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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수용 (한국 고전문학과 해외교류)
전통과 수용 (한국 고전문학과 해외교류)
저자 : 이혜순
출판사 : 돌베개
출판년 : 2010
ISBN : 9788971993958

책소개

한국 고전문학과 해외교류 연구 『전통과 수용』. 우리 문학사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그 교류의 양상과 특성을 확인하면서, 수용하며 수용된 현상과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한국 문학사의 전개, 유학생 사신들의 외국체험, 귀화인과 외국 사신들을 통한 외래 문학의 유입 등을 살펴보고, 신라, 고려, 조선 후기 외에 조선 전기 사행의 의의까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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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석학인문강좌’ 시리즈 제11권. 이 책은, 한국 문학사의 형성 과정이 한문화권 국가들의 문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이혜순 교수의 최근 성과물이다. 한자로 쓰인 한국 문학작품들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문자로 쓰인 고전문학 작품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중국 문학적 요인들은, 단순히 표현이나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받아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학의 영역을 중국 일변도에서 조선통신사 문학과 일본으로 확대시키면, 무엇보다 한중일 세 나라가 내세우는 고유한 특성이 대부분 상호교류의 소산들을 ‘자기화’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에 『전통과 수용』은 우리 문학사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그 교류의 양상과 특성을 확인하고, 수용한 것들과 수용된 것들의 의미를 종합하고자 쓰인 책이다.

