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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월드
원더풀 월드
저자 : 기 소르망
출판사 : 문학세계사
출판년 : 2010
ISBN : 9788970754963

책소개

세계화가 바로 인류의 미래다!

서울, 파리, 뉴욕, 도쿄, 베이징, 뉴델리, 이스탄불, 산티아고, 모스크바, 자카르타, 멕시코, 싱가포르…세계 곳곳을 찾아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 경제를 예측하고, 함께 고민하며 바른 해법을 찾아가는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의 세계화에 대한 보고서『원더풀 월드』. 이 책은 2006년부터 2010년 2월, 한국이 G20 정상회담 개최지로 선정된 시기까지 게재된 300여 개의 짧고 총괄적인 칼럼들 중 당시의 상황을 담은 글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우리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세계적 석학 의 ‘세계화’에 대한 보고서
이 책의 글들은 원래 스위스의 주간지 《엡도(L'Hebdo)》의 제안으로 블로그에 게재되었던 것들이다. 2006년부터 2010년 2월, 한국이 G20 정상회담 개최지로 선정된 시기까지 게재된 300여 개의 짧고 총괄적인 칼럼들 중 당시의 상황을 담았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이해될 수 있는 글들만을 뽑아 출간했다.
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을 통해 그가 제시하는 큰 비전은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리고 이 세계화의 비전은 자본주의와 자유무역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세계가 공유하며 이루어나가야 한다. ENA 출신 프랑스의 석학이자 저술가이며 세계 여러 지도자들의 조언자이기도 한 기 소르망은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우리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자신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번영을 가져다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국가와 가부장적 권위, 나아가 온정주의까지 모든 것을 해체한다. 스스로 선택한 집단이 의무적인 애국심보다 앞서고, 새로운 우상이 전통의 종교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세계화다. 소외된 자들이 중심으로 나오고 막 태어난 문화가 오래된 전통을 밀어내는 것 또한 세계화다.
자유주의자로서 세계화 예찬자인 저자가 펼쳐 보이는 세계화에 대한 전망과 현상의 해석은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때로 그는 너무나 첨예한 문제이기에 많은 지성인들이 감히 손대지 못하는 영역들에 대해서도 과감한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예를 들어 그는 이슬람과 이스라엘의 관계나 반미주의, 요즈음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환경문제, 사회주의나 복지국가 모델, 분배의 정의 문제 등에 대해서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합리적 현실론에 맞아떨어지는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 흐름은 세계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롭게’ 세계화라는 큰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빈곤과 기아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경제발전의 혜택이 돌아가야 하며, 그 방법은 사회주의를 빙자한 포퓰리즘이 아닌 자유로운 경제체제와 올바른 정책뿐이라고 말한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신문 칼럼이나 강연 대담을 통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기 소르망은 이 책에서도 수시로 한국의 발전상황을 언급하며 세계화 정세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길에 대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의 주민으로 살아가기
오랫동안 태어난 고향은 그 사람의 운명과 세계관을 지배했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일생을 보내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역의 주민에서 시대의 주민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라는 조건이 지리적 조건보다 우리에게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출신지나 민족과 관계없이 이제 우리는 시간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행동방식은 피부색이나 언어, 문화보다 시간의 흐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국적 없는 젊은이들, 이민자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 엘리트들이 이 시대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이 모든 현상들은 ‘세계화’라는 큰 틀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세계화를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세계화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실과 대다수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화라는 시각을 통해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우리들의 행동방식을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다.
기 소르망은 이슬람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몇몇 과격한 이슬람 단체들, 유럽과 미국 대륙에서 뿌리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테러와 전쟁에 몰두함으로써 진정한 이슬람 문화가 잘못 알려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터키와 아시아의 몇 나라처럼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이슬람이 더 큰 목소리를 가지게 되고, 진정한 무슬림 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뉴욕에서 베를린까지, 중국의 대도시에서 남미 인디언의 땅까지, 세계를 누비고 있는 소르망은 때로 시원시원하게 때로는 논쟁적인 어조로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정확한 정보와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보여준다.

