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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저자 : 티에리 코엔
출판사 : 밝은세상
출판년 : 2010
ISBN : 9788984371033

책소개


내 아들의 몸이 버스에서 갈가리 찢겨지던 날 내 삶은 끝났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떠나온 아버지와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아들의 재회!


첫 소설 『살았더라면』으로 전 세계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티에리 코엔의 두 번째 소설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우정, 복수, 인간의 가치 같은 다소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대중소설의 화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주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녹여내고, 치밀한 구성과 놀란 만한 반전으로 독자이 잠시도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은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글쓰기로 진지하고 무겁고 교훈적인 주제를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에는 첫 번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법이 .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에서 사무치는 후회란 어떤 것인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테러로 인해 아들을 잃은 다니엘과 노숙자였다가 납치된 장, 두사람이 등장해 만들어 내는 두 갈래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구성과 미스터리 기법을 통해 시종일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역동적인 전개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둔다.


목차


내 인생은 내 아들의 몸이 버스에서 갈가리 찢겨지던 날 모두 끝났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흩어져 날아간 아이의 살점 하나하나에 내 삶의 순간순간들도 함께 흩어져 날아갔다. 승객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살점들이 버스 차체와 아스팔트를 향해 날아가 스러질 때 내 존재의 의미도 함께 스러졌다.
나는 내 아이의 살점들을 그러모으지 못했다. 설령 그러모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러진 살점들을 찾아내고 이어 붙여 이야기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내 아이를 위해,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아 그 빈자리와 타협해야 할 이들을 위해.
난 그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파국을 맞이하기도 전에 광기가 내 정신을 집어삼켜서는 안 된다. 머리가 조금이나마 맑을 때 산산이 흩어져 버린 아들과의 추억을 마주하고, 내 인생과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련다. --- pp.10-11

신문을 넘기다가 불현듯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목이 꽉 잠긴다. 신문에 그 괴물 같은 살인마의 사진이 눈썹을 찌푸린 채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와 있다. 지금까지 봤던 사진들보다 더욱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거진다. 내 시선은 팽팽하다 못해 신문지를 뚫고 들어가 어느새 놈에게 바짝 다가가 있다. 놈이 내 앞에 있다. 놈의 이목구비가 낯익다. 사진을 몇 장 봤을 뿐이지만 놈의 얼굴은 어느새 내 머릿속에 완강하게 박혀 있다. 나는 놈에게 갖가지 표정, 즉 걸음걸이, 몸동작, 목소리, 분노 따위를 부여했다. 실제와도 별 차이 없으리라. 나는 사진에 대고 그를 모욕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내 분노를 단 한 방울도 허투루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안으로 짓누르고 조여 고스란히 담아두어야만 한다. --- p.29

문득 멀리서 제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각각의 이미지와 말이 일치되지 않고 따로 놀며 열에 들뜬 채 꿈속을 헤매는 듯했다. 그때서야 난 이 기묘한 상황을 깨달았다. 어째서 제롬이 내 앞에 있는가? 제롬은 왜 밤이 이슥해지면 이따금 나를 찾아와 말을 거는가? 왜 난 제롬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가?
제롬의 죽음이 나를 불가사의한 생의 저편으로 밀어낸 게 분명했다. 난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인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며 내 삶을 지탱하던 골조를 심각하게 망가뜨려 버렸다. 다양한 이미지와 말들이 허공에서 둥둥 떠다녔다. 때가 되면 의미구조가 뒤틀린 이미지와 말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리라.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처음 내가 그 말들에 정해두었던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리라. --- pp. 43-44

사실상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 정신이다. 내 머릿속은 섬뜩한 이미지, 제롬과의 추억, 삶의 광채와 죽음,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금세 잦아드는 온갖 감정들로 뒤죽박죽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마다 나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나를 맡기고 이제 나를 해방시킬 행동을 짜기 위해 한 조각 명철한 정신을 붙잡고 버틴다. 이마저도 없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 한 조각 명철한 정신이 내 이성을 무너뜨린 게 아닐까? 난 ‘이미’ 미친 게 아닐까? --- pp.63-64

