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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장편소설)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장편소설)
저자 : 기욤 뮈소
출판사 : 밝은세상
출판년 : 2022
ISBN : 9788984374386

책소개


센 강에서 건져 올린 여인이 몰고 온
비교불가의 아찔한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 2021년 신작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한국에서 18번째로 출간하는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이다. 기욤 뮈소는 20년 가까이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매년 한 권씩 소설을 내고 있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초기에는 로맨스, 판타지, 스릴러가 결합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스릴러의 비중이 큰 편이다. 기욤 뮈소가 무려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이 있다면 언제나 변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 기욤 뮈소는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인생은 소설이다』를 통해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주제로 매우 깊이 있고 내밀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와 센 강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데스마스크’ 이야기를 결합시킨 소재로 매우 독특하고 매혹적인 스릴러를 선보이고 있다.

19세기 말에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센 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센 강을 지키던 하천경비대원이 여인의 시신을 건져냈다. 병원 영안실 직원 하나가 여인의 얼굴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몰래 데스마스크를 떴다. 그 후 석고로 제작된 이 데스마스크 복제품들은 파리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파리 예술계 인사들의 집을 장식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시인 루이 아라공과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집에도 여인의 데스마스크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기욤 뮈소는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에 대한 이야기와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디오니소스 숭배 관습을 버무려 가슴이 서늘해지는 한 편의 스릴러를 선보이고 있다.



목차


사라진 여인에 대한 생각이 록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회면 기삿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고,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문과 대학입시 준비반 시절에 공부했던 한 편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19세기 말에 젊은 여인 하나가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센 강을 지키던 하천경비대원이 여인의 시신을 발견해 물 밖으로 건져냈다. 영안실 직원 하나가 여인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몰래 데스마스크를 떴다. 그 이후 석고로 제작된 데스마스크는 계속 복제를 거듭하면서 파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20세기 초에 여인의 데스마스크는 파리의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던 예술계 인사들의 집을 장식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시인 아라공은 그의 시 〈오렐리앵〉에서 이 데스마스크를 ‘자살의 라 조콘다’라고 불렀다. 알베르 카뮈의 작업실에도 이 데스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여인의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느낌은 단연 매혹적이었다. 툭 불거진 광대뼈, 매끄러운 피부, 살짝 감긴 두 눈을 살포시 감싸고 있는 가늘고 섬세한 속눈썹, 드러날 듯 말 듯 신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의 아름다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pp.40~41

“강물의 오염이 심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물에 빠져 있었고, 감염 위험이 큰 환자라 먼저 응급실로 옮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죠.”
“그나마 예전보다는 수질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이달고 시장이 파리 올림픽 이전에 센 강에서 수영이 가능하도록 수질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오염이 심합니다. 강물을 극소량만 마셔도 설사와 방광염을 일으키죠. 강물에 대장균이 많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쥐의 시체들이 많아 렙토스피라증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물에 떠있기만 해도 세균에 감염될 수 있습니까?”
“그 여인의 몸에는 최근에 새긴 문신이 있었습니다. 몸에 문신이 있으면 세균 감염 위험이 현저하게 올라가죠.”
록산은 예인선 주변에서 배의 수리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브뤼노의 목소리를 덮어버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여자의 몸에 문신이 있었다고요?”
“네, 양쪽 발목에요.”
카트린은 문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찰청 간호실에서 엉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뜻이었다.
“여인이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문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척 보기에도 최근에 새긴 문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문신이었는데요?”
브뤼노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담쟁이덩굴 왕관 문신이 발목에 새겨져 있었어요. 다른 문신은 얼룩무늬가 있는 털 같더군요. 짐승의 털가죽을 떠올려보면 어떤 문신인지 짐작이 갈 겁니다. 차라리 그림을 그려볼까요?”
“네, 그림이 좋겠네요.”
--- pp.57~59

