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저자 : 파블로 네루다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07
ISBN : 9788937407413
책소개
시인의 나이 열아홉에 세상에 나와서 그의 이름을 남미 전역에 알렸던, 그리고 그간 한국 독자들에게는 단 4편만이 소개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완역되었다. 1989년에 이 시집의 시편 가운데 네 편을 비롯해 네루다의 시집들에서 몇 편씩을 고른 시선이 『스무 편...』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나온 바 있었는데, 이번에 『스무 편...』의 스물한 편을 모두 번역해 한 권으로 묶어 원래의 제목을 돌려준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네루다의 시들이 한국 시단의 거목 정현종 시인의 머리와 손을 거쳐 마치 원래가 한국어로 쓰였던 시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실려 있다. 시 한 편 한 편이 내뿜는 생명력과 열정, 그 소박하면서도 적나라한 아름다운 언어들이 읽는 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목차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편들은 내 가장 고통스러운 젊은 날의 열정으로 가득 찬 괴로운 전원시집을 만들어놓고 있는데, 내 나라 남쪽 지방의 황량한 자연이 섞여 있다.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책인데, 그 심한 멜랑콜리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산티아고와의 연애이고, 학생들 붐비는 거리, 대학과의 연애이며, 앙갚음과도 같은 사랑의 인동향(忍冬香)이다. _파블로 네루다
이 시집은 우리가 다 겪게 마련인 젊은 시절의 욕망의 혼돈, 특히 성욕의 충동에 따른 즐거움과 괴로움, 사귐과 고독, 만남과 헤어짐 따위가 만드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넘친다. 물론 그 소용돌이는 시라고 하는 형식을 통해서 질서를 얻은 것으로서, 품격을 잃지 않은 표현의 적나라함과 솔직함이 커다란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_정현종(『스무 편…』의 해설 중에서)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 그의 살은 제 살이 아니라 만물의 살이요, 그의 피는 자신의 피가 아니라 만물의 피이며, 그의 몸 안팎의 분비물은 자기의 것이라기보다 만물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네루다는 만물이다. 그의 시를 통해 자신들이 드러날 때 사물은 마침내 희희낙락하는 것 같고, 스스로의 풍부함에 놀라는 것 같다. 그의 시 속에서는 사물의 경계가 지워지고, 안팎의 구별은 없어진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는 그것이 노래하는 사물의 핵심에 이르지 않는 법이 없다. 그리고 거기 열리는 세계는 무궁동(無窮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역동 상태에 있다. _정현종(『네루다 시선』의 해설 중에서)
■ 사랑에 빠진 이의 심장을 들여다본다면… 열아홉 젊음의 열정의 소용돌이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지금까지 단 4편만이 국내에 번역되었다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스물한 편이 모두 소개된 『스무 편…』의 시편 하나하나에는 장차 큰 시인을 기약하는 한 젊은이의 열광적 호흡이 드러나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의 눈에 사랑하는 여인의 육체는 하나의 “세계”와 같다. 여인의 눈 속에서 “황혼이 떨어지고, 지구가 노래한다”. 그녀의 속에서 “강들이 노래하고” 그의 “영혼은 그 속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의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이 그녀를 “파 들어가”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터널처럼 외롭”다. 그는 말한다. “내 갈증, 내 끝없는 욕망, 내 동요하는 길!/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그리고 피로가 따르며 가없는 아픔이 흐른다.”
젊은 시인에게 연애(戀愛)하는 이는 곧 세계이고, 또한 세계가 곧 연애하는 이이다. 당혹스러울 만큼 관능적인 언어는 만물을 제각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미를 가진 생명력의 존재로 우리의 눈앞에 불러낸다. 그 의미들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네루다의 시어 속에 도사리며 꿈틀대고, 그 수수께끼는 사랑에 빠져본 자만이, 그리고 사랑의 좌절을 겪어본 자만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를 풀어낸 이에게 스무 편의 사랑의 시 끝에 나오는 절망의 노래는, 그것이 단 한 편일지라도 아니 한 편뿐이기에, 더더욱 그 치명적인 통증을 기억케 한다.
그건 공격과 키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반짝인 마법의 시간이었다.
조타수의 두려움, 눈먼 잠수부의 격렬함,
사랑의 광포한 취기, 네 속에 모든 게 침몰했다.
― 『절망의 노래』 가운데
■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인… 해방된 자연 그리고 인간의 모습
― 네루다 시선
이 시선에는 모두 9권의 시집에서 고른 35편의 시가 실려 있다. 1924년 대학을 다니던 열아홉 때 발표한 『스무 편…』부터 시작해, 미얀마, 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지내던 극동 주재 영사 시절의 시들을 모은 『지상의 거처ⅠㆍⅡㆍⅢ』(1933, 1947) , 곤살레스 비델라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쫓겨 망명 생활을 하던 시절의 『모두의 노래』(1950), 그가 사랑했던 이슬라 네그라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쓴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1956), 예순 생일을 기념해 출간된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1964) 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집에서 뽑은 시들은 그대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세계가 거쳐온 변화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젊은 날의 초상이 있고, 네루다 스스로 가장 외롭고 고립되었던 시절이라고 말한 극동 주재 영사 시절에 바라본 세상의 모습, 독재 정권 아래 노동과 굶주림에 지쳐가는 민중의 모습, 그리고 만물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이슬라 네그라 시절의 시선이 있다.
인생의 각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 면모를 보인 시세계는 그러나, 박제화되지 않은 생명 그 자체의 자연을 그리고, 또 노동과 가난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해방된 인간을 꿈꾼다는 면에서, 한결같이 해방된 자연을 구하고 있다. 그 자연은 인간이 대상화한 자연이 아닌 인간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서의 자연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네루다의 시는 고동 소리가 그치지 않고 흘러나오는 하나의 ‘살’이다. 그 살은 “만물의 살이요, 그의 피는 자신의 피가 아니라 만물의 피”라고 옮긴이이자 시인인 정현종은 말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만물이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기를 소망하는 이 저항 정신 때문에, 네루다의 시는 그의 생전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로 살아난 네루다의 언어, 시인 정현종의 힘
네루다의 시가 지닌 역동성을 읽고 옮기기 위해서는 옮기는 이의 마음 또한 네루다의 것과 마찬가지로 활짝 열린 “무궁동(無窮動)”의 역동 상태여야만 할 것이다. 이를 한국 시단의 거목 정현종이 고스란히 살려낸 이 시집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이자, 또한 시인 정현종이 읽어낸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대한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비롯해, 『백 편의 사랑 소네트』, 『강의 백일몽』 등을 우리말로 옮겨 네루다를 국내 독자들에게 알렸던 정현종 시인은 2004년 칠레 정부에서 전 세계 100인에게 주는 ‘네루다 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