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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저자 : 강신주
출판사 : 사계절출판사
출판년 : 2011
ISBN : 9788958285342
책소개
현실감 있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주는 '새로운' 인문학에 빠져보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강신주는 일반 교양독자들의 목마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대학 강단이 아니라 직접 대중들을 만나 소통하는 대중 아카데미에서 주로 강의해왔으며, 대학 강단에서의 일방적인 주입식 철학 교육이 아니라, 각자 삶의 고민과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나누고 공감한다. 이 책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장 잘 반영한 '현실감 있는 인문 공감 에세이'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고전 가이드북과 차별점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틀에 박힌 철학 고전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을 투영할 수 있는 모티프를 가진 인문학자들의 저작을 위주로 책을 구성한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여느 고전 가이드북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인문학자들인 이리가라이, 나가르주나, 이지, 라베송, 마투라나 등의 이름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독자들에게 현실감 넘치는 철학적, 인문학적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면서 마치 심리 카운슬링을 하듯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읽힌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
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라캉, 에크리
페르소나와 맨얼굴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이지, 분서
자유인의 당당한 삶 임제, 임제어록
쇄락의 경지 이통, 연평답문
공이란 무엇인가 나가르주나, 중론
해탈의 지혜 혜능, 육조단경
신이란 바로 나의 생명력이다! 최시형, 해월신사법설
습관의 집요함 라베송, 습관에 대하여
생각의 발생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지적인 통찰 뒤에 남는 것 지눌, 보조법어
관점주의의 진실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언어 너머의 맥락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하다 맹자, 맹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2. 나와 너의 사이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으로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사르트르,존재와 무
타인에 대한 배려 공자, 논어
수양에서 실천으로의 전회 정약용, 맹자요의
사유의 의무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기쁨의 윤리학 스피노자, 에티카
선물의 가능성 데리다, 주어진 시간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수성 정호, 이정집
섬세한 정신의 철학적 기초 라이프니츠, 신 인간 오성론
여성적 감수성의 사회를 위해 이리가라이, 나,너,우리
사랑의 지혜 장자, 장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서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 원효, 대승기신론소ㆍ별기
설득의 기술 한비자, 한비자
논리적 사유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 분석론 전서
3.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웃음이 가진 혁명성 베르그송, 웃음
아우라 상실의 시대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새로움이란 강박증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자본주의의 진정한 동력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유쾌한 소비의 길 바타유, 저주의 몫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운명은 존재하는가 왕충, 논형
미꾸라지의 즐거움 왕간, 왕심재전집
덕, 통치의 논리 노자, 도덕경
사랑, 그 험난한 길 묵자, 묵자
약자를 위한 철학 베유, 중력과 은총
주체로 사는 것의 어려움 바디우, 윤리학
결혼은 미친 짓이다 헤겔, 법철학
우발성의 존재론을 위하여 들뢰즈, 천 개의 고원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치안으로부터 정치로 랑시에르, 정치에 관한 열가지 테제
진정한 진보란 무엇일까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에필로그: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
더 읽어볼 책들
책소개
현실감 있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주는 '새로운' 인문학에 빠져보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강신주는 일반 교양독자들의 목마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대학 강단이 아니라 직접 대중들을 만나 소통하는 대중 아카데미에서 주로 강의해왔으며, 대학 강단에서의 일방적인 주입식 철학 교육이 아니라, 각자 삶의 고민과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나누고 공감한다. 이 책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장 잘 반영한 '현실감 있는 인문 공감 에세이'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고전 가이드북과 차별점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틀에 박힌 철학 고전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을 투영할 수 있는 모티프를 가진 인문학자들의 저작을 위주로 책을 구성한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여느 고전 가이드북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인문학자들인 이리가라이, 나가르주나, 이지, 라베송, 마투라나 등의 이름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독자들에게 현실감 넘치는 철학적, 인문학적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면서 마치 심리 카운슬링을 하듯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읽힌다.
