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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고학 연구
저자 : 한창균
출판사 : 혜안
출판년 : 2020
ISBN : 9788984946439
책소개
글을 엮어 내며
1부 북한 고고학의 형성 과정 시론
구석기 고고학의 형성 과정-해방 이후~1960년대 초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해방 이후~1950년대
Ⅲ. 1960년대 초:구석기 고고학 연구의 전환점
Ⅳ. 맺음말
신석기 고고학의 형성 과정-해방 이후~1960년대 초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해방 이후~1956년:고고학적 인식의 한계
Ⅲ. 1957년:신석기 고고학 연구의 전환점
Ⅳ. 1960년대 초의 학계 동향
V. 맺음말
청동기 고고학의 형성 과정-해방 이후~1960년대 초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해방 이후~1956년:고고학적 인식의 한계
Ⅲ. 1957년:청동기 고고학 연구의 전환점
Ⅳ. 1960년대 초의 학계 동향
V. 자연 유물 연구
Ⅵ. 맺음말
고조선 고고학의 형성 과정-해방 이후~1960년대 초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해방 이후~1950년대 중반의 학계 동향
Ⅲ. 고조선 고고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Ⅳ. 맺음말
종합 검토:북한 고고학의 형성기 설정과 관련하여
2부 연구 동향, 연구사
북한 고고학계의 구석기시대 연구 동향-제4기의 연구와 구석기시대의 시대 구분을 중심으로
Ⅰ. 문제의 제기
Ⅱ. 구석기시대 유적의 조사
Ⅲ. 제4기의 연구
Ⅳ. 구석기시대의 시기 구분
V. 맺음말
선사시대의 존재 양태와 겨레의 기원 문제
Ⅰ. 시대 구분의 체계와 그 배경의 검토
Ⅱ. 겨레의 기원 문제
초기(1945~1950년)의 북한 고고학
Ⅰ. 머리말
Ⅱ. 문화재 관계 법령의 제정
Ⅲ. 유적 조사와 발굴
Ⅳ. 학술지(『문화유물』) 간행
Ⅴ. 한흥수와 도유호
Ⅵ. 맺음말
북한의 구석기문화 연구 30년
Ⅰ. 머리말
Ⅱ. 1960년대의 연구
Ⅲ. 1970년대의 연구
Ⅳ. 1980년대의 연구
V. 1990년대 초반의 연구
Ⅵ. 맺음말
최근 북한의 청동기시대 연구 동향
Ⅰ. 머리말
Ⅱ. 무덤
Ⅲ. 성터
Ⅳ. 집자리
Ⅴ. 앞날의 과제와 전망
Ⅵ. 맺음말
1950년대의 북한 고고학 연구
Ⅰ. 머리말
Ⅱ. 당시 북한 사회와 고고학계의 동향
Ⅲ. 원시문화의 연구와 시대 구분
Ⅳ. 초기 금속문화와 고조선
Ⅴ. 고구려
Ⅵ. 맺음말
1960년대의 북한 고고학 연구
Ⅰ. 머리말
Ⅱ. 당시 북한 사회와 고고학계의 동향
Ⅲ. 원시문화의 연구와 계승성 문제
Ⅳ. 청동기시대와 고조선
Ⅴ. 고구려
Ⅵ. 맺음말
한국의 선사시대에 대한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과 시각-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구석기시대
Ⅲ. 신석기시대
Ⅳ. 민족의 기원 문제
Ⅴ. 맺음말
북한 고고학사의 시기 구분 체계에 대하여
Ⅰ. 머리말
Ⅱ. 북한 고고학계의 시기 구분
Ⅲ. 시기 구분론의 검토와 과제
Ⅳ. 맺음말
북한 고고학에서 보는 요서 지역의 신석기문화
Ⅰ. 머리말
