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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의 발명(세계문학전집165)
저자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08
ISBN : 9788937461651
책소개
바다 한복판 불가사의한 섬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로맨스
순간과 영원 그리고 환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기묘한 이야기
보르헤스와 함께 중남미 환상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대표작. 그는 전후 라틴 아메리카 소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절정의 문을 열었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비오이 카사레스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20여개 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모렐의 발명』은 외로운 망명자 ‘나’가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에 직면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숨은 비밀을 캐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과도 닿아 있고, ‘이상한 사람들’의 정체가 모렐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영사기에 의해 투사된 영상, 즉 이미지/환영이라는 점에서는 공상과학 소설로 볼 여지도 있다. 또한 그 영사기에 찍히면 반복해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영원의 삶을 획득하고 현실 너머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타지로 이해될 수 있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했던 눈앞의 여인이 그녀의 실체가 아니라, 다만 영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이 기괴한 사랑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상황 묘사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모렐의 발명』은 시간과 환상, 그리고 사랑이 빚어낸 가상의 현실에 관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전인 1940년에 쓰인 이 소설은 환상과 가상현실에 대한 집착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예견하였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실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목차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만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 SF와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의 삼중주로 짜인 완벽한 플롯
비오이 카사레스의 문학 세계는 데뷔작이었던 『모렐의 발명』에서부터 이미 성공적으로 드러났다. 20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알랭 로브그리예가 각본을 쓴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nn?e derni?re ? Marienbad)」(1961)에 영감을 주기도 한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노를 저어 바다 한복판 ‘빌링스’라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으로 도망을 쳐 왔다. 살인적인 기세로 덮치는 파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명할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되게 보내던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섬에 나타났다. 나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다가, 매일 오후면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한 여인을 보았다. 구불거리는 짙은 머리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두 손.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발각돼 잡혀간다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이 가도 그녀는, 그리고 사람들은 내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는 매번 똑같은 대화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호기심과 공포가 한꺼번에 나를 짓누른다.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여인의 곁에서 살기 위해 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외로운 망명자 ‘나’가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에 직면한다는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 추리 소설, 환상 소설의 측면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 숨은 비밀을 캐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 같고, ‘이상한 사람들’의 정체가 모렐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영사기에 의해 투사된 영상, 즉 이미지/환영이라는 점에서는 공상과학 소설로도 볼 수 있으며, 그 영사기에 찍히면 반복해서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영원의 삶을 획득하고 현실 너머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타지로도 볼 수 있다.
소설의 출발은 이렇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만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 포스틴은 모렐이 발명한 영사기로부터 재생되어 나온 영상이다. 그녀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몇 주 전, 혹은 몇 년 전 이 섬에서 여름을 보냈고, 그때의 일상이 모렐의 영사기에 찍혀 조수 간만의 주기에 따라 규칙적으로 재생된다. 피사체를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적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하는 영사기에 힘입어 그들 모두는 영상 속에서 행복했던 여름 한때를 영원히 반복해서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완벽한 현실로 구성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눈앞의 여인이 그녀의 실체가 아니라, 다만 영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그 자신 역시 영사기에 찍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인데, 그도 그럴 것이 영사기에 찍히는 순간, 피사체는 서서히 죽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서의 영원한 삶이라는 ‘불멸’을 얻기 위해서는,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불멸의 대가로 실체는 파괴된다. 이러한 섬뜩한 사실에도,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여자와 함께 영원히 상영되기를 택한다.
이 기괴한 사랑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상황 묘사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해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설명했던 섬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의 비밀은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무릎을 탁 칠 만큼 아귀에 들어맞게 훤히 밝혀진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 덕에 이 소설은 독자를 완벽한 플롯 속으로 끌어들인다. 바로 이것, ‘고안되고 구성된 이야기’로서의 순수한 소설이 비오이 카사레스가 추구했던 문학이며, 보르헤스가 극찬했던 문학이다.
영혼을 기록하고 영원이라는 꿈을 창조할 수 있는 기계
― 덧없는 삶과 불안한 사랑보다 더 확고부동한 환상의 세계
이 작품은 시간과 환상, 그리고 사랑이 빚어낸 가상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과 소유하고 싶은 대상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의 힘으로 실현되었을 때, 그리고 다가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공상 과학, 판타지와 미스터리로 잘 버무려 보여 주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시간 개념에 대한 거부와 불멸의 탐구, 사랑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구든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만한 가정, 모두의 삶의 감정과 사건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기계 장치로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부터 출발해 정교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소설은 죽지도 않고 행복도 잃지 않으려는 인간 욕망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이는 보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 즉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개인이란 대역 혹은 잃어버린 원본의 복제품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독자들에게 이런 상상적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적 존재들과 접촉하거나 의미 있는 교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실체인 줄 알았던 세계가 환상임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다만 놀랍기만 한 사실이 아니다. 삶 자체가 덧없고 또 사랑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환상일지라도 확고부동한 불멸이 되기를 택하는 편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미지와 환상, 비현실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견
―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품들로 가득 찬 세상
본질적으로 이 책은 복제품이 실재하는 것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원본에 가까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상상한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무성영화배우인 루이스 브룩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집필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텔레비전이나 스크린 위에 복제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결국 우리에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유명인들(연예인들)에게 사랑이나 집착 같은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다. 환영을 사랑한 것은 『모렐의 발명』의 주인공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환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오래된 흑백 영화에 나오는 매혹적인 여배우, 이제는 죽고 이 세상에는 없거나 늙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을 여배우조차, 우리는 스크린 위의 그 모습, 젊고 아름다웠던 때의 모습만을 보고 사랑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전인 1940년에 쓰인 이 소설은 환상과 가상현실에 대한 집착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예견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환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조차 그 영상들 속에 삽입하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실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상으로 기록된 순간은 영원성을 획득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그것은 실재일 수 있다.
세계의 확실성에 회의를 제기하는 문학
―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환상 문학의 선구자
비오이 카사레스가 추구한 환상 문학은 이렇게 있을 법하지 않은 비현실을 그리지만, 사실은 오히려 더욱더 ‘완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애초 그가 환상을 추구한 것이 구체적 현실로부터의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 탐구를 위한 비현실 추구. 환상은 엄연히 현실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그는 어느 순간까지는 완전히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가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을 슬쩍 접목시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함을 역설적으로 묘사하면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비오이 카사레스는 사실주의 문학이 간과했던 세계의 진실을 포착했다. 세계에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비오르헤스'(비오이+보르헤스)라고 불릴 만큼 늘 보르헤스와 함께 묶여 언급되던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바로 이런 점에서 보르헤스와는 변별되는 문학을 추구했고, 어느 면에서는 보르헤스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