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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관계
저자 : 이수현
출판사 : 대명종
출판년 : 2008
ISBN : 9788951024177
책소개
복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가?
어머니의 존속 살인 용의자로 경찰서에 잡혀 있던 재현에게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이 말한다.
“당신의 이복형과 결혼하기로 했어.”
그리고 6년 후, 다시 돌아온 한국.
재현이 아닌 제임스가 되어 돌아온 그는, 6년 전 자신을 살인자로 만든 그들에게 복수를 시작하고, 자신의 사랑을 배반한 그녀, 한지애에게 정부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담보로.
복수라는 이름으로 그와 그녀의 치명적인 관계가 시작된다.
“나는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야!”
“물론 아니지. 원래부터 내 소유였으니까.”
“내가 거절한다면?”
“지옥이 어떤지 맛보게 해줄 수도 있어.”
“강민수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면 번지수가 틀렸어. 나는 그이가 지옥에 가든 지옥의 맛을 보든 아무 상관없어.”
지애가 단호하게 말하자 재현은 호탕하게 웃었다.
“뭐가 그리 우습지?”
“과연 한지애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를 어떻게 하지? 내가 지옥이 어떤지 맛보게 할 사람은 강민수와 강호주뿐만 아니라 당신 아버지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되면 당신 가족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돼. 아들이 그렇게 돼도 상관이 없나?”
“상, 상호는…….”
하마터면 진실을 털어놓을 뻔했다.
“상호가 내 조카니까 너그러이 봐주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 어떻게 하겠어? 내 정부가 되겠어, 아니면 지옥 끝까지 내려가겠어?”
목차
프롤로그
“강재현, 이리 나와. 면회다.”
철컹, 하는 차가운 소리가 재현의 귓전에 울렸다. 재현은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며칠째 뒤척이고 잠을 자서 그런지 온몸이 쑤셨지만 지애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자네 여자친구인 모양인가봐? 엄청난 미인이네. 게다가 부잣집 딸이야? 외제차에다가 기사까지 딸려서 왔더라고.”
형사가 휘파람을 휙 소리가 나게 부른 다음 재현에게 눈짓을 했다. 그는 이 경찰서에서 유일하게 재현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이었다.
재현은 평소 만나는 곳이 아닌 작은 룸으로 안내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형사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지애. 재벌가의 상속녀지만 재현과 만날 때는 늘 평범하게 입고 나왔었다. 그런데 지금 지애는 보통 때와는 전혀 달랐다. 스모키 스타일의 화장부터 시작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명품으로 휘감았다.
게다가 그녀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이기까지 했다. 재현은 지애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자 자신도 앉으려다가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앉아.”
달랐다. 분명히 한지애가 맞았지만 마치 도플갱어처럼 달라 보였다.
“나는 이런 장소라면 키스하기 딱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재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의자를 끌어다가 지애 바로 앞에 앉았다. 재현은 지애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지애는 재현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보고 싶었으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애는 눈물로 인해 눈 화장이 지워질까 두려운 나머지 손가락으로 눈 사이를 눌렀다가 떼었다.
“당신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하러 왔어.”
지애는 일부러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하면 되잖아. 안녕? 잘 지냈어? 그렇게 입으니까 진짜 부잣집 딸처럼 보여.”
재현은 지애의 모습이 낯설었다.
“나, 부잣집 딸이잖아.”
“그랬지. 지금도 그렇고.”
재현의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나 결혼해.”
“뭐?”
재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상대는 강민수. 당신 이복형하고 예정대로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서 안녕이라고 말해 주려고 왔어. 원래는…….”
“그 입 다물어.”
재현의 차가운 말투가 방 안의 기온을 영하로 떨어뜨렸다.
“재현 씨, 현실을 직시해.”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당신은 내 여자야. 며칠 전에도 당신은 내 품 안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어. 너는 강민수의 여자가 아니라 강재현의 여자라고.”
“그래,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강민수의 약혼녀야.”
지애가 왼쪽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다이아몬드가 지애의 왼쪽 손가락에 끼어져 있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가 가짜처럼 보이는 건 재현의 착각이었을까?
“당신을 기다릴 수 없어. 존속 살인죄가 어떤 건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안 그래?”
“내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재현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 일을 알리게 되면 나는 파멸이야.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나는 원래 공주로 태어났어. 공주는 절대로 시녀가 될 수 없어. 그렇게 되면 나는 불행해지고, 상대방 또한 불행하게 만드니까. 나는 라면도 못 끓이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치장하고 옷 입고 클럽에 다니는 것뿐이야. 이런 옷만 사 입어야 하는데 나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지애가 아니었다. 재현이 알고 있는 지애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도 행복하게 웃는 그런 여자였었다.
“당신하고 만났을 때 입었던 청바지도 디자이너 제품이야. 티셔츠도 마찬가지고.”
지애가 비웃듯이 피식 소리를 냈다. 재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내 결혼식 날 못 올 테니까 미리 축하해 줄래?”
지애는 모피코트의 깃을 여미며 일어났다. 짧은 치마가 돋보이도록 긴 부츠를 신은 그녀의 다리가 재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축하해.”
“고마워. 나도 당신이 잘 되기를 빌게.”
지애는 마치 벌레라도 보듯 재현의 낡은 옷을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재현을 데리러 온 형사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재현은 주먹을 꽉 쥔 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애를 잠시 응시했다.
‘한지애, 강민수에게 너를 잠시 맡기는 것뿐이야. 곧 너를 되찾을 거야. 너와 나는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돼.’
돌아서서 걸어가는 재현의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