Ⅱ. 1960년대~1980대
Ⅲ. 1990년대 이후
Ⅳ. 맺음말
3부 구석기시대 유적, 유물
굴포리 구석기 유적을 다시 논함
Ⅰ. 문제의 제기
Ⅱ. 발굴과 층위
Ⅲ. 석기의 분석
Ⅳ. 유적의 연대
Ⅴ. 맺음말
용곡 동굴유적을 다시 논함
Ⅰ. 문제의 제기
Ⅱ. 발굴과 층위
Ⅲ. 사람 화석
Ⅳ. 동물 화석
Ⅴ. 홀씨와 꽃가루
Ⅵ. 문화 유물
Ⅶ. 맺음말
용곡 제1호 동굴유적의 시기 구분과 문제점
Ⅰ. 문제의 제기
Ⅱ. 유적에 대한 몇몇 견해의 검토
Ⅲ. 퇴적층의 형성 시기
Ⅳ. 동식물 화석과 시기 구분
Ⅴ. 글을 맺으며
북한의 구석기 유적 연구
Ⅰ. 문제의 제기
Ⅱ. 한데유적의 검토
Ⅲ. 동굴유적의 검토
Ⅳ. 맺음말
북한의 선사시대 뗀석기 연구
Ⅰ. 머리말
Ⅱ. 유적 개관
Ⅲ. 석기의 제작 수법과 분류
Ⅳ. 맺음말
북한의 선사시대 뗀석기 용어 고찰
Ⅰ. 머리말
Ⅱ. 제작 수법에 관한 용어
Ⅲ. 석기 분류에 관한 용어
Ⅳ. 맺음말
황해도 지역의 구석기 유적
Ⅰ. 머리말
Ⅱ. 평산 해상 동굴유적
Ⅲ. 황주 청파대 동굴유적
Ⅳ. 태탄 냉정 동굴유적
Ⅴ. 종합 고찰
Ⅵ. 맺음말
목차
잊혀졌던 북한 고고학 70년의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정리한 책!
굴포리 유적, 승리산 동굴유적, 검은모루 동굴유적 등은 중고교 국사교과서에도 대표적인 북한지역의 구석기유적으로 소개되어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름들이다. 그러나, 분단 이후 정치적?공간적 거리감으로 인해 마치 외계의 별이름만큼이나 멀고도 현실감이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나고 남북분단이 고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 남한과 북한의 역사학, 고고학의 거리 역시 그만큼 멀어진 채 상대의 학문 연구 발전이나 현 수준에 대해선 무지와 무관심이 당연한 듯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반도의 선사유적이 우리 민족 모두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임이 당연하듯, 남북한의 고고학 연구 성과와 현황 또한 어느 한쪽만의 자산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고 같이 발전시켜야 할 ‘공통의 역사기억’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한창균 교수(前 연세대 박물관장)는 “자기 나라 강토에서 발굴되거나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을 두고 남북의 학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지날 수 없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한 뒤 30년간 한국에서는 드물게 ‘북한 고고학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해왔고, 그간 북한 고고학계의 대표적 학자로 굴포리 유적을 발굴한 도유호의 평전 ??하담 도유호??(2017)를 간행한 데 이어, 이제 북한 고고학계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북한 고고학 연구??를 간행하게 되었다.
