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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장편소설)
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장편소설)
저자 : 더글라스 케네디
출판사 : 밝은세상
출판년 : 2012
ISBN : 9788984371170

책소개


전 세계 30여 개국 출간! 아마존 프랑스, 아마존 영국 베스트셀러!
『빅 픽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장편소설 『템테이션』 출간!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열렬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인기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템테이션』이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는 『빅 픽처』를 시작으로 총 다섯 작품이 소개되어 출간하는 소설마다 독자들과 긴밀한 호흡을 자랑하며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여섯 번째로 소개되는『템테이션』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역작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일제히 출간돼 더글라스 케네디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킨 이 소설은 롤러코스터처럼 몰아치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압도적인 재미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템테이션』은 주인공이 오래도록 갈망해온 꿈을 이룬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 데이비드 역시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성공이 가져다준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자초하는 그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최고급 샴페인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맛과 그 대가로 주어지는 치명적 숙취의 느낌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우리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그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사회에서 경쟁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간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재기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 『템테이션』은 생에서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목차


“진정하고 들어.”
“좋은 뉴스인가요?”
“더없이 좋은 뉴스야. 방금 브래드 브루스한테 전해 들었어. 브래드가 금방 자기한테 전화하겠지만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 FRT가 「셀링 유」 시리즈의 첫 여덟 편 에피소드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대. 브래드는 그 여덟 편 중에 네 편의 대본을 자기한테 맡기겠다고 했어. 전체 시리즈 대본의 총 지휘도 자기가 맡아 달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앨리슨이 나를 불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가 말했다.
“너무 놀라 입이 너무 크게 벌어졌어요. 지금은 잠시 떨어진 턱을 줍고 있어요.”
“원고료가 얼만지 들으면 더 놀랄걸? 정신 차리고 들어. 자그마치 회당 칠만오천 달러야. 원고료를 모두 합하면 삼십만 달러지. 다른 대본 집필을 총지휘한 대가로 십오만 달러를 더 받기로 했어. 크레디트에 원작자로 이름이 들어갈 거고, 전체 방송 수익에서 5내지 10퍼센트를 저작권료로 받게 돼. 축하해, 이제 자기는 부자가 됐어.” --- pp.17-18

바비는 「셀링 유」 첫 시즌 때 내 인생에 나타났다. 제3회가 방송으로 나간 뒤, 바비는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회사 공식 편지지에 쓴 바비의 편지에는 내 프로그램이 몇 년 새 본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자기가 내 투자브로커를 맡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저는 ‘정말로 약속한다.’ 같은 허풍은 떨지 않겠습니다. ‘그 브라우니를 다 먹기 전까지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 같은 사탕발림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똑똑한 브로커라는 사실을 자부하며 조만간 선생님께 짭짤한 수익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주 정직합니다. 제 말이 믿음직하지 않다면 다음 분들께 전화해 보시면…….”
그 뒤에는 바비 바라가 거래 고객이라고 주장하는 할리우드 유명인의 이름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편지를 훑어보고 버리기는 했지만, 버리기 전에 웃음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셀링 유」가 히트를 치고 나서 편지들이 일주일에 수십 통씩 왔다. 자동차 딜러, 부동산업자, 세무사, 운동 트레이너, 명상 집단……. 모두들 내 성공을 축하하는 한편 자기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바비의 편지는 그 중에서 가장 뻔뻔했다. 전반적으로 자만에 가득한 편지였고, 마지막 문단은 어이없기까지 했다.
‘저는 일을 그저 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뛰어나게 잘 하죠.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을 확인하고 싶으면 저에게 반드시 전화하세요. 전화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 pp.48-49

시사실에 불이 켜졌다. 나도 모르게 쇼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그저 조금 별난 영화가 아니었다. 완전히 저 너머에 있는 영화였다. 내가 더더욱 심란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싸구려 포르노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졸리니는 더없이 세심하고 진지한 감독이고, 「살로, 소돔의 120일」은 관객의 참을성을 극단까지 몰아가며 전체주의를 더없이 진지하게 탐구한 영화다. 나는 개인 소유의 카리브해 섬의 화려한 시사실에 혼자 앉아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목격했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휩싸였다.
‘필립 플렉은 이 영화로 도대체 무슨 의미를 전하려 했을까?’
그 해답을 곰곰이 생각하기도 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영화를 본 뒤에는 술이 필요하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서 있었다. 뿔테안경, 위로 틀어 올린 긴 갈색머리, 척 보기에도 지성미를 풍기는 30대 초반 여자였다.
“아주 독한 술이 필요하겠어요. 영화가…….”
“끔찍해요? 무서워요? 역겨워요? 지긋지긋해요? 아니면 잔인하게 재미있어요?”
“모두 다 해당됩니다.”
“그런 영화를 보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제 남편은 이런 농담 같은 일을 즐겨요.” --- p.148

