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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한시 선집
저자 : 강혜선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12
ISBN : 9788954618670
책소개
여성이 한시를 접하기 어려웠던 조선시대에도 한시를 지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드러낸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사회적 소외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남성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한시를 통해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드러내고 나아가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여성 한시 선집』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긴 한시 작품을 『국조시산國朝詩刪』『대동시선大東詩選』 등 역대 주요 시선집에서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누군가의 연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한평생을 살다 간 그녀들 삶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1부 ‘그리움과 기다림의 목소리’에는 황진이, 이매창, 이옥봉, 김운초 등의 애정 한시를, 2부 ‘아내의 마음, 어머니의 심정’은 송덕봉, 김삼의당(金三宜堂), 서영수합 등 양반가 여성들의 한시를, 3부 ‘보고 싶은 가족, 그리운 고향’에서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신사임당, 김호연재(金浩然齋), 신사임당 등의 한시, 4부 ‘자연의 소리, 내면의 울림’에서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에 묻혀 자신의 내면세계로 침잠하고, 때로는 드넓은 세상을 주유한 여성들의 한시를 수록하였다. 5부 ‘책 읽는 즐거움과 시 짓는 기쁨’에는 여성들의 독서와 시작(詩作)의 풍경, 6부 ‘고달픈 인생살이, 안과 밖’에서는 옛 여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 시들을 감상할 수 있다.
목차
한시로 만나는 옛 여성들의 뜨거운 삶과 사랑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한시 창작은 필수 교양이었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신분을 막론하고 한시를 향유하기가 어려웠다. 가사에 전념해야 하는 부녀자가 시를 지어 내보이는 것은 당시의 사회 통념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생활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로 활용했던 것은 국문(國文)이었다. 그럼에도 한시를 지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드러낸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사회적 소외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남성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한시를 통해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드러내고 나아가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이 책 『여성 한시 선집』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긴 한시 작품을 『국조시산國朝詩刪』『대동시선大東詩選』 등 역대 주요 시선집에서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누군가의 연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한평생을 살다 간 옛 여성들이 남긴 한시 속에는 그녀들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한시들을 읽다보면 조선시대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조선 한시사에 이름을 새긴 여성들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서 한시 작품을 남긴 이들은 크게 황진이(黃眞伊), 이매창(李梅窓) 등의 기녀, 이옥봉(李玉峯) 등의 첩(소실), 허난설헌(許蘭雪軒), 송덕봉(宋德奉) 등의 사족(士族)으로 나눌 수 있다. 기녀 출신 시인들은 남성 문사(文士)들과 적극적으로 교유하며 자신의 작품과 시적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황진이다. 그녀는 서경덕(徐敬德) 등 당대의 이름난 문인, 선비 들과 어울리며 많은 일화와 함께 걸출한 한시 작품을 여럿 남겼다. 개인 시문집을 남길 정도로 많은 한시를 지었던 이매창이나, 한두 편의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 계월(桂月), 복아(福娥) 등도 남성 문인들과 인연을 맺었던 기녀들이다.
첩들 또한 우리 한시사에 여럿 이름을 남겼다. 탁월한 시재(詩才)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이옥봉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장가였던 신흠(申欽)과 홍만종(洪萬宗)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옥봉을 조선 제일의 여류 시인이라 평가했을 정도로 그녀의 한시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는데, 『명시종明詩宗』『열조시집列朝詩集』 등에 실려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19세기 서울에서는 첩들의 시사(詩社)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원(錦園), 운초(雲楚), 경산(瓊山), 죽서(竹西) 등은 한시 창작을 매개로 여성으로서의 연대를 공고히 하며 오랫동안 교유했다. 비록 사회적으로는 대우받지 못했지만 한시 창작 등 개인의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서는 기녀나 첩이었던 여성들이 사족 여성들에 비해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양반가의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확고한 유교 이데올로기 아래서 부녀의 덕을 내면화하고 몸소 실천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삶을 통틀어 학문이나 시문(詩文) 등을 영위하기가 오히려 힘들었다. 그래서 사족 여성들의 한시는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서도 대부분 유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석이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문인인 허난설헌의 한시가 유독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나 송덕봉 등 다른 명문가 여성 문인들과 달리 감각적인 시어들로 여성 고유의 정감에 충실한 작품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사족 여성이 한시를 짓거나 학문하는 것을 관대하게 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명문가의 여성은 부모형제와 함께 가정에서 자연스레 한시를 향유할 수 있었다. 당대의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홍석주(洪奭周), 홍길주(洪吉周), 홍현주(洪顯周) 삼형제와 시재가 뛰어났던 홍원주(洪原周)의 어머니 서영수합(徐令壽閤)이 그런 가문의 대표적인 여성이다. 몰락한 남인 집안 출신으로 문학에 뛰어났던 오빠들에게 시를 배워 이름을 알린 신부용당(申芙蓉堂) 또한 비슷한 환경에서 한시를 창작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기녀든 첩이든 사족이든 여성들의 한시가 오늘날까지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대부 문화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여성의 한시 창작을 비난하고 억압했지만 여성 한시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록으로 전한 이들 역시 사대부 남성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여성 한시의 향연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했다. 1부 ‘그리움과 기다림의 목소리’에는 황진이, 이매창, 이옥봉, 김운초 등의 애정 한시를 실었다. 우리 한시사에서 사랑을 소재로 한 남성 시인들의 시는 찾기가 무척 힘들다. 반면 여성 시인들은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노래했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성취나 수준을 논하기 전에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한시들이다.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봅니다.
