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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을 기억하다
사진, 강을 기억하다
저자 : 강제욱|김흥구|노순택|성남훈|이갑철|이상엽|조우혜|최항영|최형락|한금선|이미지프레시안
출판사 : 아카이브
출판년 : 2011
ISBN : 9788958623779

책소개

신음하는 강의 목소리를 담아낸 사진집

4대강 개발을 심도 깊게 다룬 사진집『사진, 강을 기억하다』. 현 정부의 4대강 개발에 맞서, 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가장 작가다운 행위인 ‘창작’으로 답하는 사진들을 하나로 엮어냈다. 강제욱, 김흥구, 노순택, 성남훈, 이갑철, 이상엽, 조우혜, 최항영, 최형락, 한금선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인간의 오만으로 점철된 강의 아픔을 사진으로 고발한다. 1년여에 걸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탐방하며 기록한 사진들은 4대강에서 사라져가는 생명들의 목소리와 강에 기대 살아온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 북소믈리에 한마디!
산, 강, 바다를 비롯한 자연은 인간과 함께 살고 죽고 태어났으며 사람들의 생명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풀과 벌레들이 점점 멸종되어가고 있는 지금, 자연의 아픔을 감지한 작가들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말 못하는 그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를 넘어 우리가 잊고 있는 자연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왜, 10명의 사진가가 모였나? 그리고 이들은 왜 강으로 갔나?
2010년 봄은 강가에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강의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4대강 사진 기획’은 2010년 3월에 창간된 ‘이미지프레시안’의 첫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2010년 4월 초에 꾸려진 기획팀에는 사진가 강제욱, 김흥구, 노순택, 성남훈, 이갑철, 이상엽, 조우혜, 최항영, 최형락, 한금선이 참여했다. 그들은 자연의 강을 파헤쳐 인공의 강으로 만들겠다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 우려했다. 정권의 전횡적인 결정 및 저돌적인 집행 과정에서 소리 죽인 수많은 사람들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담아내는 것을 자신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사진가들은 1년여에 걸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나누어 기록했다. 봄, 가을에는 강 주변에서 여러 날 먹고 자고 하며 사라져가는 풍경들, 훼손되어가는 강을 빠짐없이 담았다. 이 책은 그 기록의 결과물이다.

10명의 작가의 말
강을 뒤엎을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먼 훗날 우리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어리석음을 되돌리는 데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까요? 지금의 어리석은 행동을 거두지 않는다면 인류의 문명을 탄생하게 한 강이,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모든 것을 거두어갈지도 모릅니다.
-강제욱

강을 따라 걷는다. 내가 보았던, 보고 싶었던 풍경들은 어디에도 없다. 이 강의 미래를 떠올리면서 역사의 천사가 과거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던 이유를 생각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억지스런 폭주도 그가 등 돌리고있던 ‘미래’였다. 아낙의 밭에서, 물고기가 죽은 모래밭에서, 한 마리 새가 물 마시던 강 옆에서, 나의 추억을 잃어버린 그 강가에서, 과거로 얼굴을 돌리고 있던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
-김흥구

2년 전 저는 이 자리에서 녹색성장의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폭넓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전과 도전이 세계의 비전과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회에서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녹색성장은 나와 나의 가족은 물론, 아마존의 숲과 북극곰까지 배려하는 성숙함을 전제로 합니다(이명박 대통령, 2010년 광복절 경축사).
-노순택

얼마 전, 여주 신륵사 바위 위에서 목격한 여강의 밤 풍경에서 어떤 불빛을 보았다.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난 노란 불빛은 내가 본 도깨비와 같은 외눈박이지만, 밤을 찢는 직선의 굉음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미 도시 구석구석을 파헤쳐 본 이 외눈박이 포클레인은 밤새 지치지 않고, 고집 센 직선의 주인만큼이나 귀를 틀어막고 우리들의 기억들을 조각내고 있었다.이제 더 이상 밤 강변에서 번득이는 불빛은 내 기억 속의 도깨비 불빛이 아니다.
-성남훈

어느 해 여름, 하굣길에 양손에 신발을 벗어들고 잘박잘박 강물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섬진강변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어찌나 눈이 부시게 어여쁘던지 강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눈에 대고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쫓았다. 미처 걷어 올리지 못한 바지 자락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을 쫓는 동안, 나도 아이들의 또래가 되어 유년을 잠시 건너다 온느낌이었다. 발에 밟히는 자갈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미루나무 잎들을 흔들고 지나온 강바람이 이마를 쓸어주었던가.
-이갑철

