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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저자 : 정수복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11
ISBN : 9788954614405

책소개


'전문적인 산책자' 정수복의 프로방스 산책기.
고단한 일상이 잠시 쉬어가는 곳, 프로방스에서 찾아낸 '완전한 휴식'


사회학자이자 작가이며 '산책자'인 정수복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속도에 맞게 걷는 일, 자기만의 순간을 얻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과제로 여긴다. 전작인 『파리를 생각한다』와 『파리의 장소들』을 통해 도시 걷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성찰을 보여준 그가 이번에는 느리고 한가롭게 걷기 좋은 곳, 프로방스로 떠났다. 그의 프로방스 산책일지인 이 책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곳의 풍경들을 글과 사진으로 세세하게 담아낸다.

프로방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휴식과 영감의 장소였다. 프레데릭 미스트랄, 알퐁스 도데, 페트라르카, 장 지오노, 알베르 카뮈, 르네 샤르 등의 작가들은 물론이고, 마티스와 피카소, 샤갈, 니콜라 드 스탈, 고흐 등 수많은 화가들이 프로방스에 대한 아낌 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반 고흐와 함께 프로방스를 걷는다. 프로방스야말로 고흐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말하는 그는 예술가들이 사랑한 프로방스의 모습, 그곳에서 보낸 그들 삶의 순간들을 다양하게 전해준다.

한편, '정신적 망명객'을 자처하는 그는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통해 끊임 없는 사색과 연구의 시간을 갖는다. 어떻게 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하여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낯선 풍경 속에 친근함과 자유로움, 여유를 품고 있는 프로방스. 그곳에서 저자가 쉬지 않고 던지는 의문과 고민, 생각들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독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우리 각자의 리듬으로 걷는 산책의 시간, 사색의 기회를 선물한다.

목차


속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장소, 프로방스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우리는 흔히 돈을 버는 수단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전문적인 산책자’라 말한다. 현실적으로 돈도, 경력도 되지 않는 산책을 ‘천직’으로 여기고, 사회와 “체제가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요구에 맞추어 자신의 리듬으로 걷는 산책”을 하면서 ‘자기만의 순간’을 얻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과제로 여기는 사람이다.

휘황해 보이기만 하던 파리에서 인생과 예술이 깃든 아늑한 골목과 장소 들을 발견하고 산책하며, 도시 걷기에 대한 성찰을 담은 저작 『파리를 생각한다』와 『파리의 장소들』을 발표한 사회학자이자 작가, 정수복의 신작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그가 이번에 발걸음을 옮긴 곳은 마치 ‘산책자’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인 듯, 느리고 한가롭게 시간이 흘러가는 곳 ― 오후 한시면 상점도, 거리도, 사람도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어 고단한 일상이 일시정지 된다는 프로방스다.
그가 돌연 프로방스로 떠나 자기만의 프로방스 산책일지를 낱낱이 기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프로방스의 장소들을 걷고 그곳의 자유로운 영혼들과 대화하며 그가 찾은 ‘완전한 휴식’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분주함에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한국인”들에게, 일단 자동차를 버리고, “발소리를 낮”춘 채 프로방스의 작고 인간적인 규모의 마을로 조용히 따라 들어와보라 말한다.

산책자, 대도시를 떠나 사람의 마을로 걸어가다
프로방스에서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


이 책은 어느 여름 그가 일상의 도시인 파리를 떠나 휴식과 영감의 장소 프로방스에서 한 달 동안 써내려간 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프로방스의 자연과 인물, 특징을 소개하고, 그가 프로방스에 매혹당한 계기를 써내려간 도입부의「나를 사로잡은 프로방스」와 책 마지막 부분의 「반 고흐의 장소들을 찾아서」를 제외한 본문은 그의 ‘프로방스 일기’를 형식과 문장까지 그대로 살려 실은 것이다.
그의 산책이 뚜렷한 목적지와 명소를 향해 이루어지는 ‘관광’과 달리, 언제나 그 자신만의 표지(8 ?에 따라 이루어지는 목적 없는 방황이었듯, 이 ‘프로방스 일기’도 애초에 출판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집필중인 다른 원고를 마무리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프로방스로 떠났지만, 프로방스에서 영감과 사색으로 이끄는 수많은 장소와 사람 들을 발견하고 홀린 듯 ‘프로방스 일기’를 써내려간다.