마사가 나를 모래사장에 눕혔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깊은 입맞춤을 나눴다. 격렬한 순간 뒤에 내 귀에 이성의 목소리가 경보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몸을 빼려 하자 마사는 다시 나를 눕히고 속삭였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속삭였다.
“그럴 수는 없어요.”
“있어요.”
“안 돼요.”
“오늘밤만…….”
“그렇게는 안된다는 걸 잘 알잖아요?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어요. 특히…….”
“특히, 뭐요?”
“특히……아니, 우리 둘 다 알잖아요. 그저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정말 그렇게 느껴요?”
“어떻게?”
“그렇게…….”
나는 마사의 팔을 살며시 빼고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내가 느끼는 건……취했다는 겁니다.”
마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모르시겠어요? 보세요. 저, 이 섬, 이 바다, 이 하늘, 이 밤. 그저 하룻밤이 아니에요. ‘이 밤’이에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번뿐인 밤.”
“알아요, 알아. 하지만…….”
나는 마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사는 그 손을 꽉 잡았다.
마사가 말했다.
“너무 마음이 여리시군요.” --- p.184

“새로 수정해주신 시나리오가 아주 맘에 듭니다. 정치적인 의미가 강하게 담긴 범죄영화가 됐어요. 권태는 작금의 미국사회를 규정하는 주춧돌이잖아요. 권태야말로 소비지상주의에 깃든 만성 질환이죠. 바로 그런 점을 이 시나리오가 꼭 집어내고 있어요.”
플렉은 시나리오에서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시나리오나 대본을 팔면서 배운 게 있다면 감독이 그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어떨 것이라고 열심히 말하기 시작할 때 그저 고개만 끄덕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감독이 아무리 쓰레기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내가 말했다.
“물론, 무엇보다 이 시나리오는 장르 영화고…….”
플렉은 나에게 다시 에임스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장르 영화죠. 하지만 장르를 파괴하고 있기도 하죠. 장피에르 멜빌이 「사무라이」에서 실존주의적 암살자의 전설을 재정의한 것처럼…….”
‘실존주의적 암살자의 전설’이라고? 이런…….
내가 말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시카고에 사는 두 남자가 은행을 털려는 이야기죠.” --- p.199

“내가 보기에는 자기를 데리고 논 거야. 그 덕분에 선탠은 했잖아. 섬에서 다른 사람은 안 만났어?”
나는 샐리에게 마사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으므로 만난 사람이 없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나는 샐리가 정말 바라던 이야기를 꺼냈다. 샐리의 직장 이야기. 한때 샐리의 적이었던 스투 베이커를 일주일 만에 동지이자 보호자로 돌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스투 베이커는 가을 시즌 황금시간대 편성에 대해 샐리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며 폭스텔레비전의 최고 거물들에게 샐리를 뛰어난 인재로 소개했다.
아, 샐리가 직장에서 거둔 승리를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를 보고 싶었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기는 했다. 나도 똑같이 말하고 샐리에게 키스했다.
샐리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잖아. 우리에게는 지금이 전성기야.” --- p.217

인과율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더구나 잠옷 차림으로 기자를 공격했는데, 그 광경이 사진가의 카메라에 다 담겼을 때에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1면에 등장한 지 이틀 뒤에 나는 또 뉴스거리가 됐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토요일 판 4면에 내가 테오 맥콜의 멱살을 잡은 사진이 실린 것이다. 내 얼굴은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은 표정이었다. 내 잠옷도 문제였다. 침실이 아닌 곳에서 잠옷을 입고 있으면 미치광이로 비칠 뿐이었다. 대낮의 방송국 주차장에서 이성을 잃은 표정의 남자가 잠옷 바람으로 소란을 피웠다면 당장 치료가 필요한 미치광이로 보는 게 당연했다. 내가 독자라도 그런 사진과 그 아래쪽 기사를 읽었다면 그 남자를 미치광이로 취급 했을 게 틀림없었다.
사진 아래에 실린 짧은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셀링 유」의 해고 작가, NBC방송국 주차장에서 기자를 공격하다!
기사는 사실 위주였다. 맥콜 때문에 내 작가생활이 위기에 처한 과정이 요약되었다. 맥콜이 나를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겠다고 하자 경비원이 나를 보내줬다는 사건 개요가 그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맥콜의 코멘트도 실렸다.
‘나는 그저 사실을 밝혔을 뿐인데 아미티지 씨는 분노했다. 아미티지 씨에게 폭행을 당하기 직전에 다행히 NBC경비원이 막아 줬다. 나는 아미티지 씨가 전문가의 상담을 받기 바란다.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다.’ --- p.295