시계점 주인이 말했다.
“그 시계에는 두 개의 추가 달려있죠. 그 두 개가 만나 하나의 소리를 냅니다.”
“시계에서 하나의 소리가 난들 무슨 의미가 있죠?”
시계점 주인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뭐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냥 제작자의 아이디어일 뿐이죠. 매우 특별한 상징이기도 하고요.”
“상징이라면?”
“첫 번째 주인이었던 화가 숀 로렌츠는 이 시계에 대해 동시에 뛰는 두 개의 심장이라고 표현했죠.”
록산은 아라공의 시 ‘나는 내 심장을 너의 두 손 사이에 놓았지. 그건 네 심장과 보조를 맞춰 함께 뛰었지.’를 연상시키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시계점 주인이 도자기로 된 커피를 은쟁반에 담아왔다.
“숀 로렌츠가 사망했을 당시 소설가인 로맹 오조르스키의 부인이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그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특별히 시계 뒷면에 글자를 새겨 달라고 하면서요.”
록산은 시계 뒷면에 새겨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당신은 내 마음의 평화인 동시에 혼돈이야. 프란츠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온 글이네요.”
록산은 이 시계에 얽힌 역사가 대단히 멋지고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로맹 오조르스키가 부인과 이혼한 후 시계를 처분해 버리고 싶어하기에 제가 고객을 대신해 구입했습니다.”
“그 고객이 누군데요?”
“직업상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만큼 이 자리에서 고객이 누군지 밝힐 수는 없습니다.”
록산이 어이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당신은 판사도 의사도 변호사도 아니잖아요. 직업상 비밀 유지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흰 토끼의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 고객은 바로 소설가 라파엘 바타유였습니다. 그는 로맹 오조르스키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죠.”
록산은 어안이 벙벙해지며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 pp.72~74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에어프랑스 229편 사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중령님께 몇 가지 여쭐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궁금한 게 뭔지 말씀해 보세요.”
“희생자들의 사체들 가운데 3분의 2를 건져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희생자가 모두 합해 178명이었는데 그중 121명의 사체를 찾아내 인양했죠.”
“바다 속에 가라앉은 사체를 찾아내고 인양하는 작업은 주로 누가 했습니까?”
“우리 헌병대가 포르투갈 군과 아르헨티나 내무부의 협조를 받아 진행했습니다. 6개월 동안 잠수부들을 투입해 사체를 찾아내 인양했어요.”
“사체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생각보다는 부패 정도가 심하지 않았어요. 그 지역 바다의 수온이 낮고 수압이 높았기 때문이죠. 바닷물 밖으로 인양한 직후부터 사체가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하더군요.”
“산화 때문인가요?”
“사체가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동안에는 비누화 현상이 진행되어 부패가 억제됩니다. 공기와 접촉하면서 빠른 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하죠.”
택시는 이제 막 카뉴쉬르메르 경마장을 지나고 있었다. 여름 휴가철에는 도로가 미어터질 정도로 북적대는 곳인데 요즘은 비수기라 교통 흐름이 원활했다. 날씨는 쾌청하고 하늘을 머금은 바다 물빛이 유난히 파랬다. 리비에라 해안을 떠올리게 만드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탓인지 중령이 들려주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사체를 인양하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 신원 확인을 합니까?”
“신원 확인 절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유족들과 접촉해 희생자의 신상 정보를 수집합니다. 무엇보다 유전자 정보가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유족들과 접촉해 확보한 유전자 정보와 검시 팀이 사체에서 채취한 샘플을 맞춰보면 희생자의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 pp.108~109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제우스가 유혹해 디오니소스를 낳은 세멜레는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딸이었죠. 그녀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한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세멜레는 연인인 제우스에게 신들의 왕다운 위력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우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번개와 불을 본 세멜레는 몸이 산 채로 불태워지게 되죠. 제우스는 가까스로 세멜레의 태중에 있는 아기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 속에 넣고 꿰맸습니다. 그 결과 간신히 아기를 구해낼 수 있었죠.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인간이 합체해 태어난 신이죠.”
록산은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듯했다.
“디오니소스를 숭배한 풍습을 다룬 연구논문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는 언제나 악마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기 마련이죠.”
숲에서 벌어지는 카니발, 바쿠스 제, 사티로스들에게 몸을 바치는 요정들이 연상되었다.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숲에서 벌어지는 난교 파티였다.
“디오니소스는 어디를 가든 여자들을 유혹했어요. 신비한 망상에 사로잡힌 여자들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게 되었죠.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숭배하게 된 여자들을 숲으로 데려가 숭배 의식을 치렀습니다. 디오니소스의 난교 파티에 참석한 여인들을 여신도라고 부릅니다. 여신도들은 사티로스들과 더불어 디오니소스를 보좌하는 수행원 역할을 하게 되죠. 디오니소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녔고요.”
--- pp.142~143