■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한국 고전문학사

한 나라의 문학은 독자적으로 형성되거나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해외교류의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외교류에 의한 수용이란 일반적으로 외국 문물이나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자국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지만 이 접촉이 바로 수용을, 이 수용이 바로 영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접촉을 해도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설사 수용되었다 하더라도 전통과의 대결에서 변모되거나 굴절되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문학의 형성과 전개에서 보여준 수용의 주체들과 유형
이 과정에서 수용의 주체는 크게 사람과 서적으로 나뉜다. 수용 주체로서의 사람은 다시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과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으로 나뉘는데, 전자에는 유학생과 사신들이 해당되고 후자에는 귀화인과 외국 사신들이 포함된다. 한국 문학사는 해외에 다녀온 이들의 수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들의 신분이나 처한 환경 또는 개별 성향에 따라 견문과 성찰의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국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주변국에서 왕조가 교체될 때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망명해 온 이주민들, 전쟁포로와 표류민들, 귀화인과 입국 사신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측의 요구에 의해 귀화한 문사들이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귀화인들은 우리나라에 문단을 끌고 갈 주도적인 문사가 없을 때 등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에서 한국에 온 사신들은 그들이 한국에서 체험한 것을 자신들의 나라에 전파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귀국 후 자신들의 체험과 관점들을 사행록에 기록함으로써 외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밖에 우리나라에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원군으로 온 장수들의 활동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배경이나 종교를 한국에 들여왔으며, 이것은 국내인들이 좋든 싫든 체험해야 했던 ‘외국’이었다.
서적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구매하거나 선물로 받아온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가지고 온 서적들도 있다. 고전문학 작가들은 새로운 서적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여 시대에 따른 다양한 독서문화를 형성했다. 때로는 외국에서 들여온 특정 작품이나 작가에 경도되어 범사회적 쏠림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하여 전통에 없었던 새로운 문학 갈래나 사상의 출현은 대부분 서적의 수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상과 그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그대로 수용되기보다는 형식이나 내용의 변형을 통해 재생산 내지는 재창조되고, 그 변형이 나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서적의 수용 역시 전통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 남긴 우리 문학과 문화 자원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한자를 처음 발명하고 이를 활용해 귀중한 저작물들을 지어낸 중국은 항상 그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이에 중국을 제외한 한문화권의 나라들의 문학사는 언제나 ‘수용’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문사들이 중국과 일본을 방문해서 그곳 문사들과 교유하고 작품을 통해 접촉했다는 것은 그들도 우리가 가져간 문학과 문화 유산들을 체험했다는 것이기에, 이제는 우리가 ‘수용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로부터 ‘수용된’ 것에 대한 관심의 방향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우리가 외국에 준 문학?문화 자원의 영향은 ‘수용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적교류와 서적교류의 두 가지 양상이 있다. 인적교류의 경우, 외국에 나간 유학생, 사신, 포로들이 그 나라에 남긴 시문 등이 중요하지만, 절의의 인물, 뛰어난 학자, 장군, 문사들의 명성 역시 동아시아 문학?문화 교류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서적 교류의 경우, 해외에 남아 있는 한중, 한일 문사 간 창수와 필담을 통한 교류 기록이 포함된다. 특히 필담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각국의 역사, 문화자원, 시대정신, 민족의식과 연결되면서 수용의 쌍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반면 외국 사신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귀국하면서 가져간 우리 문사들의 작품, 문집들이 그곳에서 수용된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서적 교류는 어느 정도 인적교류에 기반하고 있지만, 시대와 교류국의 상황에 따라 상업적 수단이나 전리품의 형태로 옮겨간 것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시 많은 도서를 약탈해 갔고, 그 이후 역관들과 결탁한 일인들이 지속적으로 조선의 서적들을 밀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보면 한중일 삼국 간에 이루어진 수용은 결국 한 나라의 문제로 귀속시켜 그 나라 문학사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적 접근이 필요한 작품이나 문헌들
한국 문학사는 시대에 따라 작가에 따라 한중 혹은 한일을 중심으로 교류가 형성되었으나 과거의 문헌들 중에는 세 나라의 관점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우리의 문화 자료가 다른 나라에 보존된 예가 많기 때문이다. 신라 문사들의 작품이나 시구가 중국의 『전당시』와 일본의 『천재가구』에 실려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특히 조선조 후기 일본에 사행했던 조선통신사들 중에는 국내에서는 전혀 그 작품을 발견할 수 없으나 일본에서 문사들과 주고받은 필담과 시는 일본에 남아있는 문인들이 있다. 1711년 제8차 사행 시의 제술관 이현李?이 그 한 예인데, 그는 당시 일본 문사들에게서 역대 사신 중 시를 가장 잘한다고 일치된 평가를 받은 문사이다. 또한 최근 중국에서 새로이 발굴된 자료들은 우리 문사들이 명나라나 청나라에 가서 서적을 구매하고 중국 문사를 만나 필담하거나 논쟁한 것, 중국문헌에 수록된 조선 문사의 작품들과 우리 문사들의 문집 간행, 중국 문사들의 조선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을 보여준다.
이에 동아시아 문학교류와 수용연구에서 가장 절실한 당면과제는 동아시아 공동의 자료 찾기와 이에 대한 삼국 간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표崔豹의 『고금주』는 이에 아주 적합한 사례이다. 잘 알려진 대로 『고금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로 알려진 「공후인」 또는 「공무도하가」의 성립 배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선 진졸’ 곽리자고를 기록해 놓은 문헌이다. 그간 우리나라에는 전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노래를 한치윤韓致奫이 『해동역사』에서 우리 작품 중 하나로 발굴해 내면서, 동시에 이를 수록한 『고금주』 역시 우리들에게 친숙한 문헌이 되었다.
「공후인」은 중국인의 저서에 실림으로써 이 작품은 하나의 중국적 문학 전통을 수립했는데, 그것은 중국의 문사들이 이 작품을 지은 작가의 국적에 주목하지 않고 단지 『고금주』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편찬한 『악부시집』, 『고악부』, 『고시기』와 함께 각 조대별 또는 역대 시선집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공후인」의 유래와 이를 기반으로 한 후대시인의 의고악부시 「공무도하가」를 수록했다. 「공무도하가」를 지은 시인들로는 당나라의 이백李白, 이하李賀, 왕건王建, 원진元?, 송나라의 육유陸游, 원나라의 양유정楊維禎, 명나라의 이몽양李夢陽, 왕세정王世貞 등과 그밖에 수많은 문사들의 작품이 남아 있어 「공무도하가」 주제사를 만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문사들 중에도 성현成俔, 신흠申欽처럼 「공무도하가」 의고악부시를 지은 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작품은 오히려 이백 같은 중국시인들의 의고악부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 것을 역수입하는 양태를 보여준다.
이로 보면 『고금주』는 「공후인」에 관한 한중 간의 작품 귀속 문제의 중심에 있어, 자료 확인을 위한 동아시아 삼국의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가 걸려 있는 문헌이 『고금주』만은 아닐 것이며, 삼국 간 수용연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문승’에 관한 재인식을 통해 인문학 정신을 되새긴다

