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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저자 :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출판사 : 해냄출판사
출판년 : 2009
ISBN : 9788973379330
책소개
『오만과 편견』이 좀비들로 발칵 뒤집혔다!
오프라 윈프리가 뽑은 ‘올 여름 꼭 읽어야 할 소설’
세기의 필독서 『오만과 편견』에 좀비들을 투입해 로맨스와 유머, 흥미진진한 결투로 버무려낸 기발한 소설. 『오만과 편견』의 플롯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의 발생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상황을 가미하여 원작의 내용을 변주하는 이 작품은, 한때 함께 무도회를 즐기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들이 좀비가 되어 인간사회를 위협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명랑하고 활발한 엘리자베스는 이상적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에서 동양 무술까지 마스터한 실력자로 무장해 시원한 발차기와 화려한 검술을 보이며 생존의 위협 앞에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거듭난다.
좀비는 젊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와 편견들을 신랄하게 드러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 상류사회의 위선을 통렬히 풍자한다. 사회적 지위에 맞는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감정표출이 제한적이었던 원작과 달리, 생명을 지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가 된 이 작품에서는 허식과 위선을 벗어던진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이중성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사고로 사랑 없는 결혼조차 감행함으로써 배우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여인이나, 서로 제각각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에 바쁜 사람들이 정작 바로 옆에 좀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장면은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오만과 편견’ 그 자체다.
목차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것들은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면서 행동이 날랬다. 몸에 걸친 수의는 너덜너덜했는데, 어떤 놈의 수의는 너무 더러워서 더러운 피가 말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놈들의 살은 부패가 진행된 정도에 따라 달랐는데, 살갗이 흐늘흐늘하고 살짝 녹색으로 변한 놈도 있었다. 놈들의 눈과 혀는 이미 흙으로 변한 지 오래였고 그들의 입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해골의 미소를 짓고 있다. 불행히도 창가에 가까이 있었던 몇 명은 순식간에 붙잡혀 잡아먹혔다. 엘리자베스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여자 좀비 두 명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롱 부인을 보았다. 그놈들은 롱 부인의 머리통을 호두처럼 깨물었고 시커먼 피가 샹들리에까지 높이 뿜어졌다. 손님들이 사방으로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을 때, 베넷 씨의 목소리가 이 소란을 뚫고 들려왔다.
“딸들아! 죽음의 팬터그램을!”
엘리자베스는 즉시 제인, 메리, 캐서린, 리디아와 함께 무도회장 가운데로 모였다. 아가씨들은 제각기 발목에서 단검을 꺼냈고, 보이지 않는 별의 다섯 꼭짓점 위에 우뚝 섰다. 그들은 방의 한가운데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전진했다. 아가씨들은 한 손에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잘록한 허리 위에 얌전하게 올려놓았다. --- pp.16~17
죽은 지 오래된 여자 좀비가 너덜너덜해진 초라한 옷을 걸치고 숲속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부서질 듯 마른 머리카락은 어찌나 뒤로 바싹 잡아매었는지 이마에서 뿌리가 뽑혀나갈 지경이었다. 좀비의 품 안에는 지극히 희귀한 것이 안겨 있었는데 자매 중 누구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바로 갓난아기 좀비였다. 그놈은 참을 수 없이 불쾌한 소리로 계속 울어대면서 엄마의 살을 할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머스킷 총을 치켜들자 제인이 재빨리 총대를 붙잡았다.
“그러면 안 돼!”
“언니는 맹세한 걸 잊었어?”
“갓난아기란 말이야, 리지!”
“좀비 갓난아기지. 이 머스킷 총만큼이나 죽은 게 맞아. 난 이걸로 저놈을 조용히 시키려는 거고.”
엘리자베스는 다시 머스킷 총을 치켜들고 조준했다. 끔찍한 여자 좀비는 길을 절반 이상 건너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좀비의 머리통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총을 낮추고 다시 장전하여 두 놈을 다 해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떤 이상한 힘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녀가 샤오린쓰로 처음 여행을 떠나기 전,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희미하게 떠오른 감정이. 그것은 수치심에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감처럼 불명예스럽지는 않은 기묘한 감정이었다. --- pp.117~118
커피를 마시고 나자, 피츠윌리엄 대령은 엘리자베스가 놀라운 손가락 힘을 보여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튼튼한 끈으로 치마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발목 주변에 단단히 감았다. 캐서린 영부인과 다른 사람들은 엘리자베스가 손으로 마루를 짚고 물구나무서기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끈이 치마를 붙들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자세에서 한쪽 손을 마루에서 떼고 남은 한 손으로만 온몸의 무게를 지탱했다. 다아시 씨는 당장 이 아름다운 곡예사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행동을 보고 처음으로 잠깐 편한 자세를 취했을 때,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아시 씨, 저를 보려고 이런 식으로 오시다니 저에게 겁을 주려고 그러시는 거죠? 그렇지만 전 놀라지 않을 거예요. 저는 고집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겁을 먹거나 하는 건 절대 못 참거든요. 누가 나를 위협하려고 할 때마다 항상 용기가 솟아나곤 한답니다.”
이 말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는 손바닥을 떼고 오직 한 손가락 끝으로만 버티고 섰다. --- pp.174~175
“왜 당신은 저를 불쾌하게 하고 저에게 모욕이 될 게 뻔한 욕망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자신의 이성과 심지어는 자신의 인격까지 거슬러가면서 저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로 한 건가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짓밟아버린, 영원히 짓밟아버린 사람을 제가 받아들일 거란 생각을 어떻게 하셨나요?”
그녀가 이 말을 하자, 다아시 씨의 얼굴색이 변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잠깐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즉각 발차기를 연달아 날리며 공격했던 것이다. 다아시는 어쩔 수 없이 세탁부 취권으로 대응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와 싸우면서 말했다.
“저는 당신을 나쁘게 생각할 만한 모든 이유를 다 갖고 있어요. 어떤 동기도 당신이 저지른 그 부당하고 편파적인 일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어요. 당신이 그 두 사람을 갈라놓은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주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감히 부인할 수는 없겠죠.”
그녀가 날린 발차기 한 방이 명중했다. 다아시가 어찌나 세게 벽난로 선반으로 날아가 부딪혔는지 가장자리가 부서질 정도였다.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냉혹한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