왜 세계화인가?
아시아의 불교 전파나 서양의 기독교 전파 등 예전에도 비슷한 변화의 시기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문명으로 자리잡기까진 수 세기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예상치 못하게 불쑥 등장했다.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엔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려던 체제모델이 사라졌으며, 1995년에는 인터넷이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때부터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세계화는 전 인류의 현실과 대다수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인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시라크 대통령은 이탈리아의 경쟁사로부터 수에즈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가? 그 주 언론 보도는 2백만의 프랑스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에 나가 있으며 그 중 50만이 신자유주의의 나라 영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마디로 경제에는 이제 국경도 국적도 무의미해졌다는 말이다. 수에즈의 모든 주주들이 프랑스인은 아니며 아르셀로의 모든 노동자들이 프랑스인은 아니다. 일본기업 소니의 회장은 영국인이고 르노의 회장은 레바논계에 브라질 국적을 가졌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세계화를 두려워하고만 있는 걸까?
가난한 나라들의 운명은 얼마나 빨리 세계화되는가에 좌우된다. 1960년대의 남한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중국과 인도는 이런 자명한 시장의 원리를 깨닫기까지 한 세대나 허비했다. 인도인들은 네루가 받아들인 소비에트 모델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중국인들은 (아직까지도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지만) 오랫동안 마오주의 아래 신음해야 했다. 이들 문명권을 ‘제로성장률’에 묶어두었던 주범은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였다. 이데올로기가 두 나라의 발전을 막아왔었다. 거의 같은 시기, 두 나라는 이데올로기의 허울에서 벗어나 경제에 눈을 떴다. 그 주역은 각각 인도의 라지브 간디와 중국의 덩샤오핑이었다. 하지만 이미 20년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난 뒤였다.

자유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조니 뭉크함마르는 스웨덴식 모델이 자포자기와 무지에 근거한 거라고 맹비난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며 미국과 아일랜드, 영국, 아이슬란드 등 앵글로색슨이나 핀란드, 에스토니아 모델의 장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국민들을 국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세금으로 몰수된 재산은 피통치자이자 선거권자들인 국민이 자신들을 맹종한다고 확신하는 관료들을 통해 재분배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남미의 빈곤에서 깨어난 브라질의 경우에서 우리는 3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좋은 경제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브라질과 인도의 경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 성장은 민주주의만 유지된다면 결국 균등하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고, 인도도 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민주주의가 없는 성장이기 때문에 큰 불균형을 낳고 있으며 국민은 이에 대항할 권리조차 없다.
* 늘 그렇듯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선 재분배 정책보다는 바른 경제 모델을 채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세계적 경제침체는 수출 급감으로 이어져 이 대륙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한편으로는 포퓰리즘과 자유주의를 시험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살아남을 것인가? 차베스와 모랄레스, 키르히너, 이 세 명의 코디요들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맞아 자신들의 혁명가로서의 선택을 합리화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라틴아메리카에선 아무도 반자본주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아무도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상파울로나 산티아고의 정치지도자들과 경제학자, 기업인, 언론인들은 더 엄격한 금융시스템과 ‘창조적 파괴’의 혁신으로 위기에 대처하라 촉구하고 있다.
2008년 한 해, IBM사는 미국 내에서만 4천 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IBM사 스스로는 물론 세계 경제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기업들을 통틀어 역사적인 기록이다. 그 뒤를 이어 두 번째로 특허를 많이 낸 회사는 한국의 삼성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IBM 노트북 컴퓨터 공장을 사들인 중국의 레노보Lenovo는 대만 기업 에이서Acer보다 훨씬 적은 특허를 등록했다. 이렇게 특허는 미래의 경제를 예측하게 해주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창의성과 민주주의 사이엔 상관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다케나가는 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도입하려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1960년대 경제를 이끌던(이때는 세계적으로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향수에 젖은 일본 관료들은 다케나가의 개혁안을 무시했다. 당시의 많은 일본인들 또한 자유화가 사회 불평들을 야기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다케나가는 말한다. 일본에서의 사회 불평등은 자유화가 아닌 부동산투기와 정경유착의 관행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국민들을 설복시켰다.