프로방스에 가면 인생이 아름답게 생각된다. 왜일까? 프로방스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까닭은 무엇보다도 햇빛 때문이다. 노랗고 투명한 햇빛 없는 프로방스는 상상할 수가 없다. 여름의 메마른 대지와 건조한 대기 속에 그야말로 부서져 터지는 햇살 속에서 인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햇빛은 프로방스의 그 맑고 건조한 대기 속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글자 그대로 부스러뜨리고 터뜨려서 흩뿌려놓는다. 그런 햇빛에는 우울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반 고흐처럼 햇빛에 굶주린 음산한 북쪽 나라 사람들이나 나같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혼잡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직도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31쪽)

프로방스의 풍성한 햇살과 더위를 식혀주는 남불 특유의 바람 미스트랄,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라벤더 향기,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올리브 나무와 황금빛 벌판, 장엄한 황혼”―프로방스의 자연은 그 자체로 축복이고 은총이다. 그는 프로방스의 압도적인 풍광 한복판에 서서 눈부신 프로방스의 빛과 자연 속에서 창작하고 휴식을 취한 예술가들의 면면을 떠올린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레데릭 미스트랄, 한 양치기 소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 「별」로 세계에 프로방스를 알린 알퐁스 도데를 비롯해, 프로방스의 퐁텐-드-보클뤼즈에 자기만의 은둔처를 만드었던 페트라르카, 장 지오노, 알베르 카뮈, 르네 샤르 등의 작가들은 물론이거니와 마티스와 피카소, 샤갈, 니콜라 드 스탈, 고흐 등 수많은 화가들이 프로방스로 몰려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프로방스에는 “창작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비단 자연뿐만 아니라 프로방스에는 원형경기장과 고대 극장과 같은 오랜 역사의 유적들이 있어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발동”시키며, 곳곳에 펼쳐진 시골장은 흙냄새와 더불어 이곳이 소박한 사람들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간적인 마을임을 느끼게 한다.
그의 발걸음은 “소가 휴식을 취하듯 편안한 모습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뤼베롱 산에서부터 프로방스의 강한 햇빛과 바람에 시달려 헐벗은 황량한 알피유 산맥에 이르기까지 프로방스의 대자연을 거침없이 거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책장을 넘기면, 다시 시내로 돌아와 미로와도 같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발적 방황’에 들어 있기도 하고, 레아튀 미술관과 아를의 고대 박물관, 만국박람회 사진전 등 박물관과 사진전을 관람하며 그가 사랑하는 예술혼들과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지 열렬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프로방스에서 유일하게 분주한 것이 있다면, ‘프로방스만의 빛나는 순간들과 풍경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날렵하게 이성과 감성의 촉수를 세운 그의 눈길과 발길뿐일 것이다.
지난날 그의 지난 저서가 출간됐을 때 ‘지적인 좀머 씨의 노트’와도 같다는 평이 있었던가.
그의 신작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은 그날그날 프로방스에 울리는 ‘우연의 음악’에 따라 걷는 한 지적인 산책자를 근거리에 쫓아다니며, 그의 일기장을 엿보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상과 가슴의 울림까지도 고스란히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반 고흐가 나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다”
반 고흐와 함께 프로방스 산책하기


여행은 낯선 자연과 도시뿐만 아니라 모르던 사람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내가 프로방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이런저런 경우에 만난 프로방스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영혼과 만나 세상 사는 방식과 삶의 의미에 대해 나눈 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가운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반 고흐다. (8~9쪽)