해외체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문사들의 문승 의식
해외체험을 통한 외국 문학의 수용에서 외국 문학에 대한 거리감과 굴절,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은 전통의 성장과 혁신에 기여한다. 갑작스런 전통의 붕괴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이전에 없었던 또는 체험을 통해 재인식하게 된 요인들이 새로운 전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 문사들의 강력한 ‘문승’文勝 의식이다.
본래 문승의 가장 고전적인 개념은 ‘문승질’文勝質이다. ‘문’이 문체이고, 꾸밈이고, 형식을 가리킨다면, ‘질’은 질박함이고, 순수한 바탕이고, 내용이다. 주나라 말기 제자백가의 출현을 문승으로 보고, 제자백가들의 현란한 언설이 결국 알맹이 없는 말장난일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공자는 문승질뿐만 아니라 질승문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했고, 주자는『가례』의 서문에서 예를 근본[本]과 형식[文]으로 나누면서 이 두 가지를 동일하게 준수하고 강습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문사들이 해외체험에서 보여준 문승은 ‘질’과의 비교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문’ 내에서의 우열 개념이다. 문승으로서 어려움을 타개한 대표적 문사가 최치원일 것이다. 최치원이 처음 당에서 부딪힌 것은 외국에 대한 차별 정책이었지만, 이를 넘어서면 또 기라성 같은 당 문사들이 포진되어 있던 당의 문학적 수준과 경쟁해야 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문학적 우수성에 대한 관심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다. 예컨대 송나라 황제가 고려에 사신을 보낼 때 문장을 시험하고 나서야 보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명나라 사신 기순은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남긴 글을 보면서 후일 조선 문사들에 의해 그 경중이 가리어질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그가 조선 문사들의 높은 문학 수준을 알고 있어서 장차 자신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문사들 중에는 조선 사신들과 창화한 자국문사를 대부분 부화한 무리라고 폄하하여 본래 자신들의 문학적 수준은 그렇게 낮지 않음을 애써 보여주려 한 문사도 있다. 이것은 모두 문학적 우수성이 갖는 국가적 의의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이를 보면 정치적 관계는 어떠하든 삼국 모두 문학적 우위를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 문학의 경연에서 작품의 가치로 승부해서 승리했다. 순수히 개인의 학업을 위한 것이든 국가의 공적 업무를 위한 것이든, 시의 창수이든 필담이든, 또는 수용한 것이든 수용된 것이든 그 안에는 언제나 ‘문승’의 개념이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승은 사신과 유학생들의 해외체험에서 가장 핵심 키워드로 볼 수 있다.

