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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이슬람 정육점
저자 : 손홍규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판년 : 2010
ISBN : 9788932020600

책소개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국전쟁 참전 터키인과 그 주변 사람들,
그리고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한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의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전작 『봉섭이 가라사대』, 『귀신의 시대』 등을 통해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온 작가 손홍규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깊고 오랜 상처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했다. 이슬람 사원 주변의 허름한 골목과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막다른 인생들을 겪어내는 한 소년의 성장기는 누군가의 상처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것임을 묵묵히 증언한다.

하산 아저씨는 터키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나 휴전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가슴에 깊숙한 흉터를 남긴 총상과 전투 중에 누군가의 살점을 무의식 중에 먹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돼지고기를 파는 모순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눈에 깊고 큰 상처를 지닌 한 고아가 눈에 띄었고, 아이는 그에게 입양된 후 비로소 세상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법칙을 발견해가며 자라가게 된다.

『이슬람 정육점』에는 하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내전 당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 사살한 죄책감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를 비롯하여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자신과는 관련도 없는 역사를 주입시키고 있는 한국인 '대머리 아저씨',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쳐 나와 살고 있는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가난과 가정불화로 상처를 입은 친구 '유정'과 '맹랑한 녀석'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상처와 욕망, 폭력과 광기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작가는 그의 첫 성장소설인 이 작품을 쓴 뒤 소회를 통해 우리 삶에서 “통과의례란 없다”고 단언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국가, 종교, 인종 '따위'를 초월하는 혈연과도 같은, 새로운 끈을 발견하며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나'의 모습을 통해 그 한복판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삶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지났다. 전쟁은 잠시 멈췄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육체의 질병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지내온 사람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전쟁보다 더한, 분열과 대립으로 인한 상처가 사회 깊숙한 곳까지 스며 들어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폭력과 분열이 가득한 한국사회지만 작가는 그 모든 상처와 아픔을 덮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아이의 마지막 고백이 그 해답이 될게다.

목차


“운명은 면식범이다.”
제기랄, 이런 화법은 「수사반장」 탓이었다. 운명은 우리 주위에 기거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수렁에 처넣으려고 기를 쓰는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안다고 믿기에 방심하게 되고 운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초이면서 최후인 발길질로 간단하게 우리를 끝장내버린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이 불쌍한 녀석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길―네가 태어날 때 너만 태어난 게 아니라 너의 운명도 함께 태어났거든.” 그날 운명은 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방심했던 탓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낯선 이가 찾아오면 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하산 아저씨를 보고도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까맣게 모른 채 너른 개활지에 홀로 핀 들꽃처럼 서 있었던 거다. --- pp.17~18

배가 고프지 않아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 내가 사는 곳이 고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유곤로의 심지를 돋우고 유엔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화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심지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여주면 이내 불꽃이 자리를 잡아 푸르게 익었다. 나는 석유 사르는 냄새가 좋았다. 아득한 사막 혹은 바다 아래 어느 퇴적암에서 끌어올린 순결한 액체들이 타는 냄새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의 심정과 흡사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터의 병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천국에 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지금 견디는 이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수긍할 수 없었다. 살아서 지옥인 사람이 죽어서라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 이외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 뿐이겠지. --- pp.26~27

“반품이 안 되는 건 아시죠? 설령 저 녀석이 사고를 치거나 감당하기 힘든 불량배로 자란다 해도 저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장은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를 껴안았다. 원장의 머리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산 아저씨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르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언젠가 찾아가서 혼을 내줄 거니까.”
원장은 껄껄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배워두기로 했다. 언젠가 돌려줄 기회가 있을 테니까. 하산 아저씨가 원장은 무시한 채 내게 말했다.
“아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백 년 뒤에도 이곳에서 숨 쉴 자는 단 한 명도 없단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 말이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거나 나를 감동시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순순히 하산 아저씨를 따라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 p.96

하산 아저씨는 내 흉터에 눈을 줬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손으로 내 흉터를 더듬었다. 손끝에 피고름이 만져질 것 같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기원을 알지 못하는 나의 흉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내 몸은 기억하는 걸까. 내 몸의 흉터들은 내 슬픈 과거의 기록이었다. 내 영혼이 고통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 영혼이 잊어버린 고통을 내 육체가 대신 기억해주는 거였다. 위대한 육체다.