제롬을 살해교사한 놈이 여전히 무고한 사람들을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는 세상에서 더는 살 수 없다. 내 본심을 감추지는 않겠다. 내 복수는 전쟁 혹은 테러로 피 흘리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끔찍한 얘기지만 테러를 사주한 놈이 죽은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놈이 그 자리를 대신할 테니까. 테러조직의 지도자를 꿈꾸는 놈들이 어디 한둘인가? 민주주의의 약점을 악용하고, 테러 지원금으로 과격 종교단체에 돈을 대고, 어린아이들을 세뇌해 자살폭탄테러범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천지사방에 널렸다. 폭력적인 이미지에 목마른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놈들의 테러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폭력과 공포가 난무하도록 방치하는 게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다. 분명 테러는 옳지 않다. 나는 놈에게 공포를 알려주고 싶다. 테러를 저지르면 똑같이 보복 당한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다. --- pp.83-84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혼미했던 정신이 맑아지면서 죽음의 의미도 다 같지 않으며 죽는 방법도 여러 가지임을 새삼 깨달았다. 죽음에는 깨끗한 죽음, 더러운 죽음, 영혼이 저승 문턱을 넘기도 전에 지옥을 맛보아야 하는 야만적 죽음이 있다. 사고사,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죽음, 추락사는 비교적 깨끗한 죽음이다. 삶이 곧 끝나게 되리라는 걸 의식할 새 없이 찾아오는 죽음이니까.
몸과 영혼이 미지의 공포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이 지난한 죽음의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장은 목구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우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공포는 그 어디에서건 최악의 적이니까. --- p.186

언제부터 내가 복수의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제롬이 죽던 날부터인가? 그 아이의 장례식을 치른 날부터인가? 베티가 내게 축구연습을 마친 제롬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고 비난하던 날부터인가? 셰이크 파이살이 테러리스트를 순교자라 지칭하며 그들의 용기를 칭찬하던 날부터인가? 제롬이 처음으로 정원에 홀연히 나타난 날부터인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 정신착란을 그대로 수용했다. 미치는 것이 미치지 않는 것에 비해 못할 게 없지 않은가? 내가 미쳤다면 그 놈은 나보다 더 심하게 미치지 않았는가? 그 놈이 제멋대로 떠들게 내버려두는 사회의 맹목적인 관망에 비한다면 내 광기쯤은 잘못이나 죄가 아니었다. 불의를 단호하게 비판하고 대항하기보다는 살인자들에게 동정이나 보내는 미치광이들의 신경증에 비해 내 광기가 정당하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pp.240-241

떨리는 이빨 사이로 분노에 찬 말들이 튀어나온다. 내 아픔, 아니 피에르와 베티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그 말에 담겨 있다. 내 말이 황산이 되어 그의 얼굴과 영혼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셰이크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상황쯤은 이골이 나도록 겪어봤다는 듯 간결하게 말한다.
“미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이 벌인 무력도발 때문에 죽어간 아이들도 부지기수라는 걸 기억하시오. 그 아이들의 부모 가슴에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한이 맺혔다는 걸 정녕 모르지 않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아랍이나 흑인 아이의 목숨과 백인 아이의 목숨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려 들고 있소.”
나의 총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겨냥하고 있다. 보디가드들이 들이닥치면 즉시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아직 보디가드들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당신이 규탄해 마지않는 사람들과 당신의 수법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오히려 그들보다 더 고약하지.”
나는 기꺼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 p.269

“난 아들을 잃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아빠로서 뭐든 해야만 했지.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어? 어느 날 누군가가 당신 아들을 이유도 없이 죽였다고 상상해 봐. 그 자가 일체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 봐. 더 끔찍한 건 그 살인자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쉬쉬 해야 한다는 거야! 당신이라면 놈이 천벌을 받길 기다리며 잠자코 앉아 있을 수 있겠어? 나는 비겁자가 아니야! 폭력과 공포에 굴복하는 건 인간의 수치야! 이건 내 아들에 대한 신의의 문제이기도 해! 아니, 나아가 나와 우리 가족의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도…….”
“당신 부인과 아들이 또 다른 절망에 빠져도?”
“그때만 해도 내게 삶이나 죽음 같은 문제는 별 의미가 없었어. 난 이미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사람 같았으니까. 아들을 잃고 나니 나는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섭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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