거슬러 보면,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고고학 분야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였던 도유호(1905~?)는 굴포리(1963)와 석장리(1964)에서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 왔던 구석기 유적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남북의 유적?유물에 대한 연구 성과를 상호 교류하자는 취지의 글을 ??노동신문??에 기고하였다(?우리 나라 구석기 시대 연구를 위하여?, 1966년 6월 11일). 기고문은 도유호의 이름으로 보도되었지만, 학술교류 방안이 북한의 대내외적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신문??에 의하여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북한 정권이 이 부문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상황에 의해 지속되어 온 ‘북한 고고학 자료의 장벽’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이전에 노태우 정권이 발표한 ‘7?7선언’(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계기로 연구자 및 국민들에게도 문호 개방이 되었고, 이에 따라 그동안 물밑에서만 나돌던 북한의 고고학 및 역사학 관련 자료가 차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문화유산??과 ??고고민속??, ??고고민속론문집??, ‘유적발굴보고’, ‘고고학자료집’ 등을 망라한 북한 고고학 관계 서적이 빠른 속도로 한국의 이곳저곳에서 출간되었고, 그에 기초한 저자의 북한 고고학 연구도 심도 있는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북한 고고학의 형성기’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주로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북한에서 조사 연구된 고고학적 성과를 다루었다. 5편의 글을 통하여 저자는 “1957년도라는 시점은 북한 고고학뿐만 아니라 남북 통합 고고학사의 측면에서 검토할 때, 초기 단계의 학술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전환기(형성기)를 맞이한 분기점으로 설정될 수 있다.”라고 요약한다.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57년에 이루어진 북한 고고학적 성과(궁산 유적 보고서 간행, 지탑리 및 태성리 유적 발굴)는 해방 이후 남북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고고학이 새로운 편년 체계의 얼개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주춧돌의 역할을 하였다. 둘째, 비록 각론에 있어 적지 않은 시각의 차이가 보이지만, 1957년 이후 이룩된 북한 학계의 연구 성과는 남한 고고학이 자기 변화의 길을 나아가는 데 촉매제와 같은 구실을 하였고, 이를 통하여 남한 고고학계의 편년 체계도 상대적으로 빠른 기간 안에 수립될 수 있었다. 셋째, 편년 체계의 확립에 근거하여 일제 고고학의 적폐를 대변하는 금석병용기설의 허구성이 극복됨에 따라 선사시대(원시시대)에서 고대로의 이행 문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고고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부문에 걸쳐 확산되었다. 넷째, 남북 통합 고고학사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1957년도라는 시점은 우리나라 고고학이 초기 단계의 학술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전환기(형성기)를 맞이하도록 해주었던 분기점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이 책의 2부와 3부는 그간 저자의 북한 고고학 관련 논문을 2부 10편, 3부 7편을 담았다. 2부에는 주로 원시시대의 연구 동향과 연구사에 관한 글, 그리고 3부에는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다루었던 글이 수록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북한 학계에서도 스스로 ‘역사적 사변’이라고 일컫는 단군릉 발굴(1993)과 개건(1994), ‘대동강문화’의 명명과 선포(1998)는 약 반세기 동안 북한 고고학계에서 축적된 학술적 성과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단군릉은 북한 최고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를 구현하는 일환으로 발굴 및 개건되었다.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고조선 중심지가 요동 지역(요동설)에서 대동강 유역(평양설)으로 확립되었고, 종래와 전혀 다른 시각에서 고조선의 성립 시기와 발전 단계가 서술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청동기시대의 상한 연대도 재조정되었다.
2009년 간행된 북한의 ??조선통사(상)??을 보면 남한 학계의 관점과 상당히 동떨어진 북한의 연구 성향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고고학 전공자라면 누구도 인정하듯이 선사시대(원시시대)와 고대의 편년 체계 및 그 전이 과정 등을 비롯하여 각 시대별 문화 단계의 성격과 특성을 이해하는 데 쌍방은 서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상이하게 괴리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자가 보기에 단군릉 발굴 이전 북한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는 논자에 따라 취사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단군릉 발굴 이후 획일적으로 고착화된 북한 고고학의 편년 체계는 남한 고고학과의 학술적인 소통과 교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동일한 유형의 문화유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질 대로 벌어진 고고학적, 역사적 인식의 차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꼬여만 가는 이 난제(難題)의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방관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에서 당장 실현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구체적 해결 방안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하며, 그것이 오늘날 남한 고고학계가 당면한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폭넓게 인지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간행은 그 노력의 한 매듭이자 새 출발점이 되리라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