나는 하산 아저씨에게도 흉터가 있냐고 물었다. 하산 아저씨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말 돌리지 말고 있는지 없는지만 말씀해주세요.”
“왜 없겠니. 나도 많이 있다. 희미한 것도 있고 선명한 것도 있지. 하지만……흉터에 집착하지 말거라. 네 흉터는 그걸 바라고 있는 거야. 네가 집착해야 오래 남을 테니.”
“이 흉터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가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도 의문이었다. 왜 나는 이토록 흉터에 집착하는지. 흉터를 떠올릴 때면 배신감이 들었다. 사춘기 소년이 아무리 가꿔도 빛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출 때마다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배신감이었다. --- pp.110~111

“대머리 아저씨 말야. 기억을 못한대. 전쟁이 일어났던 날부터 휴전이 성립되었던 날까지, 삼 년간의 기억이 지워졌대. 기록에는 참호에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걸로 나와 있대. 그런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들을 매번 되풀이해서 겪는 거지.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면 우리의 뇌는 아예 모든 걸 지워버리거든. 그러니까 대머리 아저씨에게는 모든 세월이 전쟁이 일어났던 그때로 귀속되어버린 거야. 다른 기억들은 쓸모가 없어. 중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게 된 거지.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쉽게 유혹당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때부터 대머리 아저씨는 공부를 시작했어.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찾고 싶었던 거지. 어느 전투에서 사용된 총탄이 몇 발인지까지 외웠대. 하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자신도 있었다고 여겨지는 전투에 대해 아무리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봐도 기억이 살아나지는 않더래. ……그저께 내가 여기서 널 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거 기억나? 사실은 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어. 물론 나중에는 기억해냈지. 사람 이름을 잠깐만 까먹어도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 그런데 자신의 청년시절을 삼 년씩이나 잃어버린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는 중이었어. 나는 전쟁이란 영화에서 보듯 끔찍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그 무엇이라고 믿었어. 어떻게 나는 그런 더러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걸까. 대체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은 누가 가르쳐준 걸까. 원래 사람은 이런 존재인 걸까?” --- pp.142~143

“……전쟁 때였다. 보급은 끊어지고 우리 중대는 고립되었다. 적군은 강했고 우리는 지쳤지. 배고픔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배 속이 텅 비어서 허깨비가 된 기분이었어. 포탄을 피할 곳도 없는 민둥산이었지. 그저 신의 가호로 포탄과 총탄이 나를 비켜가길 바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옆에서 포탄이 터졌지. 내 몸이 붕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내팽개쳐졌지. 포연이 걷히고 적들의 사격이 뜸해졌을 때 나는 내 입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씹었다. 달콤했어. 그게 포탄에 맞아 찢겨진 사람의 살점이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전쟁이란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억지로 사람의 입속에 사람의 살점을 쑤셔넣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 꼭 이 고기가 그때의 사람 살점과 같은 맛이구나.” --- pp.213~214

기도하기 위해 일어난 하산 아저씨는 내가 만든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다워요.”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네 그림 속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그림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거죠.” --- p.220

그는 왜 이 낯선 땅을 떠나지 못하고 수십 년을 머물러야 했을까.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늙어 이처럼 쓸쓸히 병든 몸을 견뎌야 하는 걸까. 하산 아저씨의 흉터를 보고 싶었다. 내 것과 닮았다는 그 흉터. 흉터가 닮았다는 말이 운명이 닮았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거기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잠든 하산 아저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가 나의 마지막 고아원이길 바란다고. 하지만 하산 아저씨마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비난해야 하는 건 그를 덮친 운명이지 하산 아저씨, 그가 아니니까. --- p.228

그리스와 터키에 가본 적이 없으나 매일처럼 그곳을 방문했다. 내게 그리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이며 터키는 아지즈 네신의 나라이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모국어로 씌어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번역되기 이전 날것의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감탄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숨을 쉬고 웃음을 터뜨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알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곳을 방문했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처럼 웃고 떠들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다녀갔음을.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들도 이곳에서 아파했음을.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은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아니, 그 이름들이 나를 선택했다. 그들의 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이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2010년 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손홍규

책소개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국전쟁 참전 터키인과 그 주변 사람들,
그리고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한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의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전작 『봉섭이 가라사대』, 『귀신의 시대』 등을 통해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온 작가 손홍규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깊고 오랜 상처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했다. 이슬람 사원 주변의 허름한 골목과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막다른 인생들을 겪어내는 한 소년의 성장기는 누군가의 상처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것임을 묵묵히 증언한다.

