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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공부할 권리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저자 : 정여울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16
ISBN : 9788937432293

책소개


삶의 가치와 품위를 지켜 주는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에서 반짝이는 감성으로 길을 인도했던 외로운 여행자, 『헤세로 가는 길』에서 문학 거장의 마음을 탐험했던 지적 모험가, 정여울 작가가 이번엔 『공부할 권리』를 제안한다. 저자는 삶의 작은 가치들이 창조의 힘으로 꽃피우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할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책 읽기, 글쓰기, 여행, 결혼, 버리기, 용서하기, 희생하기, 이 모든 인생 항로에서 배움을 꼭 붙들고 있어야만 더 품위 있는 삶을 쟁취할 수 있다.

『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 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갈림길마다 때로는 처절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고, 때로는 아프게 삶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책에서 찾아 온 작가의 혜안을 집약한 걸작이다.

목차



오디세우스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집에 돌아와,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구혼한 남자들,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그 모든 남자들을 살해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분노가 매우 잔인하게 표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가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침착하게 통제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오디세우스의 놀라운 이성 때문입니다.

부당함에 대한 영혼의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중추가 망가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분노에는 사회를 파괴시키는 에너지가 있지만, 동시에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도 가지고 있지요. 인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를 파괴시키는 에너지로서의 분노’가 아니라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분노, 그러니까 ‘정의로운 분노’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1부 인간의 조건」중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맹렬하게 글을 썼지만 때로는 쓰는 것보다 지우고 고치는 양이 더 많았지요. 끊임없이 지우고, 고치고, 지우고 또 고치면서 그녀의 작품은 빛을 더해갔습니다. 일필휘지로 어느 날 밤 하루 만에 글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뮤즈의 환상’을 버려야만 진정한 창작의 자유가 찾아옵니다.---「2부 창조의 불꽃」중에서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멋진 스위트홈을 이루는 것이 현대인의 이상이 되었지만, 그것을 꿈꾸는 이상 자체가 ‘커다란 감옥’일 수 있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일찍이 간파합니다. 시민혁명은 분명 자유를 얻게 해 주었지만, 그 자유의 본질은 ‘돈을 벌어야만 얻을 수 있는 자유’였음을 말입니다.---「3부 삶의 품격」중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꿈에서 나오는 여러 인물이나 기호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 꿈이 ‘왜, 어떻게’ 나 자신의 운명과 상처를 반영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그 상처를 치유해야하는지 도움을 주는 것은 융의 분석심리학입니다.---「4부 마음의 확장」중에서

아들러는 열등감콤플렉스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길러야 함을 역설합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만 받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자기계발의 공식이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 사회생활을 해 보면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협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새뮤얼 존슨은 “자기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임을 잊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진정한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환상을 버릴 자유가 남아 있습니다. 국가가 우리의 운명을 바꾸게 놔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도록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랍니다. 아니,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래로 자라는 법, 내면으로 자라는 법, 무의식 깊숙이 영혼의 닻을 내리는 법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기만 하느라 우리 내면의 뿌리가 얼마나 자라야 하는지, 미처 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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