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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편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저자 : 임지현
출판사 : 휴머니스트
출판년 : 2010
ISBN : 9788958623137
책소개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 임지현, 그가 말하는 세계사
임지현은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탈민족주의 논객이며 역사학자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적대적 공범자들』로 주류 역사학계의 사관을 비판한 그가 이번에는 세계 역사를 수놓은 인물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인물의 면모는 화려하다. 에드워드 사이드, 사카이 나오키, 괴링, 공자,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로자 룩셈부르크와 체 게바라, 마르코스, 벤구리온, 한나 아렌트, 바우만, 요코, 니시카와 나오키, 그리고 한중일 삼국의 시민들이 편지의 수신자.
언뜻 보면 선택된 수신인들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로자 룩셈부르크, 체 게바라, 마르코스는 혁명가였다. 한나 아렌트, 에드워드 사이드는 사상가 그리고 한중일 삼국의 시민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임지현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각 편지들은 짧지만 강렬한 일화로, 동양과 서양, 제국과 민족,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인식 틀을 깨는 내용이다. 즉, 20세기를 지양하고 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역사인 셈이다.
목차
당시 나는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이 본질주의적 사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왕조사든 민중사든 교과서적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주제들을 부러 찾았다. 교과서적 역사를 흔들 수 있다면 국가든 민족이든 계급이든 젠더든 주제는 상관없었다. 해체의 전략으로는 언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제시한 ‘일화(anecdote)’적 역사 서술을 택했다. 공식적 역사 서술이 구축한 정교한 인과관계를 흔드는 데는 불쑥불쑥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영국의 역사가 노먼 데이비스가 폴란드에 유학 와서 지도교수를 정하고 박사논문 주제를 의논했던 일화를 소개한 게 기억나는구나.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청운의 꿈을 품고 야기에오 대학에 온 이 젊은이는 러시아 혁명 직후 폴란드와 볼셰비키 러시아 간의 전쟁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싶다고 지도교수에게 제안했단다. 그 지도교수의 반응이 뭐였는지 아니? “이 사람아, 미안하지만 그런 전쟁은 우리 역사에 없었네.”였단다. (중략) 당시만 해도 1970년대 초니까 1919년부터 1921년에 걸쳐 일어난 이 전쟁에 참여했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전쟁이 폴란드 역사에 없었다는 게 이해되니?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한 그 전쟁은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와 폴란드의 우호를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 과거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미래보다 과거가 더 예측하기 어렵다는, 구소련의 냉소적인 농담은 농담이 아니라 이처럼 현실이었구나. --- pp.385-386
굳이 역사 공부를 하려고 애쓰지 마라. 잠이 안 올 때를 빼놓고는, 재미도 없고 죽어 있는 역사책을 읽으려고 굳이 애쓰지 말거라. 역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언니하고 싸우면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왜 생기는가를 생각해보고, 엄마와의 팽팽한 신경전에서 헤게모니의 문제를 느껴보고, 아빠하고 싸울 때 권력과 지배, 순응과 저항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우선 그걸로 충분하다. 어떤 훌륭한 역사책보다 네가 몸으로 느끼면서 배우는 삶의 문제가 더 생생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너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맨발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Sven Lindqvist)의 주장이다. 지금까지처럼 ‘역사 공부’ 하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