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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저자 : 황석영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판년 : 2007
ISBN : 9788936433581
책소개
거장 황석영의 4년 만의 신작 장편
대륙과 대양을 넘어 전 세계인과 함께 읽는 한국소설!
출간 전부터 세계 문단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탈북 소녀 '바리'의 고난에 찬 여정과 세상의 고통을 한몸으로 녹여내는 구원의 서사를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한국어판 출간 전에 영어ㆍ불어ㆍ독어ㆍ일어권으로 번역출간이 결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청진에서 태어난 주인공 바리는 영혼이나 짐승과도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소녀로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한다. 온갖 고생 끝에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자마자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이 터지고, 남편은 동생을 찾아 전쟁터로 떠난다. 바리의 아이는 돌을 넘길 무렵 친구의 잘못으로 숨지게 되는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용서와 구원의 ‘생명수’를 찾아가는 전통설화 속의 '바리'처럼, 소설 속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한반도와 전세계에 닥쳐 있는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경험할 수 있다. 21세기 이주와 분열을 소재로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신자유주의 그늘을 파헤치는 동시에, 증오로 갈라지고 상처받은 인류를 위로하고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이번 신작은 거장 황석영만이 선보일 수 있는 대작이다.
목차
야야, 정신차리라.
현이는 얼어붙은 듯이 쪼그려 있던 모양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집 안에 들어가 이불 속에 넣고 셋이서 그애의 발과 손과 다리를 비벼주었다. 한참 만에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듯 눈을 뜬 현이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말을 시켰다.
거 추운데 왜 나가 있댄?
오줌 마레와서......
오줌 누군 들오지 거기 있다 얼어 죽을 뻔했구나.
현이는 스르르 눈을 감더니 다시 잠이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현이의 손과 뺨을 비비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오마니, 이거 체온이 돌아오지 않소. 물이라두 데워 멕이기요.
할머니는 문간 아궁이에 나가서 냄비에 눈을 담아 끓였다.
더운물을 양은그릇에 담아 코끝에 내밀었지만 그애는 몇모금 혀를 적시는 시늉만 하고는 다시 늘어졌다. 우리는 윗목의 짐을 풀어 언제나 축축한 채로 뻣뻣하게 얼어 있는 옷가지들을 꺼내어 가슴에 품고 비비거나 깔고 앉아 체온을 담은 뒤에 현이의 몸에 덮어주고 이불로 감쌌다. 그동안에 지핀 아궁이로 불이 잘 들었는지 구들돌 위에 깐 골판지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현이의 몸 위에 검게 얹힌 아주 부드러운 연기 같은 것이 뭔지는 몰랐지만 그애에게 가까이 가서 그걸 떼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언니야, 너 떠나려고 하는 줄 내 다 안다.
우리는 이불 속에 하반신을 넣고 모두 앉은 채로 끄덕끄덕 졸다가 잠들었다. 그날밤 현이는 죽었다. 몸이 너무 쇠약해진데다 한기를 배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 세 사람 누구도 정말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애를 옷가지와 비료포대 여러 장으로 둘둘 말아서 안고는 움집을 나서면서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따라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