하산 아저씨는 터키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나 휴전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가슴에 깊숙한 흉터를 남긴 총상과 전투 중에 누군가의 살점을 무의식 중에 먹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돼지고기를 파는 모순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눈에 깊고 큰 상처를 지닌 한 고아가 눈에 띄었고, 아이는 그에게 입양된 후 비로소 세상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법칙을 발견해가며 자라가게 된다.

『이슬람 정육점』에는 하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내전 당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 사살한 죄책감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를 비롯하여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자신과는 관련도 없는 역사를 주입시키고 있는 한국인 '대머리 아저씨',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쳐 나와 살고 있는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가난과 가정불화로 상처를 입은 친구 '유정'과 '맹랑한 녀석' 등이 등장한다. 작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상처와 욕망, 폭력과 광기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작가는 그의 첫 성장소설인 이 작품을 쓴 뒤 소회를 통해 우리 삶에서 “통과의례란 없다”고 단언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국가, 종교, 인종 '따위'를 초월하는 혈연과도 같은, 새로운 끈을 발견하며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나'의 모습을 통해 그 한복판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삶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지났다. 전쟁은 잠시 멈췄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육체의 질병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지내온 사람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전쟁보다 더한, 분열과 대립으로 인한 상처가 사회 깊숙한 곳까지 스며 들어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폭력과 분열이 가득한 한국사회지만 작가는 그 모든 상처와 아픔을 덮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아이의 마지막 고백이 그 해답이 될게다.

목차


“운명은 면식범이다.”
제기랄, 이런 화법은 「수사반장」 탓이었다. 운명은 우리 주위에 기거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수렁에 처넣으려고 기를 쓰는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안다고 믿기에 방심하게 되고 운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초이면서 최후인 발길질로 간단하게 우리를 끝장내버린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이 불쌍한 녀석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길―네가 태어날 때 너만 태어난 게 아니라 너의 운명도 함께 태어났거든.” 그날 운명은 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방심했던 탓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낯선 이가 찾아오면 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하산 아저씨를 보고도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까맣게 모른 채 너른 개활지에 홀로 핀 들꽃처럼 서 있었던 거다. --- pp.17~18

배가 고프지 않아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 내가 사는 곳이 고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유곤로의 심지를 돋우고 유엔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화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심지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여주면 이내 불꽃이 자리를 잡아 푸르게 익었다. 나는 석유 사르는 냄새가 좋았다. 아득한 사막 혹은 바다 아래 어느 퇴적암에서 끌어올린 순결한 액체들이 타는 냄새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의 심정과 흡사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터의 병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천국에 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지금 견디는 이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수긍할 수 없었다. 살아서 지옥인 사람이 죽어서라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 이외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 뿐이겠지. --- pp.26~27

“반품이 안 되는 건 아시죠? 설령 저 녀석이 사고를 치거나 감당하기 힘든 불량배로 자란다 해도 저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장은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를 껴안았다. 원장의 머리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산 아저씨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르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언젠가 찾아가서 혼을 내줄 거니까.”
원장은 껄껄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배워두기로 했다. 언젠가 돌려줄 기회가 있을 테니까. 하산 아저씨가 원장은 무시한 채 내게 말했다.
“아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백 년 뒤에도 이곳에서 숨 쉴 자는 단 한 명도 없단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 말이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거나 나를 감동시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순순히 하산 아저씨를 따라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 p.96

하산 아저씨는 내 흉터에 눈을 줬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손으로 내 흉터를 더듬었다. 손끝에 피고름이 만져질 것 같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기원을 알지 못하는 나의 흉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내 몸은 기억하는 걸까. 내 몸의 흉터들은 내 슬픈 과거의 기록이었다. 내 영혼이 고통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 영혼이 잊어버린 고통을 내 육체가 대신 기억해주는 거였다. 위대한 육체다.

