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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저자 : 토마스 만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01
ISBN : 9788937460562
책소개
위대한 시민 작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럽 사실주의 최후의 걸작
독일 뤼베크의 상인 가문 부덴브로크가의 4대에 걸친 번영과 몰락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싹튼 원초적 갈등을 형상화한 20세기 독일 문학의 정전
“인간이란 단 한 번만 살 수 있을 뿐, 또 한번 인생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게 슬퍼요.”
위대한 비판적 리얼리스트이자 위대한 시민 작가, 토마스 만의 첫 장편소설
출간 100년 만에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
토마스 만의 첫 장편소설이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1960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번역(이효상 번역)되어 출간된 적이 있긴 하지만 곧 절판되어 토마스 만 문학의 정수이자 원류인 이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토마스 만의 첫 장편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독자의 오랜 기다림을 채워주는 동시에 출간 100년을 맞아 제대로 된 한국어 번역본으로 꾸려졌다는 점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이 작품은 정확히 100년 전인 1901년에 출간되었다. 한 출판인의 제안에 의해 쓴 이 작품은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토마스 만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읽히는 책, 가장 사랑받는 책”(P. 멘델스존)으로 평가받았다.
북독일에 위치한 뤼벡의 상인 가문 부덴브로크가의 번영과 몰락의 과정을 묘사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19세기 독일 시민 사회의 전형적인 연대기를 그려 냈기 때문이다. 만은 제1대에 속하는 증조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할아버지 요한(장) 부덴브로크, 아버지 토마스 부덴브로크와 그의 아들 하노 부덴브로크로 이어지는 시민적 계보를 그려낸다. 19세기 독일을 뒤덮은 혁명과 반혁명의 조류, 산업 자본주의의 등장, 성찰적 경향의 점증 및 병적인 예술가적 성향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한 시대에 대한 연대기이자 결산”이라는 평가도 아울러 받았다.
국내에서도 이 작품은 염상섭의 『삼대』(1931)와 비교 분석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두 작품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을 본격적으로 밝힌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염상섭의 『삼대』는 서울의 이름난 만석꾼 조씨 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 이르는 삼대가 일제 치하에서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서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과 같이 한 가문의 일대기를 통해 사회적인 갈등과 위기의식을 조명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점은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 출간 1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유효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목차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싹튼 원초적 갈등을 형상화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
시민적 삶과 예술가적 삶의 이원성은 만이 주로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민2성과 예술성은 첨예하게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에게 예술가적 의식은 “상인 세계의 미덕들, 성실성이나 정직성, 시민적 계급의식, 정치적 보수주의 등의 특징들”과 대립되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 의식을 소유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요한 부덴브로크(1대), 그를 잇는 인물 장 부덴브로크(2대)가 시민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이들을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은 토마스(3대)에 이르면 혼란을 맞이하게 되고 하노(4대)에 이르면 파멸을 맞게 된다. 토마스와 하노를 통해 누대에 축적된 시민적 질서는 마감되고 가문이 몰락해 가는 것이다.
토마스는 심미적이고 데카당스한 충동을 지닌 반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시민 생활에 대한 동경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의지에서 나오는 데카당스한 측면을 시민적 삶이 지닌 미덕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이 극복 의지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발현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에게 긴장과 압박감을 더해 준다. 결국 그의 내면에 들끓는 데카당스한 욕망과 시민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점점 더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의 모습은 점차 시민이 아닌 시민의 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으로 전락해 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과된 시민적 생활 방식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토마스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건강한 시민 의식은 막을 내리고 쇼펜하우어에서 니체까지 이어지는 능동적 니힐리즘의 정신적 지류가 소설의 후반부를 지배한다.
아버지 토마스가 자신의 예술가성을 억압해 시민적 이상에 도달하려는 삶을 살았던 반면, 아들 하노는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과 동경을 억제하지 않는다. 하노의 예술가 기질은 일상 생활에서도 그대로 표출된다. 그는 학교에서도 시민적 사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나 성향을 키우지 못한다. 특히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비극적 음악, 화음을 벗어나는 모순 기법 등에 열광한다.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성질상 “도취, 망아, 몰락으로의 욕구, 에로틱 및 방종”과 연관되어 있다. 그를 통해 몰락에 대한 예감이 분명해진다. 그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예술가로서의 삶이며 그곳을 향한 출구가 요원함을 깨달았을 때 하노는 쉽게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그럼으로써 부덴브로크 가의 남자는 모두 사라지고 도시 귀족적 시민 계급의 몰락이 예견되고 있다.
가족사 소설의 테두리를 뛰어넘은 사회 소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인물, 토니-토마스의 여동생-를 통해 가족의 출생, 세례, 결혼, 이혼, 죽음, 상업적 성공 및 실패 등의 요소를 완벽에 가까운 묘사로 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가족 소설의 모델에서 보자면 여타의 소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족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데에는 1848년 3월 혁명과 자본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위협받는 시민성의 문제를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그려 낸 데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 뤼베크 시민의 커다란 반발을 샀는데 그 까닭은 혁명을 일으킨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 대해 부덴브로크 영사(2대)가 취한 보수 반동적 입장이 뤼베크의 유산자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하노를 통해 묘사되는 학교 장면은 프로이센적인 교육 방식의 문제점을 독일 소설 가운데 최초로 신랄하게 꼬집음으로써 이후 학교 교육이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