환경이라는 이데올로기
세계화 때문에 영향력을 잃어버린 권력자들과 운명을 같이하며 ‘녹색’이 바야흐로 힘을 얻고 있다. 지구를 구하자는 모토와 함께 그들은 다시 권위를 되찾으려 한다. ‘녹색’은 이렇게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을 다시 모으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엘 고어는 정확한 과학적 근거보다는 자신이 쓴 할리우드식 재난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의견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그의 말투, 설득력, 인기는 “지구의 종말을 준비하시오!”라고 외치는 부흥회 목사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 대부분이 지구온난화에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소르망이 고어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의 대답은 “우리 국민의 인식을 바꿀 더 충격적인 영상을 찾아봐야겠군요.”였다. 고어는 이제 얼음이 녹아내려 물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곰들의 모습을 찾아 나설 것이다. 기 소르망은 이런 식의 선동정치를 경계하며, 확인되지도 않은 20년 후의 온난화 가설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지금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기아,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수억 명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후가 느리게나마 더워지고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온난화의 주범이 정말 산업화와 탄소에너지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인지에 대해선 확실하지 않다. 이산화탄소 때문에 온난화가 일어난다는 가설은 지구 온난화의 이데올로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확실한 근거가 없다. 이 가설은 오직 이론적 모델로만 존재할 뿐이다. 정말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과거의 경우처럼 인간에게 유익할 수도(특히 농업에 있어서) 혹은 피해를 가져다줄 수도(열대병과 홍수 등)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지구온난화를 억제해야 할지 아니면 나중에 온난화가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을 때 대처해야 할지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불확실한, 혹은 먼 미래에 있을 위험에 대비해 아프리카, 남미 경제발전도상국들까지 산업성장을 늦출 것인가, 아니면 온난화의 피해에 대처하는 부수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성장을 이어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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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2006
구글이 걱정스럽다
인도 살려!
이민자, 르노사의 수장이 되다
활기찬 미국인들
세계화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미국-인도 동맹
인도/중국, 세기의 대결
잔 다르크는 나타나지 않는다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
뉴욕의 시위대
아직도 생생한 9 ·11테러
국가원수 모독
유럽의 이슬람
수단, 누가 누구를 죽이는가?
온난화 이데올로기
군화 신은 미국 우파들
프랑스-미국, 이제 함께 가자!
굴복하지 않는 피델 카스트로
“아랍인들은 왜 가난한가요?”
리가, 새 유럽을 말하다
스웨덴 모델, 지속되거나 사라지거나
미 주둔군
진짜 중국, 타이완에서
우리의 보트 피플
이스라엘의 이미지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
중국 인민들의 소리
귄터 그라스
시라크 왕
마오쩌뚱을 사랑했던 사람들
25년 후의 세계는?
이슬람주의자들의 함정에 빠진 교황
거대 유럽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윤리적 자본주의
중도주의 미국
자카르타에서 밝은 이슬람의 미래를 보다
지옥에 가게 될 피노체트
싱가포르에서 온 편지, 불안한 말레이계

2007
변화하는 인도
청년 차별 정책
터키는 유럽이 될 것인가?
유로화
카스트로의 종이인형 차베스
다르푸르, ‘갱’들의 전쟁
두 얼굴의 사르코지
유로화는 장애물이 아니다
푸틴 1세
중국의 명예
성장을 거부하는 프랑스
정의로운 브라질
인도 VS 중국
타이완의 자유
폴란드 만세!
산티아고의 자유주의 좌파
2008년, 중국과 미국의 대결
녹색 크리스마스

2008
다보스의 미사
아탈리 보고서와 엇나가는 프랑스
금융자본주의를 찬양함
자본주의, 일시적 고장인가 아니면 위기인가?
물가는 왜 오를까?
쌀이 어디로 사라졌나?
진정 티베트를 도우려면
베이징의 굴욕
프랑스, 인권과 다시 손잡다
당이 병아리를 죽이다
우리가 몽테스키외를 죽였다
이라크, 지지 않은 전쟁
TV를 부끄럽게 한 웹
프랑스를 비껴간 디지털 혁명
아일랜드의 선택은 옳았는가?
인종우월주의자와 인종주의자
베이징의 수탉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오바마
실리콘밸리에 관하여
대륙간의 충돌
인도-미국 대연합
“방해가 됐나요?”
제스 오웬에서 로페즈 로몽까지
만족한 중국인들
소련의 끝나지 않은 고민
“내가 그루지야를 줄였어요”
이제 런던으로!
솔제니친이 옳았다
누가 인권을 지켜줄까?
미국 경제의 저력
태평양 수호대
두 노벨상 수상자의 근황
흑인 문제의 종식
오바마, 열정과 낡은 횃불 사이에서
조지 부시의 유언
아메리카 인종 오바마
두 개의 라틴아메리카
아무도 테러를 피해갈 수 없다
무대응을 찬양함
아시아가 걱정스럽다
엉터리 예언가들

2009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고?
경제위기에도 기술 혁신은 계속된다
알래스카 기항
복잡한 군사문제
우리 모두가 케인지언은 아니다
대서양 양쪽의 분위기
최고 부자들
아시아의 경제위기 대처법
월스트리트를 구하라
황제, 오바마
중국이라는 물주
톨레랑스 제로(무관용)
유럽을 사랑하는 미국인들
자본주의를 수리하다
자본주의 머리맡에서
우연의 교훈
우파의 유럽
이슬람 정치세력의 역사적 몰락
라틴아메리카, ‘마술적 리얼리즘의’의 종말
팝의 신
같은 투쟁 : 티베트와 위구르
오바마,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다
몰도바라는 종착역
바이러스의 세계화
마르크스, 추방당하다
경제는 좀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행복과 퇴폐
유대인의 미스터리
녹색 UN
개인 날
무너진 허상의 벽
코펜하겐의 실패
아시아의 시대? 쉽지만은 않다
한국이 놓칠 수 없는 기회, G20 정상회담

기 소르망의 저서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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