섬브리아에서 한 남자가 죽음에서 되살아나서 자신이 본 두려우면서도 소망스러운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XIII. 그와는 반대로 또 다른 남자는 악마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적은 장부를 가져다주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XIV. 또 다른 남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자신이 벌받을 장소를 보았다고 말했다
XV. 아다만의 가르침을 통해서 아일랜드에 있는 많은 교회가 가톨릭의 부활절을 받아들였다.『성지』라는 책을 쓴 에알드햄 주교 등에 관하여. 사우스 색슨에는 에드버트와 에올라가 주교로 서위되었으며, 웨스트 색슨에는 다니엘과 에알드햄이 주교가 되었다. 에알드햄의 저서에 관하여
XVI. 머시아의 왕 킨레드와 동부 색슨의 왕 오파는 수도승이 되어 로마에 가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윌프리드 주교의 삶과 죽음에 관하여
XVII. 신심이 깊은 아드리안 수도원장의 뒤를 이어 알빈이 수도원장이 되었고, 윌프리드 주교의 뒤를 이어서는 아카가 주교가 되었다
XVIII. 체올프리드 수도원장은 픽트의 왕 나이톤에게 건축가들을 보냈으며 부활절을 정확히 지키도록 서한도 보냈다
XIX. 아이오나 섬에 있는 여러 수도원에서 지내는 수도사들은 에즈버트의 가르침과 설교에 따라 정통 부활절 의식을 그대로 따랐다
XX. 로체스터의 주교 토바이어스가 세상을 떠남. 부활절 주간의 첫날 에즈버트 주교도 서거함. 같은 해 노섬브리아의 왕 오스릭도 서거
XXI. 잉글랜드와 브리튼 전체의 현 정세
부 록: 서신
옮긴이 해제
현대영어 및 고대영어 발음과 철자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