이 책에는 프로방스에서 한 시절을 보낸 예술가들과, 지금 프로방스에서 ‘예술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화인처럼 강렬하게 남을 이름은 아마도 단 하나일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프로방스에 유일무이의 화가 공동체를 열길 꿈꿨고 친구라 믿었던 고갱을 불러 함께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나, ‘파리에서의 세속적 성공’을 꿈꾸는 고갱과 갈등하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홀로 그림과의 사투를 벌이다 끝내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고 자살한 비운의 화가.
저자는 일반인들의 삶의 문법을 거부하고, 고통스럽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는 자들은 일생에 한 번쯤 반 고흐와 대화를 나누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프로방스는 반 고흐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한다.
반 고흐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 3년을 보낸 프로방스에 머무는 동안, 저자는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눈 편지들을 읽다 잠이 들고, 낮이면 고흐와 테오가 함께 묻힌 묘소, 작고 쓸쓸한 ‘빈센트의 방’을 재현해둔 기념관, 고흐가 아를 주민들의 청원으로 감금된 정신병원, 고흐가 「론 강이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등 불후의 명작을 그린 장소 등 아를과 생-레미에 흩어져 있는 ‘반 고흐의 장소들’을 산책하며 반 고흐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고흐의 내면에 꿈틀거리던 “고통과 기쁨과 좌절과 희망의 세계”에 전율하고 생전에 단 한 차례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의 불운을 애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고흐에게 강렬한 동료의식을 느낀다. “가난과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와 집념으로 계속 그림을 그렸”던 고흐, “평범한 생활인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온 존재를 걸 수 있는 ‘천직’을 찾”아 헤맸던 고흐에게서 주류 사회학이 요구하는 길과는 사뭇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길을 묻는 것일까.
프로방스의 정수복은 어느덧 고흐의 가장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가 되어 고흐와 더불어 산책한다. “우유 한 잔은 1프랑, 빵 한 쪽은 2프랑이 되지만 그림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하루도 빠짐없이 돈 걱정에 시달려야 했던 고흐의 인간적 고뇌를 기록하다가, 문득 자신이 그날 별 고민 없이 쓴 돈을 헤아려보는 저자의 모습은 그 둘이 어느덧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폴 고갱 같은 잔인한 족속”만이 있었을 뿐, 친구 하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뎠던 고흐, 그리고 미국식 사회학을 받아들여 과학과 통계와 객관만을 신봉하는 힌국 주류 사회학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망과 길을 찾고자 몸부림쳐온 정수복. “대화는 산 사람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토록 뜨거운 사회학, 이토록 냉철한 예술!
“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회학이 대학 안에 제도화되면서 사회학자들은 사회학 공동체가 인정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고 그것을 통해 평가받는 제도를 만들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사회학을 주도하는 미국 사회학에궼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점점 더 일반 독자들이 아니라 학술지에 제출한 자기의 글을 심사하는 익명의 동료들을 향해 글을 쓰는 논문 제조기들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보통 사람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점차 ‘사회학을 위한 사회학’이 되었다. (…)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회학’이라는 것을 꿈꿔왔다. 그것은 주류 사회학에서는 인정받기 힘든 입장이다. 사회학자는 ‘나’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회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을 임무로 삼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은 그런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사회학이다. (…) 예술이 주관성을 강조한다면 사회학은 객관성을 강조한다. 나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글을 쓰고 싶다.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부드러우면서도 냉정한 문체를 갖고 싶다. (114~119쪽)

그는 ‘정신적 망명객’을 자처한다. 과학과 논문의 세계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주류 사회학으로부터, ‘산보객’의 걸음을 가로막는 속도와 경쟁의 도시 서울로부터 그는 정신적으로 망명한 사람이다.
프로방스는 그의 마음의 피난처이자 새로운 망명지였다. 고흐와 페트라르카 등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의심하고 ‘전체’를 알고자 한 인물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정수복의 프로방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하는 사색과 연구의 장소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그는 프로방스에서도 끊임없이 걷고 생각한다. 어떻게 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하여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진정한 지식인은 기존의 입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분류가 불가능한’ 자기만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식인은 현실 세력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어느 진영에 분명히 속한 사람들이 힘을 쓰는 현실 세계에서 대우받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112~113쪽)

그는 프로방스에서도 여전히 산책자이다. 몸을 움직여 두 발로 걷고, 걸으면서 목격한 것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성’이 매몰되어가는 이 세계에 끝까지 ‘인간’으로 남겠다는 선언이자 운동은 아닐까.
왜 프로방스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끝내 프로방스는 산책과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이므로, 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가 추구하는 휴식과 산책은 언제나 눈만 즐겁게 하는 관광이 아닌, 자기 안으로의 빨아들임이었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향해 길을 내는 산책자 정수복. 일상의 도시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로 향한 그의 발자국이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해온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은 ‘빨리빨리’병이다. 그것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애쓰다가 걸린 병이다. 한국 사람들은 느리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조급증에 걸려 삶을, 시간을, 풍경을, 음식을, 포도주를, 사람을, 햇빛을, 바람을, 정적을 음미하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방스는 그런 조급증을 치료하는 요양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일정 기간을 지내다보면 무엇이든 깊이 느끼고 음미하고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프로방스는 결코 능률과 실질과 효율을 숭상하는 바쁜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무언가를 배우고 견문을 넓히려는 사람들이 찾아갈 곳도 아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소유 그리고 안락함을 꿈꾸는 사람은 크고 화려한 도시로 갈 일이다. 돈을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은 결코 프로방스가 지닌 아름다움과 비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세속의 허영을 뒤로하고 느리게 살려는 사람들이라야 숨어 있는 프로방스의 진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방스는 소유한 것이 많지 않아도 이 땅 위에 사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한가롭고 여유 있게 즐기며 사는 방법savoir-vivre을 안다. 프로방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분주함과 부산함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주관하며 느린 속도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프로방스로 가야 한다. (45~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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