나는 하산 아저씨에게도 흉터가 있냐고 물었다. 하산 아저씨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말 돌리지 말고 있는지 없는지만 말씀해주세요.”
“왜 없겠니. 나도 많이 있다. 희미한 것도 있고 선명한 것도 있지. 하지만……흉터에 집착하지 말거라. 네 흉터는 그걸 바라고 있는 거야. 네가 집착해야 오래 남을 테니.”
“이 흉터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가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도 의문이었다. 왜 나는 이토록 흉터에 집착하는지. 흉터를 떠올릴 때면 배신감이 들었다. 사춘기 소년이 아무리 가꿔도 빛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출 때마다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배신감이었다. --- pp.110~111

“대머리 아저씨 말야. 기억을 못한대. 전쟁이 일어났던 날부터 휴전이 성립되었던 날까지, 삼 년간의 기억이 지워졌대. 기록에는 참호에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걸로 나와 있대. 그런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들을 매번 되풀이해서 겪는 거지.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면 우리의 뇌는 아예 모든 걸 지워버리거든. 그러니까 대머리 아저씨에게는 모든 세월이 전쟁이 일어났던 그때로 귀속되어버린 거야. 다른 기억들은 쓸모가 없어. 중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게 된 거지.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쉽게 유혹당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때부터 대머리 아저씨는 공부를 시작했어.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찾고 싶었던 거지. 어느 전투에서 사용된 총탄이 몇 발인지까지 외웠대. 하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자신도 있었다고 여겨지는 전투에 대해 아무리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봐도 기억이 살아나지는 않더래. ……그저께 내가 여기서 널 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거 기억나? 사실은 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어. 물론 나중에는 기억해냈지. 사람 이름을 잠깐만 까먹어도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 그런데 자신의 청년시절을 삼 년씩이나 잃어버린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는 중이었어. 나는 전쟁이란 영화에서 보듯 끔찍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그 무엇이라고 믿었어. 어떻게 나는 그런 더러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걸까. 대체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은 누가 가르쳐준 걸까. 원래 사람은 이런 존재인 걸까?” --- pp.142~143

“……전쟁 때였다. 보급은 끊어지고 우리 중대는 고립되었다. 적군은 강했고 우리는 지쳤지. 배고픔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배 속이 텅 비어서 허깨비가 된 기분이었어. 포탄을 피할 곳도 없는 민둥산이었지. 그저 신의 가호로 포탄과 총탄이 나를 비켜가길 바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옆에서 포탄이 터졌지. 내 몸이 붕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내팽개쳐졌지. 포연이 걷히고 적들의 사격이 뜸해졌을 때 나는 내 입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씹었다. 달콤했어. 그게 포탄에 맞아 찢겨진 사람의 살점이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전쟁이란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억지로 사람의 입속에 사람의 살점을 쑤셔넣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 꼭 이 고기가 그때의 사람 살점과 같은 맛이구나.” --- pp.213~214

기도하기 위해 일어난 하산 아저씨는 내가 만든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다워요.”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네 그림 속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그림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거죠.” --- p.220

그는 왜 이 낯선 땅을 떠나지 못하고 수십 년을 머물러야 했을까.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늙어 이처럼 쓸쓸히 병든 몸을 견뎌야 하는 걸까. 하산 아저씨의 흉터를 보고 싶었다. 내 것과 닮았다는 그 흉터. 흉터가 닮았다는 말이 운명이 닮았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거기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잠든 하산 아저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가 나의 마지막 고아원이길 바란다고. 하지만 하산 아저씨마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비난해야 하는 건 그를 덮친 운명이지 하산 아저씨, 그가 아니니까. --- p.228

그리스와 터키에 가본 적이 없으나 매일처럼 그곳을 방문했다. 내게 그리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이며 터키는 아지즈 네신의 나라이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모국어로 씌어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번역되기 이전 날것의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감탄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숨을 쉬고 웃음을 터뜨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알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곳을 방문했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처럼 웃고 떠들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다녀갔음을.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들도 이곳에서 아파했음을.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은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아니, 그 이름들이 나를 선택했다. 그들의 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이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2010년 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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