나는 아버지가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가끔 슬픔의 심연 속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게 오히려 삶을 지키는 안전판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슬픔과 역정을 조금이나마 삭이려면 그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 덕분에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해갈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 역시 주기적으로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는 순간, 미치광이가 되는 순간, 악마들이 내 영혼을 지배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충고의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가만히 곁에 서서 나를 지켜 주었다. 아버지는 가끔 나를 데리러 경찰서를 방문했다. 영원히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나를 두 번씩이나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는 힘겨운 시기에 서로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남자, 나는 아버지 인생의 남자였다.
나는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거실로 다시 내려와 잔뜩 어질러진 집 안을 치웠다. 아동용 의자, 베라가 어디를 가든 품에 안고 다녔고, 엄마 차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그 순간에도 옆에 있었던 베벨레팡 인형도 치웠다. 살아 있는 동안 베라의 뇌리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을 베벨레팡 인형을 볼 때마다 내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럴 때면 나도 베라의 곁으로 가고 싶어졌다. 베라와 하늘나라에서 같이 지내고 싶어 아버지가 감춰둔 MR73 권총을 몰래 꺼내 총구를 머리에 가져다 대본 적도 많았다. 언젠가 이 모든 비극이 끝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또 다른 나는 은연중 비극의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MR73 권총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권총을 총집에 다시 집어넣고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아버지와 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비합리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방식을 추구했다. 우리는 가끔 무질서한 광기의 세계를 넘나들었지만 빛이 없는 어둠 속으로 완전히 매몰되지는 않았다. 언제나 삶에 대한 허기가 아버지와 나를 다시 빛의 세계로 데려왔다.
--- pp.243~244

“요즘 새롭게 만나는 여자가 있어요.”
“파리 여자야?”
“지난달에 스위스에서 처음 만났어요. 로잔에 머물 때 같은 호텔에 투숙했던 여자였어요.”
“로잔에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소설 구상을 위해 간 거야?”
“파요 서점에서 독자 사인회가 있었어요.”
“무슨 일을 하는 아가씨야? 로잔이니까, 은행가?”
문득 아버지의 서가에서 본 CD 재킷이 떠올랐다.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인데 아버지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름이 밀레나 베르그만인데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내가 기대했던 대로 아버지의 눈에서 모처럼 반짝거리는 불꽃이 튀었다.
“밀레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야. 밀레나가 연주한 피아노곡 음반을 거의 다 갖고 있어. 슈베르트, 드뷔시, 사티…….”
나는 아버지의 눈에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라고 했다가 그다음에는 ‘밀레나가 어떤 성격인지 궁금하네.’로 이어졌다가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로 변모했다.
“아니, 정말 내 아들이 밀레나 베르그만과 사귄단 말이야?”
“사귄 지 한 달 되었어요.”
“정말이지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닐 수 없구나. 밀레나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봐.”
폭탄은 그렇게 해서 발사되었다.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려고 꺼낸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아버지의 꺼져가는 엔진을 되살리고 싶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했고, 모처럼 한 시간이 넘도록 활기찬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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