금강을 걷다 보면 수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만난다. 금강에는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금강이 살아야 생명이 산다.” 언뜻 보면 헷갈린다. 그렇다면 금강은 현재 죽어 있다는 것일까? 강의 죽음 앞에서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언어의 폭력이 난무한다. 이미 죽었다고 선고해놓고 다시 살리겠다는 것인가? 그 엄청난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땅은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강으로부터 그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하다.
-이상엽

마치 강의 배를 갈라놓은 듯한 현장에 압도된 채 느꼈던 그 공포감은 나에게, 공사 현장에 휘날리는 희뿌연 먼저와 함께 황무지로 뒤덮일 미래를 그려주었고, 끊임없이 모래를 파먹던 그 괴이한 포클레인의 기계음과 트럭들의 발자국 소리는 물고기 하나 살지 못하는 죽은 강물을 들려주었다. 붉은 쇳덩이로 방해받은 강, 더 이상 물이 없는 강의 그 바닥에는 콘크리트 모듈이 나란히 정리되어 기중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경험이 빚은 내일의 무수한 답에 오류가 있길 바란다.
-조우혜

추억 말고 사라진 것들이 또 있을까요? 말라비틀어진 단양쑥부쟁이와 신음하는 강가의 누치를 아시나요? 이들은 지구상에서 오직 대한민국에만 살고 있는 고유종들입니다. 이것들이 우리 강에서 사라진다면 이 희귀한 생물들은 지구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다음 순서는 누구일까요?
-최항영

강가의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단지, 그 얼굴들은 ‘생활’ 속에 있었다. 그럴 만큼 생활은 곤궁했고 정보는 차단돼 있었다. 얼굴로 찬반을 구분할 수 없었다. 사업의 당위와 허위는 멀리 있었다. 그 얼굴들에는 오랜 세월이 위태롭게 배어있었다.
-최형락

돌아온 맹꽁이가 흙 속에 갇히고, 큰기러기와 황조롱이 포클레인 위에 내려앉고, 흙에서 농민의 땀 냄새 사라지고, 매일 보채던, 어서 나와 보듬어 달라고 그렇게 보채던 논밭 사라지면 농민들은 저 멀리 먼 곳으로, 이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두ㆍ물ㆍ머리 농민이 이야기합니다. “거두는 건 내가 아니더라도 오늘도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을 겁니다. 죽더라고 씨앗을 베고 죽는 게 농민입니다.”
-한금선

강, 우리의 속죄양을 기억하며 -발문
김소연(시인)
“모든 사진은 거꾸로 흐른다.”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해도 지나간 것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은 1초 전의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모든 사진은 과거에 멈춰 있기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기록이라고 부른다. 카메라는 예술 매체이기 이전에 기록의 도구다. 카메라가 담아낸 사진 한 장은 한 시대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기록하기 때문에, 그 어떤 예술 장르와는 다른, 직접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그것을 우리는 증언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증언에 관해서라면 최상의 도구다. 때로는 호소를, 때로는 고발을 위한 가장 즉물적인 도구다.

그래서 여기, 사진집 《사진, 강을 기억하다》를 단순히 기억하려는 의지의 산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기억의 형식을 지닌 기록의 산물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강에 대한 강력한 호소이자 고발이다.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이 소리 없는 외침을 우리는 명령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사진이 사회 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사진은 사회의 부조리와 힘없는 자들의 얼굴과 덧없이 사라져가는 소중한 목숨들을 주목할 때 가장 아름답다. 미학적으로도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고 비참에 가까울수록 더 아름답다. 그것은 사진이 할 말을 사진이 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자격과도 같은 것이다.

사진은 고발하고자 하는 현실에 대해 가장 마지막까지 따라붙는다. 끝까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것이 정의이며, 과연 이것이 인간의 삶이 맞느냐고, 우리의 내밀한 욕망을 밝히는 물음을 계속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어쩔 수 없이 패배를 기록한다. 아무것도 저지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만 가능할 기록을남기기 때문이다. 이 패배는 참혹한가. 그렇지 않다. 현실에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점 때문에 사진은 가장 강력한 고발 매체이며, 마지막 패배를 기록한다는 점 때문에 사진은 폐부에 직접적인 찰과상을 내는 예술의 한 장르가 되는 셈이다. 우리의 영혼은 이토록 직접적인 찰과상을 경험하지 않는 순간부터 괴물의 영혼이 될지도 모른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힘겹게 살아가는 나약한 개인이 괴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술은 아마도 가녀린 숨을 쉬고 있으리라.

