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본문

정조어찰첩
정조어찰첩
저자 : 정조
출판사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출판년 : 2009
ISBN : 9788979868067

책소개

200년만에 공개되는 정조대왕의 비밀편지
이제부터 정조의 역사는 다시 씌어진다!

『정조어찰첩 正祖御札帖』. 200년 만에 공개되는 정조대왕의 비밀편지 297통 ‘정조어찰첩’. 정조대왕이 신환지에게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보낸 편지로, 총 6첩 297건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어찰의 원본을 정밀하게 촬영한 사진들과 여러 전문 연구진들이 참여하여 탈초한 원문, 번역문을 꼼꼼하게 정리한 것이다.

정조어찰첩에는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 그 당시 정치 상황과 정치 행태 및 현안, 정조와 신하들과의 관계 등을 두루두루 살펴 볼 수 있다. 정조 자신이 고민했던 인간적인 모습, 일상모습, 그리고 당시 조정 신하들에 대한 평이나 어떤 문제 관해 꾸밈없이 독백처럼 여실히 드러나 있다. 더불어 자기 신상의 병력까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정조가 남몰래 쓴 편지 속에는 인사문제를 비롯한 당시 정치현안, 그리고 각 정파의 인물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담겨 있다. 또한 여론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거나 정국의 안정을 해치는 상소의 경우 그 공론화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조종하고, 나아가 정국 운영에 유리하도록 공론화시키는 데 ‘심환지의 입과 글’을 사용한 증거들을 볼 수 있다.

▶ CP 추천 | 이런 점이 좋습니다!
정조는 이 편지에서 대화하듯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인간 정조의 내면을 가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글을 통해 워커홀릭의 모습, 유먼홀릭의 모습 등 인간 군주가 가졌던 내면의 풍경을 만나봅니다. 때문에 이 책은 200여 년 전 정조시대의 역동적이었던 정치사와 찬란했던 문화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200년만에 공개되는 정조대왕의 비밀편지 297통,
이제부터 정조의 역사는 다시 씌어진다!

1. 정조어찰첩의 구성과 내용은?

정조대왕(1752~1800)이 심환지(1730~1802)에게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보낸 편지로,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 그 당시의 정치 상황과 정치 행태 및 현안, 정조와 신하들과의 관계 등등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친필 어찰이 총 6첩 297건에 담겨 있다.
어찰의 원본을 정밀하게 촬영한 사진들을 여러 전문 연구진들이 참여하여 탈초한 원문과 번역문, 해제가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정조시대의 역동적이었던 정치사와 찬란했던 문화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문제적 사료’임에 틀림없다.

2. 왜 정조어찰첩이 역사학계 나아가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가?
①사료적 가치 : 관찬 사료에서 기록하기 어려운 정조를 둘러싼 수뇌부에서 진행된 내밀한 정치 실태와 생생한 실상을 담은 이 자료는 당대 정치사적 의미를 풍부하게 알려준다. 정조 치세에서 세도정치의 시대로 이행하는 19세기 전후의 정치사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②문화적 가치 : 정조의 친필 원본 297건은 그 자체로 문화재이다. 이 정도 다량의 어찰 묶음은 유일하며 내용적, 사료적 가치를 고려하면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을 만하다.
③문화사적 가치 : 정조의 ‘편지정치’ 내지 ‘서신정치’는 조선조 한문학의 편지문화에서 파생된 형태로 정조는 이러한 편지문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했으며, 이 어찰첩을 통해 정조의 서예, 글쓰기 방식, 문체 등의 수준을 알 수 있다.

3. 정조어찰첩을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나?
①정조의 건강 문제, 독살설의 진위를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 : 정조의 건강은 이미 지속적으로 나빠졌고 사망할 무렵에는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정조는 스스로 자신의 병증을 진단하고 약제를 조절하는 등, 자가 진단은 물론 의원들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병증을 치료하고 있다.
정조어찰첩에 따르면 정조에게 지병이 있었고, 역의(逆醫)로 몰렸던 심인의 연훈방(烟熏方) 역시 정조가 직접 요구한 처방이었으며, 더욱이 정조 자신이 직접 조제와 처방을 지시할 정도로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따라서 여러 증거와 정황에 의거해서 보면 ‘정조독살설’을 부인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다만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조의 독살설은 당초 정치적인 정황을 근거로 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문서나 기록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닐 듯하다. 궁궐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문서나 기록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좀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②실용적인 문체를 구사한 정조 : 정조는 어찰첩에서 우리말과 속어나 속담, 심지어 비속어까지 활용하여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 예를 들면, “뒤쥭박쥭” “눈코 뜰 새 없다(眼鼻莫開)” “모쪼록(某條)” “개에 물린 꿩 신세(犬囓之雉)” “한 귀로 흘리다(一耳流)” “꽁무니 빼다(拔尻)” “입에 맞는 떡(適口之餠)” “참으로 호로자식(眞胡種子)” “주둥아리를 놀리려고 한다(敢欲容喙)” 등의 어휘를 거침없이 사용했다.
③정조와 신하 간, 특히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던 노론 벽파와의 관계 및 막후정치 구체화 : 정조는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벽파계의 지도자인 김종수와 심환지를 비롯해 서매수, 서용보, 이서구, 김희순, 이노춘, 이익모 등을 직접 관리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정조는 여론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거나, 정국의 안정을 해칠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편지를 보내 막후에서 여론을 조정했다. 심지어 정조는 정국 운영을 유리하게 공론화시키기 위해 심환지에게 상소의 내용까지 지시하고, 심환지가 상소할 발언의 수위와 내용까지 조절했다.
예를 들면 “오늘 서용보를 만났다. ‘내가 이미 이제학(심환지)에게 말하였으니 다른 사람을 시키거나 스스로 하거나 좋을 대로 하라’고 서(서용보)에게 말하였다. 만약 내일 만나거든 경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떠한가?” 등 정조는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막후에서 자신의 의중을 보여주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환지가 움직여줄 것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4. 정조어찰첩 간행에 참여한 학자들의 추천 글
■정조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안대회(성균관대학교 교수)
■18~19세기의 벽파계의 동향과 특성에 대해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김문식(단국대학교 교수)
■임금이 신하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방대한 양의 편지를 보내 정치적 협조를 구한 것은 사상 유 례가 없는 일이었다. —박철상(고문헌연구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간행사
일러두기

1첩
2첩
3첩
4첩
5첩
6첩

해제/편지로 읽는 ‘정조실록’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