“내가? 자네가 파산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아홉 달만 기다리면…….”
“빌어먹을 아홉 달 타령은 집어 치워. 지금 나에게는 단 십칠 일밖에 없어. 그때까지 세금을 낸다고 해도, 그 뒤로는 빈털터리 신세야. 알았어? 완전히…….”
“난들 어쩌라고? 도박이 다 그런 거지.”
“자네가 투명하게 일처리만 했어도…….”
바비가 갑자기 화를 벌컥 냈다.
“야, 이 새끼야. 나는 투명하게 했어. 까놓고 따져 볼까? 네놈이 다른 작가 대사를 훔쳐다 쓰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쫓겨났잖아. 안 그랬으면…….”
“이 개자식, 개자식, 개자식…….”
“이제 끝이야. 말 그대로 끝. 이제 너와 거래 안 해.”
“당연히 그렇겠지. 나를 엿먹이고 이제…….”
“대화 끝이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주식을 현금으로 바꿔 줘?”
“지금은 그 수밖에 없어.”
“확실하지?”
“그래, 다 팔아.”
“알았어. 내일 송금할게. 끝.”
“다시는 전화하지 마.”
“내가 왜 전화해? 나도 낙오자는 상대 안 해.”
당연히 이튿날 전화 상담은 바비 바라와 나눈 통화 이야기로 채워졌다.
매튜 심스가 물었다.
“자신이 낙오자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pp.330-331

지난 반년 동안 나는 운명의 장난이 우연히 계속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불행의 도미노라고 생각했다. 재난 하나가 다음 재난을 불러오고, 그 재난이 또 다음 재난을…….
이제 번쩍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 모두가 완벽하게 계획되고 조작된 것이었다. 플렉에게 나는 싸구려 마리오네트일 뿐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 플렉은 나를 망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플렉은 자신이 초월자인 양 줄만 당겨도 나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앨리슨이 말했다.
“이 모든 일 중 내가 가장 놀란 게 뭔지 알아? 플렉이 자기를 완벽하게 깔아뭉갠 거야. 플렉이 「세 불평꾼」 시나리오에 단순히 자기 이름만 넣고 싶었다면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령 액수만 적당하다면 우리와 합의를 시도해볼 수도 있었잖아. 그런데도 플렉은 자기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쪽을 택했어. 혹시 플렉한테 크게 미움을 살 만한 일을 한 적 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그런 일이 뭐가 있겠어? 하지만 플렉의 아내 마사와 지나치게 가까워지기는 했잖아. 아니, 다시 생각해 봐. 마사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 따지고 보면 일이랄 것도 없었잖아. 술에 취해서 잠깐 껴안은 것뿐이야. 그것도 직원들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어. 야간 감시카메라가 야자수들 사이에 숨겨져 있다면 모를까? 그만, 그만! 이건 다 신경과민증적인 상상이야. 플렉과 마사는 별거 중이라고 했어. 마사와 내가 해변에서 조금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플렉이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않나? 하지만 플렉이 신경 쓴 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지?
아니면……아니면…….
플렉이 나에게 보게 만든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지 않을까? 플렉이 그 불쾌한 영화를 왜 굳이 나에게 보여 주려 했는지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어.
그 영화에 대한 플렉의 말이 기억났다.
‘파졸리니는 테크놀로지가 개입되기 전 단계의 순수한 형태로 파시즘을 보여 주고 있어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부정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게 바로 파시즘이죠. 파시즘은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기능적인 대상으로 취급하죠. 이를테면 인간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거죠.’
그 말이 이 사악한 음모의 요점이 아니었을까? --- p.370-371

마지막 음식이 테이블에서 치워지고 커피도 다 마시고 난 뒤 마사는 내 손을 잡고 호텔 본관으로 이끌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화려하고 넓은 스위트룸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마사가 나를 팔로 감싸 안고 말했다.
“캐리 그랜트와 캐더린 헵번이 주연한 영화마다 반드시 나오는 장면 알아요? 캐리 그랜트가 캐더린 헵번의 안경을 벗기고, 미친 듯이 키스하잖아요. 지금 그 장면을 재현해보고 싶어요.”
우리는 그렇게 했다. 영화와 달리 우리는 그 장면을 침대까지 곧장 이어갔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나는 개운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에 취해 아직 잠이 덜 깬 몇 분 동안 가만히 침대에 누워 간밤의 특별한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마사를 찾아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닿은 건 나무 재질의 물건뿐이었다. 케이틀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였다. 내 옆에는 액자뿐이었다.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호텔방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10시 12분. 탁자에 검은 상자와 편지봉투가 놓여 있었다. 일어서서 탁자까지 걸어갔다. 봉투 겉면에 ‘데이비드 선생님께’라고 적혀 있었다. --- p.399

작가로서의 내 명예는 회복했지만 이제 나는 성공의 본질을 더없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성공은 다음 번 성공으로 이어질 때까지만 유효하다. 그러므로 지금의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를 곳은 어디일까? 그것이 가장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우리는 ‘그 어디’에 다다르기 위해 몇 년 동안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그곳에 다다랐을 때, 모든 게 발아래에 있고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불현듯 낯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정말 내가 어디에 다다르긴 한 것일까? 아니, 그저 중간 지점에 다다른 게 아닐까?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저 멀리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종착지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겠나?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하나였다.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러나 그 확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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