10명의 사진작가가 보여준 우리 강의 모습은 대부분 파헤쳐지고 짓밟혀져 있다. 사진이 포착한 포클레인은 공사현장에 소용스레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살육을 위한 흉기에 가깝다. 우리의 재개발 역사에서 포클레인이 얼마나 자주 살육을 위한 흉기로 사용되어왔는지 연상이 된다. 포클레인의 포악한 할큄에 강은 지금 아프다. 강은 구불구불 굽이치며 구불구불 살아가는 사람들과 구불구불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구부려 돌아가야 할 곳에서 구부릴 줄 알고 천천히 흘러야 할 곳에서 천천히 흐를 줄 알며, 얕고 맑아야 할 곳에서 그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의 강은 지금, 콘크리트에 여린 물살을 비비며 울고 있다.

강에 기대어 사는 농부들과 강에 기대어 사는 동식물과 강어귀를 오랜 세월 지켜온 문화재들이 함께 훼손되고 있다. 강이라고 해서 파헤쳐진 자신의 육체에 신음이 없을 수 없음을, 사진은 증명해보이고 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고 있자니, 강의 통증과 강의 신음이 적나라하다. 우리가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강은 저 혼자 자본 권력자에게 순교를 하는 듯하다. 무엇에 대한 순교일까.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엮인 존재이며, 그 위대한 연대를 결코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절대명령에 대한 순교다.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 에 대한 속죄양이다.

강과 하늘과 대지는 지구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과 함께 누려야 하는 대자연 모두의 공유지다. 그 공유지를 인간만의 사유지로 착각하는 하등한 권력자들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감행하고 있는지를 강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 살해의 현장에서, 그 아픈 신음을 사진에 담아낸 10명의 사진작가가 렌즈 뒤에 숨겨온 힘겨운 한숨과 슬픈 눈물을 우리는 강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진은 강가에서 펼쳐지는 학살의 적나라한 현장을 보여주고, 어떤 사진은 강가에서 강을 젖줄 삼아 밥줄을 대고 추억을 가꾸어온 우리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의 품에 안겨 얼마나 많은 여린 생명들이 먹고 숨 쉬고 살아가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강을 어머니로, 강물을 젖줄로 표현해온 인류의 오랜 비유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강은 우리에게 어머니였으며, 벗이었으며, 우리의 일부였다. 우리는 강의 자식이었으며, 벗이었으며, 강의 일부였다. 토목 개발에 혈안이 된 권력자의 눈에 지금 우리의 강은 이용가치로만 보인다. 어머니를, 벗을, 영혼의 일부를 이용가치로 환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것이야말로 패륜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최소한의 인간 윤리마저 훼손당하고 있다. 우리는 강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영혼을 빼앗기고 있다. 영혼을 빼앗기고 있으므로,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T. S. 엘리엇은 20세기가 산업화ㆍ공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대에 이런 시를 써두었다. “강은 갈색의 강한 신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참을성이 있지만, 인간의 오만에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계율을 어긴 자에 대한 분노로 ‘재앙’이 라는 경고를 끊임없이 인간에게 각인시킨다. 인간은 언제고 그 분노 아래서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엘리엇은 이미 말했다. 우리는 절대 누그러뜨릴 수 없다고. “강은 자기 계절과 분노를 지키는 파괴자로서 인간이 잊고 싶어 하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강은 기다린다”고. 우리가 존경을 멈출지라도, 우리가 다시 인간됨을 회복하고 겸손을 깨달을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린다”고.

미셸 푸코는 “아우슈비츠를 망각하는 것도 학살의 일부다”라고 말했다. 이 학살의 현장을 우리는 망각하면 안된다. 망각함으로써 학살의 일부를 행해서는 안 된다. 비록 저지와 저항의 힘이 권력자의 오만을 꺾진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학살의 일부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한 권의 사진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여전히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의 제기를 해야 한다. 망각의 반대편에 서서, 기억의 모든 방식을 동원하는 일만이 학살의 역사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저항이 아니다. 커다란 물증을 남겨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이 책을 간직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기획의 말
4대강 사업은 재앙이다_김정욱(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내 강변의 외눈박이 불빛_성남훈
나는 강의 침묵이 두렵다_이상엽
살아 있는 것을 다시 살리는 묘한 방법_최항영
강을 '추억'하다_강제욱
지워진 강의 침묵_김흥구
나는 경험의 오류를 바란다_조우혜
어魚어御어語_노순택
강의 아름다움을 탐한 우리는 모두 강에 빚진 자들이다_이갑철
깃발과 발자국_최형락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 게 농민입니다"_한금선

발문 - 강, 우리는 속죄양을 기다리며_김소연(시인)
summary_Photo Recalls the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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