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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새로운 인생
저자 : 오르한 파묵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06
ISBN : 9788937461347

책소개


작품성과 대중성, 세계성을 동시에 획득한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로드 소설(road novel)
낯선 양식으로 그려 낸 ‘새로운 인생의 의미 찾기’

인생을 바꿔 놓은 책 한 권을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 오스만은 이스탄불의 평범한 공대생이었다. 어느 날 아름다운 여학생 자난을 보고 그녀가 들고 다니던 책을 구해 읽은 뒤, 오스만은 거부할 틈도 없이 일순간에 그 책에 사로잡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의 또 다른 추종자이자 자난의 연인인 메흐메트를 만나지만 메흐메트는 갑자기 사라지고, 자난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오스만은 그를 찾아, 그리고 책이 안내하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기나긴 버스 여행을 시작한다. 사랑에 이끌려, 새로운 인생에 목말라하며 그들이 터키의 방방곡곡으로 향할 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르한 파묵은 이 작품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동경, 근대성의 피투성이 상처에 관한 기록, 전통적인 가치들을 겨냥한 서구의 “거대 음모”를 긴 호흡의 시적인 문장을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 낸다. 시각적 감각에 의해 변형된 풍경들과 두 사람이 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은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과 삶의 장면들을 서서히, 그리고 내밀하게 드러낸다.

목차


제3세계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가

오르한 파묵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라는 한계에 갇혀 일개 국민문학에 머물지 않고 이를 극복하여 세계 현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작가로 평가받는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은, 마치 터키가 서양과 동양의 접점에 있는 것처럼, 서양 문학과 동양 문학의 접점에 서 있다. 그가 협소한 지역 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 세계문학과 같은 접점에 있다는 것은, 혹은 세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은, 국수적이고 폐쇄된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정서와 인류의 보편성과의 결합을 시도하는 문학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민음사에서는, 1999년 이난아 씨의 번역으로 출간하였던『새로운 인생』을 전면 개정하여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이난아 씨는 『새로운 인생』 출간 당시 터키에 체류하면서, 이 ‘새로운 작가’에 대한 열풍을 몸소 경험하였다. 이난아 씨는 작가와의 교감을 통해, 이 작품을 서구화된 언어나 역사, 문화 의식이 아닌, 고유의 터키어와 고유의 역사, 문화 의식 그대로 담아내었다.

양식의 새로움으로 ‘새로운 인생의 의미 찾기’를 그려 낸 로드 소설(road novel)

이 소설은 주인공인 오스만이 어떤 ‘책’ 한 권을─작품의 중간 이후에 그 책의 제목이 『새로운 인생』임이 밝혀진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의 제목은 독자들이 읽고 있는 소설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읽은 소설이기도 하다─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고백으로 시작되고 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주인공은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이 ‘책’의 비밀을 풀기 위해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여행과 모험을 한다.

작가는 이 여행과 모험을 대단히 감각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문체와 미스터리적인 스토리, 추리적 기법으로 전개한다. 버스 여행(이 작품이 로드 소설이게 하는 매개체가 버스이다.)에서 주인공과 함께 같은 속도로 끌려가는 독자는 어느 순간, 미비한 옛 인생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실현할 어떤 실마리를 찾을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새로운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시련’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말을 빌리면, 새로운 인생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다. 그렇지만 이 행복은 너무도 순간적이며 너무도 헛되다.

오르한 파묵은 작품의 주제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 작가다.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의 제목도 중반부에 가서야 밝힌다. 파묵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플롯을 짜고, 추리적 기법으로 작품 곳곳에 특별한 장치들을 숨겨 놓아 독자들로 하여금 풀어 보도록 하고, 은유와 암유적인 문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 세계의 서평지들은 그가 제시한 ‘새로운 인생’이라는 가공적인 세계의 의미를 밝혀내려 했지만, 그것은 가상일 수도 있고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맺는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은 “모든 것이 사실이고 모든 것이 거짓이다. 세계는 책만큼 거대하고,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하다. 책 속에서 찾은 것을 인생에서도 찾으려는 행위는 헛된 것이므로, 터키어로 말한 대로 자신 있게 책 속에 남아 있자.”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볼 수 있듯, 오르한 파묵은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의 가공적인 세계를 만들어 그 세계에서 독자들이 작가가 제시한 것이 아닌, 독자 개인에게 고유한 ‘의미’를 찾도록 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인생’이란 주인공 오스만이 읽은 책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이 지금 손에 들고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주인공 오스만의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모험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주인공과, 그가 죽인 메흐메트, 그리고 르프크 아저씨 등이 어느 순간 동일해진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읽은 『새로운 인생』이 독자들이 지금 읽고 있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독자들 역시 주인공 오스만과 저자인 오르한 파묵,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과 동일시된다. 소설의 화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누구인지,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 ‘도처의 사람들이 서로 동일해지는 상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은 이러한 ‘양식상의 새로움’으로 ‘새로운 인생의 의미 찾기’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등장인물을 조종하여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소설 양식과 다른 점이다. 파묵은 독자들로 하여금 텍스트 속에 있는 실마리를 추적하고 그 의미 찾기를 기대하며 이 소설 속에 특별한 장치를 숨겨 놓았다. 그러한 퍼즐과 장치들을 거쳐서 ‘자아와 사랑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함께 한다면,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독자의 영혼을 뺏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가 오르한 파묵의 문학관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시도하는 새로운 소설 형태에서 항상 독자들의 감응을 계산한다. 그는 ‘독자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하면서 소설을 구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거의 모든 소설을 건축가처럼 치밀하게 설계한다. 텍스트들은 독자들에게 해결 방법을 제시함에 있어 은유 및 암유적인 문체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책을 상상력을 총동원해 추적해야 한다.

오르한 파묵의 텍스트들을 보면 모티브나 내용 면에서 많은 연구를 하고 형식과 구성 면에서도 진지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독자들에게 소설 쓰는 작업이 건축물을 짓듯이 세밀한 주의를 요하는 작업임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려면 작가의 가공적 세계를 퍼즐을 풀듯이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파묵의 모든 소설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의 첫걸음이다. 이스탄불이나 터키 전역을 돌아다니는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내면세계에서 ‘자아’, 결국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파묵 자신도 이에 대해, “이것(자아)은 우리 곁에, 어쩌면 먼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감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르한 파묵 자신은 소설을 쓰는 것(창작)을 인생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그의 소설 미학에 관한 견해는 소설에 풍부한 사회적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적 심오함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언급이다. 또한 그는 “문학은 신성하고 텍스트는 외부 세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감춰진 부분들이나 풍부한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예술을 일종의 종교처럼 신성하게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오르한 파묵은 사회 참여적인 소설관을 가지고 있다.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 자신이 좌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좌익주의의 의미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좌익주의는 모든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텍스트를 쓴다는 것과 역사에 대한 냉철한 탐색과 분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행위와 참여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에서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오르한 파묵은 그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와 함께 ‘글쓰기’의 행위에 창조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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