목차
1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에픽테토스는 페르소나와 맨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간파했던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페르소나에 집착하다가 맨얼굴을 망각하거나, 혹은 맨얼굴에 신경 쓰다가 페르소나를 경시하는 것, 이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성찰로 인해, 우리는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갈등이 어디로부터 유래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그러나 잊지 말자! 맨얼굴이 없다면, 페르소나를 쓰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에게 맨얼굴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맨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행히도 맨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페르소나와 맨얼굴 -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중에서--- p.38
마음에 대한 것이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든 집착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강조했던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집착은 우리 자신을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고통에 빠진 타인에 무관심하도록 만든다. 특히 중요한 것은 후자의 측면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타자가 방치된 채 시들어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닌가? ― '해탈의 지혜 - 혜능 『육조단경』' 중에서--- p.68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규칙을 따른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하루하루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 그렇지만 문제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하기 쉽다.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역, 가족, 학교, 전공 등등에 의해 나의 문맥과는 일치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 '언어 너머의 맥락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_ --- p.104
2부 나와 너의 사이
과거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국가에서든 조화를 최고의 이념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조화라는 이념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다고 뿌듯해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실제로는 그녀가 가족들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으로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pp.127~128
간혹 나는 노약자 지정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야단치며 그 자리에 앉는 나이 든 사람을 본다. 이 노인에게는 노인들을 위한 자리에 젊은이가 앉아서는 안 된다는 당당함이 엿보인다. 노인은 젊은이가 몸이 불편하지를 헤아려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일어나라고 야단을 치는 노인이나 무엇에 쫓긴 듯이 자리를 뜨는 젊은이에게는 윤리적이라고 헤아릴 만한 데가 전혀 없다.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예를 중시했던 공자는 노약자 지정석에 피곤한 몸으로 앉아 있는 젊은이를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 그에게 있어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없다면, 예절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통찰 때문에 공자는 예절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최초의 동양 철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 '타인에 대한 배려 - 공자 『논어』' --- pp.140~143
선물을 받고 나면 항상 그 선물의 액면가와 유사한 대응 선물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관례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고받는 대부분의 선물이 명목상으로만 선물일 뿐, 그 이면에는 뇌물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데리다가 선물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강조하고 있는 논점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선물을 주고서 주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데리다는 그런 식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우리의 의지만이 선물을 선물로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선물의 가능성 - 데리다 『주어진 시간』' --- pp.165~166
노나라 임금이 새에게 베풀었던 애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맛있는 술 권하기, 궁정 음악 연주해주기, 맛있는 고기 먹이기 등등.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호의를 받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괴로운 시달림에 불과한 것이었다. …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바닷새를 놓아주지 않으면서 바닷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나라 임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을 잊어야만 했다. 오직 그럴 때에만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가 던지는 암호들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랑의 지혜 - 장자 『장자』' --- pp.192~193
3부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것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리오타르가 보았던 것도 이런 산업자본의 생리였다. ‘새로운’ 상품을 내놓아 기존 상품을 낡은 것으로 만들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혹하는 메커니즘을 산업자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자본이 기존의 가치나 통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은 드디어 ‘새로움’ 혹은 ‘낡음’과 관련된 시간의식을 얻게 된 셈이다.
― '새로움이란 강박증 -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 p.231
지금까지 우리는 여가 시간을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착각했다. 그렇지만 여가 시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이 결코 아니다.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볼거리들에 사로잡히거나 아니면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가 시간은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이나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상품들로부터 유혹당하도록 고안된 시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 드보르는 여가 시간 동안 우리가 노동의 결과에 대해 “굴복”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 pp.252~253
지금 우리는 대의민주정치를 따르고 있다. 우리는 대표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일정 기간 양도한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만약 권리를 양도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권리를 가지지 않은 자, 즉 노예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물론 대표자를 뽑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주인 행세를 하기는 한다. … 대표자가 선출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모두 양도한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어쩌면 대표자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이 사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랑시에르는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가 대의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