‘문승’으로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과거 삼국의 지배와 전쟁의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다. 더욱이 그 진실은 문인들의 작품 속에서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가령 임진왜란은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이었으나 일본의 유명 문인 뢰산양(1780~1632)의 작품집 『일본악부』는 반성커녕 과거 일본의 위세를 미화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이 점은 조선 악부가 민족사에 대한 재인식을 보여준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악부 작가 대부분이 「살수첩」,「성상배」처럼 살수대첩이나 안시성의 승리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여수, 여당 전쟁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 침략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은 단순히 우리의 승리만을 읊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전쟁을 일으킨 사람과 명분 없는 싸움에서 생명을 잃은 수나라 10만 대군의 원한을 대신해서 말해준다. 이러한 반성은 심지어 중화의식에 오래 물들여온 중국측 문사에게서도 나타난다.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기순의 「조선잡영」 10수 중 여수전쟁을 읊은 시는 분명 시인이 수나라의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고 그 허물은 수나라 황제에게 있다고 말한다.
위에 제시된 예에서 일본의 경우가 가장 강력해 보이기는 하지만, 삼국이 모두 자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시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와 정복의 탐욕으로 점철되고, 전쟁의 상흔 속에 지속된 삼국의 갈등과 대립의 다른 한편에서는 국경을 넘은 인간애를 보여준 전쟁 문학작품들과 자국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보여주는 지식인들이 있어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한다. 우리나라 포로의 실기인 「간양록」, 「월봉해상록」, 「금계일기」 등을 보면 일인들에 의한 잔인한 폭력과 생명의 위협 중에서도 마음 착한 일인들이 있었음을 증언해준다.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근대의 조선 침략과 강점에 대해 깊은 반성을 보여준 일본 지식인들이 있으며, 특히 풍신수길이 일으킨 임진왜란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일본의 무가 가문에서 나왔다는 것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희망은 동아시아 국가 모두가 예?의?악 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언제나 예의의 나라, 소小중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로 위기에 처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를 보존한 힘이었다. 조선 전기 왜란 직전 일본에 사행했던 김성일은 일본에 대해 철저히 화이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예의를 화이의 판별기준으로 삼았다. 제11차 통신사행의 정사였던 조엄은 교양이 마땅함을 잃어 화이의 구별이 있는 것이므로 ‘윤리’와 ‘강상’으로써 가르치고 ‘예’와 ‘의’로써 인도한다면 이를 변화하여 화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조선통신사들에 대한 적개심을 보여주었던 일본 문사들도 일단 조선 사신들의 예의를 문제 삼았다. 예의는 삼국의 평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코드임을 보여준다.
인문은 본래 예악으로 교화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예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문승지효를 위한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류의 주체들이 인문화되어야 할 것이다. 삼국의 학자와 문사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모한 국가적 책략을 미화하고 정당화시키고 있는 이러한 때에 삼국 평화를 위한 방안으로 문승을 거론한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발상일 수도 있고, 문승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와 의, 진실과 중용을 보여주는 인문학이, 그중에도 깊이있고 감동을 주는 문학이 그 실천적 힘을 발휘한다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그 희망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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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머리에

1장 : 수용의 의미와 한국 문학사의 전개
1. 전통과 수용
2. 수용의 주체와 양상
3. 자료에 대한 동아시아적 접근: 『고금주』와 왕인

2장 견문과 성찰: 유학생 사신들의 외국체험
1. 한국 고전문학과 유학생 사신들의 해외체험
2. ‘타자’로서의 자기확인과 거리의식: 최치원
3. 반면교사로서의 해외체험: 이제현
4. ‘배움’과 상호평가의 기회로서의 해외체험: 김일손
5. 집단체험과 성찰의 한계: 조선통신사

3장 전이와 갈등 : 귀화인과 외국 사신들을 통한 외래 문학ㆍ문화 유입
1. 귀화인을 통한 외래 요인의 이식
2. 외국 사신들의 체험 기록과 문학적 역할
3. 외국 사신들의 양명학 전이와 갈등
4. 외국 사신들의 관제묘 이식과 전개

4장 굴절과 재생산: 작품 또는 그 번역을 통한 외국 작가ㆍ작품의 수용
1. 내외사신들의 서적 수용
2. 편식과 쏠림현상: 소동파의 수용과 송시풍
3. 모의와 재생산: 명나라 이동양의 악부시
4. 변형과 재창조: 명나라 단편소설 「등대윤귀단가사」(藤大尹鬼斷家私)의 수용

5장 교류의 양방향과 수수관계: 우리가 외국에 준 문학ㆍ문화자원들
1. ‘수용하기’와 ‘수용되기’
2. 해외에 남아있는 고전문학 유산
3. 상대국 자원으로서의 인적ㆍ문화적 유산들
4. 우리 문화의 전파와 사행록에 나타난 문제들

6장 반성과 전망: ‘수용’의 동아시아적 의의
1. 해외체험과 ‘문승’(文勝)에의 의지
2. 문학의 수용에 나타난 문승의 위기
3. 동아시아의 평화와 문승의 재인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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