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저자 : 홍지웅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년 : 2009
ISBN : 9788932908656
책소개
3일 치가 모자란 2004년 꽉 찬 한 해의 기록,
그의 기록은 당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당신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이 책은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가 출판, 건축, 예술에 대한 생각들과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와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뿐만 아니라 점심 밥값이 얼마인지까지도 적은 세세한 일상의 기록이다. 베르베르의 책을 만들면서 있었던 일들, 그 외에 열린책들에서 했던 새로운 시도들(가령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의 케이스 제작에만 70여 일 걸린 경우 등)에서부터 건축가와 건축에 대해 나눈 이야기, 번역가와 책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 등 그가 만나고 만들고 짓고 다니고 쓰고 찍은 2004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4년에 그는 통의동에 위치한 열린책들의 대표이고 한국출판인회의의 회장이었으며, 출판 교육 기관인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이기도 했다. 회사 운영은 물론 책의 기획, 디자인, 편집, 마케팅 등에 대한 큰 방향과 실무 노하우를 함께 엿볼 수 있다. 또 출판 관련 단체에 대한 부분에서는 2004년 현재 파주출판도시의 형성이 얼마큼 진행되었는지,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설립 배경과 의의는 무엇이며,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서교동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열린책들 직원과 함께한 일본 문화 탐방, 안도 다다오 건축 기행, 개인적인 북유럽 여행 때 쓴 일기는 마치 잘 쓴 여행기를 보는 듯하다. 하루에 십여 개에 이르는 미팅을 하며 분주하게 한 주를 보내고 난 주말이면 휴식을 취할 법도 하건만, 한 집안의 가장인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정원을 손질하며 집안을 돌보았다. 한마디로 사적인 일도, 공적인 일도, 취미생활도 모두 치열했던 2004년이 담겨있다.
목차
요즈음 출판계의 이상한 풍토 --- 교열 교정보다는 소위 기획을 잘하는 것이 능력 있는 편집자라고 생각하는 것 --- 에도 불구하고 A는 교열 교정부터 착실하게 기초를 다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어떤 원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편집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직원이다. --- 1월 11일
11시경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 예빈이가 집에서 전화를 했는데, 서울대에서 오전에 어저께 왜 등록을 안 했는지 묻는 전화가 왔다고 했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아내가 서울대 입시 관리 본부로 연락해 보니 〈어저께 등록이 마감되었으며 합격이 취소되었다〉고 말하더란다. 유진이와 함께 헐레벌떡 서울대로 달려가서 〈우리는 다른 대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납입 고지서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어제(월)가 마감일인 줄 몰랐으며,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지만 등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 2월 10일
열린책들에서는 한 작가나 사상가의 저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기획, 설혹 그것이 그 작가의 졸작이나 숨기고 싶은 작품일지라도 〈모두 다〉 보여 주는 기획을 한다. 그래서 어떤 한 작가를 기획 대상에 선정하면, 일단 그가 쓴 대부분의 작품들을 구입해서(원서뿐 아니라 외국어 판본까지도) 면밀하게 검토한다. 모든 저작을 계약하려면 한꺼번에 너무 큰돈이 들어가므로, 그중 중요한 작품부터 몇 권(대개는 저작의 반 정도는) 저작권 계약을 하고 출간하기 시작한다. --- 3월 3일
자신의 단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든 실수를 한다. 누구도 업신여기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또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도 있다.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능한 편집자는 무엇What을 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How 책을 만드느냐〉를 아는 편집자다. 기획이라는 것도 주어진 책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거다. 교열 교정도 완벽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편집자에게 아주 기본적인 도구이므로……. --- 3월 8일
출판 편집자의 역할은 첫째, 좋은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 다시 말해 좋은 책을 많이 팔아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좋은 책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책을 많이 파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가령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은 좋은 기획자를 쓰고, 좋은 저자를 쓰고, 좋은 편집자를 쓰고, 좋은 재료를 쓰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책을 널리 보급하는 일, 즉 많은 독자에게 책을 파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하는데, 좋은 책이란 내용, 소재, 서사 구조 등에 독창적인 것을 담고 있는 책을 말한다. --- 3월 11일
권 주간이 중앙일보에 낸 5단 광고 헤드라인에 오자를 냈다고 보고. 광고에 〈3월 1일〉이라고 해야 할 것을 〈3월 1월〉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광고에서 헤드라인에 오자를 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자, 오자, 오자……. 출판사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서 있는 영역은 〈오자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출판사에서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오자와의 전쟁〉을 치른다. 요즈음에는 출판사마다 교정의 귀재들이 없다. --- 3월 16일
출판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38평형 역촌동 에덴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4800만 원에 분양받아 이사 온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둘째 유진이 돌날 5평 남짓한 집 지하실에서 직원 2명과 같이 시작했고, 국민은행서 집을 담보로 1000만 원, 신용으로 대출한 1000만 원, 총 2000만 원을 종잣돈으로 출발했었다. 86년 1년 동안은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고대신문사에서 부주간으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출판사 일을 보았다. --- 3월 31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출판사 종사자들이 출판사 설립해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고 이야기한다. 출판사의 유아 사망률도 높다고 이야기한다. 출판사 내서 돈을 번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출판 경기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출판사들이 모두 어렵다고 한다. 아니, 실제로 어렵기는 하다. 매년 내가 출판사를 시작한 이래로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한마디로 아니다. 다만 색깔이 없는 출판사는 실제로 살아남기가 어렵다. 또 유행을 좇아다니는 출판사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