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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4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48)
저자 : 마가렛 미첼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년 : 2010
ISBN : 9788932911489

책소개


1939년 퓰리처상 수상, 미국 문학사상 최고의 이야기꾼! 미국 출판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훌륭한 줄거리만 마련된다면 문체는 중요하지 않다. - 마거릿 미첼
미국 최고의 이야기꾼 마거릿 미첼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안정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사랑과 전쟁에 대한 이 장엄한 소설은 1937년 그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다 주었다. 남북 전쟁에 대해 쓰인 소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남부의 불타는 대지로 우리를 직접 끌고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까지도 그들의 감정, 두려움과 빈곤을 기억하게 할 만큼 선명하고 스릴 만점의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여 준 소설은 흔치 않았다. 조지아의 붉은 흙의 전통과 남부인의 피를 이어받은 스칼렛 오하라는 전통과 비전통 사이의 갈등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하는 등장인물로,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삶의 복합성을 터득해 가며 자신이 익숙했던 <살아 있는 전통>이 결국 <죽어 버린 전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남북전쟁을 다룬 작품으로서도, 역사소설로서도, 일관된 주제의식 아래 남북전쟁 당시의 다양한 인간과 사회상을 보여 주는 대하소설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목차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이 아니었지만, 탈턴 쌍둥이 형제처럼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프랑스 혈통을 이어받은 해안 지역 귀족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섬세한 용모와 다혈질 아일랜드계인 아버지의 묵직한 인상이 지나치게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턱이 뾰족하고 턱뼈가 각이 진 얼굴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은 담갈색이 전혀 섞이지 않은 초록빛이었으며, 빳빳하고 검은 속눈썹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눈꼬리는 약간 치켜 올라갔다. 그 눈 위로는 짙고 검은 눈썹이 비스듬히 올라가서, 목련처럼 하얀 피부에 산뜻하고 비스듬한 선을 이루었는데 -- 남부의 여자들은 이런 피부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고, 뜨거운 조지아 태양으로부터 그런 살갗을 보호하려고 둥근 모자와 베일과 장갑을 동원했다.
(……) 그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꽃무늬를 박은 초록빛 새 옥양목 드레스는, 버팀살 위로 10미터나 물결치며 쏟아져, 아버지가 최근에 애틀랜타에서 사다 준 뒷굽이 편편한 초록빛 모로코 가죽 신발과 멋지게 어울렸다. 드레스는 인근 3개 군(郡)에서 가장 가느다란 33센티미터 허리를 완벽하게 드러내 주었고, 몸에 꼭 끼는 짧은 웃옷은 열여섯 살치고는 잘 발육한 젖가슴을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활짝 펼쳐진 치마, 말끔하게 쪽을 찌고 망을 씌운 얌전한 머리, 그리고 조용히 무르팍에 포개 놓은 하얗고 작은 두 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본성은 제대로 감추기가 어려웠다. 조심스럽고 다정한 얼굴의 푸른 눈은 힘차게 이글거리고, 고집스럽고, 그녀의 몸가짐은 어머니의 상냥한 꾸짖음과 그보다 훨씬 엄격한 흑인 유모의 단련을 통해서 갖춰진 것이지만, 눈만큼은 그냐 자신의 것이었다. --- pp.11-12

잡담을 하고 웃어 대며 집 안과 마당을 번갈아 재빨리 살펴보던 그녀는, 거실에 혼자 떨어져 서서 느긋하고 교만한 눈초리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그 눈초리는 한 남자의 눈길을 끌었다는 여자다운 기쁨과 드레스의 가슴이 너무 노출되었다는 거북한 감정이 뒤엉킨 기분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그는 꽤 나이가 들어서, 적어도 서른다섯 살은 되어 보였다. 그는 키가 크고 몸집이 건장했다. 신사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근육이 지나칠 정도로 단단한 이런 남자를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스칼렛은 생각했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그는 짧게 다듬은 까만 콧수염 밑에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동물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해적처럼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햇볕에 탔고, 눈은 강간할 처녀나 도망치려는 범선을 가늠해 보는 해적의 눈처럼 까맣고 대담했다. 그녀를 쳐다보고 빙그레 웃는 그의 입가에는 냉소적인 즐거움이 서렸고, 얼굴에는 냉혹한 무자비함이 드러나서, 스칼렛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눈초리를 받으면 굴욕감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수치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이 못마땅해졌다.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그녀는 몰랐지만, 그의 시커먼 얼굴에서는 훌륭한 혈통의 인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런 인상은 매처럼 가느다란 코와, 두툼하고 붉은 입술과, 높직한 이마와, 미간이 넓은 두 눈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전혀 미소를 짓지 않은 채 억지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그는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레트! 레트 버틀러! 이리 와요! 조지아에서 마음이 가장 쌀쌀한 여자에게 인사나 하시죠.」
레트 버틀라라고? 어쩐지 무슨 재미있는 소문과 연관이 되어 귀에 익은 이름처럼 들렸지만, 그녀는 마음이 애슐리에게 쏠려 있었으므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 154-155

그의 손길이 닿자 스칼렛은 온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꿈꾸었던 대로, 이제는 뜻이 이루어질 참이었다. 두서없는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도, 그녀는 단 한 가지 생각도 붙잡아 말로 바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냥 떨면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그는 말을 하지 않을까?
「왜 그래요?」 그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한테 무슨 비밀이라도 얘기하려고 그래요?」
갑자기 그녀는 말문이 터졌고, 엘렌이 여러 해에 걸쳐 가르친 예절도 순식간에 사라졌고, 제럴드의 솔직한 아일랜드 피가 딸의 입을 거쳐 거침없이 나왔다.
「그래요, 비밀이죠. 난 당신을 사랑해요.」
잠깐 동안 두 사람 다 숨조차 쉬지 않는 듯 강렬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떨리는 두려움이 그녀에게서 사라지고, 행복감과 자부심이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왜 그녀는 전에 이러지 못했을까? 그녀가 가르침을 받았던 숙녀다운 어떤 기교보다도 이것이 얼마나 더 간단한가? 그러더니 그녀는 그의 눈을 살펴보았다.
그 눈에는 걱정스러움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의아함? 그 이상의 무엇이 담긴 표정이 나타났는데---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표정이었을까? 그렇다, 아버지가 아끼던 사냥개가 다리를 다쳐 총으로 쏴 죽여야만 했던 날, 제럴드의 표정이 저러했다. 왜 지금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해야만 하는가? 그런 한심한 생각을. 그리고 왜 애슐리는 저렇게 묘한 표정을 짓고 아무 말도 없을까? 그러자 훈련이 잘된 가면 같은 무엇이 애슐리의 얼굴을 덮었고, 그는 점잖은 미소를 지었다. - 상권 183~184면

어머니 같은 여자가 되기를 아직도 간절히 원했던 스칼렛은 이런 짓이 처음에는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편지를 읽고 싶은 유혹이 워낙 강해서 그녀는 어머니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기로 했다. 요즈음 그녀는 불쾌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몰아내는 데 아예 이력이 났다. 그녀는 「난 지금은 이러저러한 골치 아픈 생각은 하지 않겠어. 그런 생각은 내일 해도 되니까」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막상 내일이 오면 불쾌한 생각이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거나, 뒤로 미루는 바람에 희미해져서 별로 골치를 썩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슐리의 편지 문제는 그녀의 양심에 그리 심하게 걸리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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