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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여름의 마지막 장미
저자 : 온다 리쿠
출판사 : 재인
출판년 : 2010
ISBN : 9788990982414

책소개


참을 수 없이 격정적이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온다 리쿠의 판타스틱 미스터리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 청춘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혼합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작가 온다 리쿠가 환상적인 미스러리 작품을 선보인다. 온다 리쿠 식 본격 미스터리물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별책 문예춘추》에 지난 2003년 5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연재된 장편소설로, 온다 리쿠에게는 스물여섯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작가는 매우 드라마틱하며 광기 어린, 그러면서도 고딕풍의 섬찟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문체로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그만의 미스터리 소설을 써 내려간다.

국립공원의 산 정상에 있는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호텔에서는 매년 늦가을 재벌가 사와타리 그룹의 세 자매가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올해도 수십 명의 손님이 초대받아 모여든 가운데, 어두운 비밀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 자매의 친척과 관계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만찬 석상에서 주빈인 세 자매는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어떤 사건에 관해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 이야기의 끔찍함과 잔인함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호텔을 뒤덮은 가운데, 어느 날 아침 중앙 계단의 층계참에 놓인 거대한 괘종시계가 넘어져 세 자매 중 둘째인 니카코가 깔려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작품은 끝까지 이야기를 완결되지 않는 구조로 열어 놓는 개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기 때문에 등장인물 모두가 한 번씩은 제3자의 묘사를 거치게 되면서 보다 객관적인 정보가 가감없이 전달된다. 작품 속에는 이렇듯 온다 리쿠만의 독특한 미스터리 작법의 요소가 곳곳에 엿보인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통해 비일상적인 공간과 비일상적인 시간이 교차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 속으로 독자들을 숨 가쁘게 몰고 가는 판타스틱 미스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목차


그 괘종시계는 관을 닮았다.
서양의 그림책에서는 관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경우가 흔했던 것 같다. 드라큘라도 지하실 벽에 세워둔 관 속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잠잔다.
그 시계는 로비의 정면 층계참 한가운데 서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층계참을 지나 두 갈래로 갈라지기 바로 전 위치에서 계단을 좌우로 양분하는 역할을 한다.
높이가 족히 2미터는 될 만큼 웅장하고, 꼼꼼하게 니스를 칠한 붉은색 나무는 지금도 다가오는 손님의 모습이 비칠 만큼 반들반들하다. 과연 이 정도 크기면 일곱 마리 염소 중 막내가 숨어들 여유가 충분하다.
유리문에는 빛을 잃은 금색 글자로 ‘1969년 사와타리 정공 주식회사 기증’이라고 쓰여 있다. 이 호텔의 소유주와 같은 성씨이다.
괘종시계가 이렇게 자주 울리는 것이었던가.
소리 없이 흔들리는 진자가 또박또박 때를 새기다가 매시 30분에 한 번, 그리고 정시에는 숫자판의 수만큼 우직하게 시간을 알린다.
인기척 없는 복도를 지날 때나 메인 다이닝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내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이 땡,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그 소리가 들리면 몸이 움찔한다. 나는 이 시계가 이 호텔의 중심에 서서 묵고 있는 손님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세 여자는 공범자 같은 표정으로 눈길을 주고받는다.
순간적으로 누가 주역을 맡을지 정해진다. 이번에는 미즈코인 듯하다.
미즈코의 눈빛이 먼 곳을 바라보는 듯 아득해진다.
“그곳에만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어. 환한 가을 햇살. 쓰러진 고목이 있고, 거기에 하얀 덩어리가 있었지. 마치 하얀 솜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어. 우리는 어리둥절해서 그저 보고만 있었지. 그러다 다가갔어.”
미즈코는 궁금증을 부추기듯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하얀 덩어리가 움직이는 거야. 우리는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쳤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얀 덩어리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거야.”
미즈코는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건, 무수한 나비 떼였어. 앉아 있던 나비가 우리들이 다가오자 날아 오른 거였지. 그리고 나비가 있던 곳에…….”
미즈코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어. 쓰러진 고목에 뭐가 휘감겨 있었어. 그런데 조금 더 다가가 보니까 검은 머리카락이 보이는 거야. 지금 보이는 게 머리카락이라는 걸 아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지. 그리고 체크무늬 셔츠와 검은 바지도 보였어.”
미즈코가 볼에 손을 대었다.
“얼마나 끔찍하던지! 그건 사람의 시체였어. 게다가 시체가 좀 묘했어. 백골이 되기 전,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말린 생선 같은 상태였다고 할까. 어머나, 식사하는 중인데 미안하네. 그리고 도처에 돋은 새싹이 쓰러진 고목과 어우러져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이었어. 나비가 그 몸을 감싸고 있었던 거지. 왜 그랬을까, 체액이라도 빨아먹고 있었던 걸까? 그건 지금도 모르겠네. 그리고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어. 뛰고, 뛰고, 또 뛰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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