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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저자 : 이청준
출판사 : 열림원
출판년 : 2007
ISBN : 9788970635538
책소개
용서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처절하고 아픈 소설 『벌레 이야기』. 1985년도에 발표된 단편으로,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남는 소설의 전범을 보여주는 고전과도 같은 작품이다.
『벌레 이야기』는 아이의 유괴와 살인이라는 사회적이고도 묵직한 소재를 통해, 용서와 구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신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작가 서문’ 중에서) 소설이다. 이청준은 특유의 철학적이고 집요한 시선과 문체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한갓 벌레로 전락하는지를, 절대자 앞에서 어디까지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묻고 기록했다.
목차
용서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약국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알암이 하굣길에 사라져버린 것. 알암은 내숭스러워 보일 만큼 얌전하지만 성적만은 상급에 속할 만큼 제 할 일은 제대로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4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주산반에 들어가더니 가까운 주산학원에 수강 등록을 시켜달라고 할 만큼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곧장 주산학원으로 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가 늦더니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신고와 ‘알암이 찾기 운동’ 등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도 알암의 행방은 종무소식이고, 차츰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져간다. 그러나 아내는 끈질긴 의지력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극성으로 알암을 찾기 위해 거리로까지 나선다. 아내는 이웃에 살고 있는 김집사의 도움을 받아 절대자에게도 매달린다. 절대자는 모든 것을 의지한 가련한 영혼에게 은혜를 베푼다. 아이를 꼭 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그러나 절박한 기도는 허사로 돌아간다. 알암이 주산학원 근처의 상가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것.
남은 일은 이제 가상의 범인이 아닌 진짜 유괴범을 잡아내는 것뿐이다. 건물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구역 상가와 이웃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벌인 추적 수사 끝에 범인이 주산학원 원장인 김도섭임이 밝혀진다.
정작 범인이 밝혀지자 아내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 을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간다. 아내는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다시 자신을 가다듬는다. 그런 아내를 지켜보던 김집사는 죄인에 대한 사람의 심판은 끝났으며 “가능하면 그를 용서하고 동정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마지막으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뿐이며 “사람에게는 오직 남을 용서할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아내는 처음에는 김집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집사의 권유가 계속되자 예배와 기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안정을 찾아간다. 김집사는 알암의 구원을 단언하며 범인 김도섭을 용서할 것을 아내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아내는 마침내 신앙심으로 아이를 죽인 범인 김도섭을 용서하기로 하고 교도소로 그를 찾아간다. 그러나 김도섭을 용서하겠다던 아내의 의지는 허사로 돌아간다. 그녀가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사람이 그녀에 앞서서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던 것. “아내의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본문 중에서
김도섭은 형장에서 “아이의 영혼을 저와 함께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시고 살아남아 고통받는 그 가족 분들의 슬픔을 사랑으로 덜어주고 위로해주십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아내는 이틀 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유서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약을 마신다.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
―‘작가 서문’ 중에서
이창동 감독 신작 영화 <밀양> 원작소설
『벌레 이야기』는 ‘우리 시대 영상예술의 달인 이창동 감독’ 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에서처럼 영화는, 처참하게 아이를 잃은 한 영혼(알암의 엄마)의 궤적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다. 평범했던 한 영혼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과정, 절대자와 대면하는 과정, 아이의 죽음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범인을 용서하고자 하지만 용서할 권리마저 절대자에게 박탈당하자 배신감에 치를 떠는 과정을 통해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냐”고 물어온다.
한편 <밀양>은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