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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2 (움베르토 에코 장편소설)
저자 : 움베르토 에코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년 : 2013
ISBN : 9788932916095
책소개
6년 만에 찾아온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장편! 거짓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살아남는가!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가장 권위 있는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새 장편소설 『프라하의 묘지』가 이세욱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에코는 신작에서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주인공 시모니니를 통해 거짓의 메커니즘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해온 지난날의 연구와 실천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모함하는 것도, 문서를 날조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시모니니는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특히 에코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에서 허구의 인물은 시모니니 단 한 명뿐이고, 모든 주요 인물들은 실존했던 인물들로,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혼동하게 된다. 또한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사용한, 음모의 당사자가 자기가 날조해 낸 음모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악당의 가면을 벗기기보다는 잘못된 편견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기실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질 주장들이다. 에코는 구조적 안배를 통해 독자들이 자칫 이야기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않도록 했다. 비교적 평범한 형식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이 작품은 세 사람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각자의 과거를 회상하거나 이야기를 정리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에 동일시하는 것을 막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한 화자가 이야기를 하면 다른 화자가 끼어들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독자들은 비판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거짓의 메커니즘, 뻔한 거짓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며 권력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온 에코가 그러한 자신의 연구와 실천을 집약한 소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모함하는 것도, 문서를 날조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그렸다. 에코의 표현처럼 「세계 문학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자 음모의 심장인 주인공이 음모를 정당화하는 서사 방식을 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입을 빌려 갖가지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노출함으로써 출간 이후 전 유럽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 출간 직후 65만 부가 팔렸고, 스페인어판은 초판만 200만 부를 인쇄하는 등 작품이 불러온 파장만큼이나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목차
반격이 필요한 상황이었소.
「이보게 탁실」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왜 유대인들을 공격하지 않는지 그 사사로운 사정을 알고 싶지는 않네. 하지만 자네가 직접 못 하겠다면, 누군가 그 일을 맡아 줄 다른 사람을 등장시킬 수는 있지 않겠는가?」
「제가 직접 관여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탁실은 그리 대답하고 말끝을 달아 「사실 제 폭로는 이제 바닥이 나갑니다. 다이애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가 만들어 낸 독자 대중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이제 저의 책들을 읽는 이유는 십자가의 적들이 꾸미는 음모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의 흥미진진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악당의 음모를 다룬 소설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악당의 편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지요.」 --- p.558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걸 알면 당신한테 돈을 주지 않겠지요. 내 부서에도 문서 꾸미는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용을 제공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선량한 백성에게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그런 얘기는 농민들에게도 지주들에게도 중요하지 않아요.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도 러시아 백성들의 호주머니 사정과 연관 지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유독 유대인들을 겨냥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러시아에는 유대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터키에 있었다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겨냥했겠지요.」--- pp.598-599
「쉽게 알아볼 수 있고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적이 필요한데, 그런 적은 러시아 민중들 속에 또는 그들의 집 문턱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유대인들이죠. ...... 누가 말하기를 애국주의란 천민들의 마지막 도피처라 했습니다. 도덕적인 원칙과 담을 쌓은 자들이 대개는 깃발로 몸을 휘감고, 잡것들이 언제나 저희 종족의 순수성을 내세우는 법이죠. 자기가 한 국가나 민족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것, 이는 불우한 백성들의 마지막 자산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속감은 증오에, 자기들과 같지 않은 자들에 대한 증오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증오심을 시민적인 열정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적이란 결국 민중의 벗입니다. 자기가 가난하고 불행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데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느끼려면 언제나 증오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증오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열정입니다. 사랑이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이죠.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죠. 누군가를 평생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건 이룰 수 없는 희망입니다. 그래서 간통이며 모친 살해며 친구를 배신하는 일 따위가 생겨나는 겁니다. 반면에 누군가를 평생토록 미워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자가 우리 곁에서 계속 증오심을 부추기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증오는 심장을 뜨겁게 하죠.」--- pp.599-600
시모니니는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죄인이 되었음에도 그 유대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기억과 그 기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사건이 한 나라 전체를 얼마나 심하게 뒤흔들었지 새삼 깨달았다. 당시에 프랑스인들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드레퓌스가 악마에게 가든, 악마의 섬에 가든 그건 더 이상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