―이옥봉, 「규방의 원망閨怨」
2부 ‘아내의 마음, 어머니의 심정’은 송덕봉, 김삼의당(金三宜堂), 서영수합 등 양반가 여성들의 한시 모음이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어머니로서 자식들에게 보내는 한시를 읽다보면 부부간, 부모 자식 간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물일곱 동갑내기 아내와 낭군이
몇 해나 긴 이별 하였던가요?
올봄에 또 서울로 떠나시니
귀밑머리엔 여전히 흐르는 두 줄기 눈물.
―김삼의당, 「서울 가는 남편에게贈上京夫子」
3부 ‘보고 싶은 가족, 그리운 고향’에서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신사임당, 김호연재(金浩然齋), 신사임당 등의 한시를 소개한다. 시집을 가거나 남편의 부임지에 따라가는 여성, 혹은 누군가의 첩이 되어 고향을 떠나는 여성들이 부모형제를 그리며 쓴 눈물겨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늙으신 어머니 고향에 두고
이 몸 홀로 서울로 가네.
머리 돌려 북평 마을 한번 바라보니
흰 구름 떠가는 아래 저문 산만 푸르네.
―신사임당, 「대관령을 넘으며踰大關嶺望親庭」
4부 ‘자연의 소리, 내면의 울림’에서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에 묻혀 자신의 내면세계로 침잠하고, 때로는 드넓은 세상을 주유한 여성들의 한시를 감상할 수 있다. 14세에 남장을 하고 집을 나서 우리 땅 곳곳을 돌아보고 금강산까지 올랐던 금원 같은 여성 시인도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모든 물 동쪽으로 흘러드니
깊고 넓어 아득히 끝이 없구나.
이제야 알았노라. 하늘과 땅이 커도
내 가슴속에 담을 수 있음을.
―김금원, 「바다를 바라보다觀海」
5부 ‘책 읽는 즐거움과 시 짓는 기쁨’에는 여성들의 독서와 시작(詩作)의 풍경을 담았다. 여성은 책을 읽고 시를 짓는 데에서 많은 사회적 제약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여성에게 독서와 시작의 즐거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강정일당(姜靜一堂), 남정일헌(南貞一軒) 등 책과 시에 오롯이 몰입하는 여성 시인들의 평온한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한시를 모았다.
누런 곡식은 온 들에 황금 물결을 이루고
정자 둘레 푸른 냇물은 옥구슬 소리를 쏟아내네.
서남풍이 불어와서 나뭇가지 울릴 때
외로운 등불 아래 책 읽기 마치니 날이 새었네.
―남정일헌, 「가을 경치秋景」 중에서
마지막으로 6부 ‘고달픈 인생살이, 안과 밖’에서는 옛 여성들이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 시들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은 신분을 막론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이 남긴 한시에는 끼니를 때울 길이 없어 고을 수령이나 오빠에게 쌀을 꾸고, 돈 벌러 떠나는 남편을 격려하고,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담겨 있다.
해가 비단 창에 뜨면 문득 다시 걱정이 되니
빈손으로 배 부르기 구하나 계책이 없어요.
두 분 오라버니께서는 배 위의 쌀을 아끼지 말고
보내주시어 이 누이의 구복 걱정 풀어주세요.
―김호연재, 「둘째 오라버니께 편지를 보내어 쌀을 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