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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저자 : 선우진,최기영
출판사 : 푸른역사
출판년 : 2009
ISBN : 9788991510845

책소개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백범 김구 비서 선우진 회고록>에는 저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인간’ 백범이 있다. 민간인 살해범, 테러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 백범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전 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백범이 있다.



2009년은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저자는 말한다. 백범은 언제나 자신이 으뜸이 되기보다 범부를 자처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먼저 섬기고, 따뜻한 인간애와 검소, 절제를 몸소 보여준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이 책에는 이처럼 범부이기를 바랐던 인간 백범의 면면이 해방 전후의 모습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진다.



한국광복군훈련반원이던 선우진은 1945년 1월 31일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간다. 거기에서 백범 선생을 처음 만난다. 그리고 1949년 6월 26일 백범 선생이 서거하는 날까지 만 4년 반 동안 선생의 비서로 선생을 곁에서 보필한다.



이 책에는 단정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상황에서 단정만은 막아야 한다며 김일성과의 회담을 위해 묵묵히 38선을 넘는 백범도 있고, 정치자금을 건네는 친일 갑부에게 호통을 치며 내쫓는 백범도 있다. 경교장에서 <중국시선>을 읽은 뒤 조용히 휘호를 쓰는 백범도 있고, 북행을 만류하는 청년들에게 ‘옳은 일을 하려는데 반대하느냐’며 일갈하는 백범도 있다.



2009년은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저자는 말한다. 백범은 언제나 자신이 으뜸이 되기보다 범부를 자처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먼저 섬기고, 따뜻한 인간애와 검소, 절제를 몸소 보여준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이 책에는 이처럼 범부이기를 바랐던 인간 백범의 면면이 해방 전후의 모습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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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간’ 백범을 만나다



테러범? 독립운동가!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이 중등 교과서의 근.현대사 좌편향을 시정하겠다며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백범 김구 약력 중 일부다.

2007년 11월 백범은 새로 발행될 10만 원권의 초상 인물로 선정된다. 그러나 2008년 12월 정부는 10만 원권 화폐 발행을 무기한 유보한다는 방침을 확정한다. 경제난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실상은 앞면 도안 인물로 백범이 채택된 데 대한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란다.

민간인 살해범, 테러범, 대한민국의 건국과 무관한 인물이라는 묘사의 연쇄 속에서 백범은 10만 원권의 초상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나 ‘조국 근대화의 영웅’ 박정희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인물에게 새로운 화폐의 초상 인물 선정 영광은 가당치 않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적 논란에 ‘인간’ 백범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좌편향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독선과 아집의 향연 속에 백범의 자취는 사라지고 없다.



범인凡人의 자취를 더듬으며

한국광복군훈련반원이던 선우진은 1945년 1월 31일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간다. 거기에서 백범 선생을 처음 만난다. 그리고 1949년 6월 26일 백범 선생이 서거하는 날까지 만 4년 반 동안 선생의 비서로 선생을 곁에서 보필한다.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백범 김구 비서 선우진 회고록>에는 이러한 저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인간’ 백범이 있다. 민간인 살해범, 테러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 백범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전 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백범이 있다. 단정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상황에서 단정만은 막아야 한다며 김일성과의 회담을 위해 묵묵히 38선을 넘는 백범도 있고, 정치자금을 건네는 친일 갑부에게 호통을 치며 내쫓는 백범도 있다. 경교장에서 <중국시선>을 읽은 뒤 조용히 휘호를 쓰는 백범도 있고, 북행을 만류하는 청년들에게 ‘옳은 일을 하려는데 반대하느냐’며 일갈하는 백범도 있다.

2009년은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저자는 말한다. 백범은 언제나 자신이 으뜸이 되기보다 범부를 자처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먼저 섬기고, 따뜻한 인간애와 검소, 절제를 몸소 보여준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이 책에는 이처럼 범부이기를 바랐던 인간 백범의 면면이 해방 전후의 모습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지막 독립운동



나 김구는 북을 다녀오기로 했소

1945년 12월 28일 오후, 호외를 통해 한국에 신탁통치를 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 사항이 알려지자 백범은 신탁통치 결사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반탁을 내세우던 좌익이 1946년 1월 2일 갑자기 찬탁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이승만 박사가 6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가능하다는 정읍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단정.단선 쪽으로 기운다. 급기야 1947년 11월 14일 UN총회에서 한국임시위원단의 설치를 결정하고, 북한이 그들의 입북을 거부하면서 단정.단선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다.

이에 백범은 마지막 독립운동을 감행한다. 북한의 김일성과 직접 만나 협상함으로써 분단을 막고자 한 것이다.



나 김구는 북을 다녀오기로 했소. 분단은 동족상잔의 비극밖에 부를 것이 없소. 남들이 갈라놓은 38선에 동족끼리 말도 한 번 못해보고 마는 미욱한 민족이란 말을 들을 수는 결코 없으며,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는 남겨야 될 줄 아오.



백범의 뜻은 분명했다. 동족끼리 마주 앉아 조국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곳곳에 ‘김구.이승만 타도하자’는 벽보가 나붙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자주적 통일 국가 건설을 향한 백범의 의지는 누구도 꺽지 못했다.



나 김구요

1948년 4월 19일, 백범은 아들 김신, 비서 선우진과 함께 38선을 넘는다. 그리고 4월 20일, 마침내 김일성을 만난다.



인민위원회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사뭇 긴장했지만 선생은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이었다.

“나 김구요.”

백범 선생이 손을 척 내밀자 그는 허리부터 굽혔다.

“제가 김일성입니다. 제가 불민한 탓으로 선생님께서 오시느라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서인지 백범의 남북협상의 성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분단 저지와 통일을 위한 어려운 용단이었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북한의 각본에 휘말린 성과 없는 헛걸음이었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에 앞서 분단의 공고화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한 백범 선생의 노력과 통일에의 의지는, 오늘에 있어서도 색이 바랠 수 없는 자기희생이었다고. 38선을 베고 죽는다 하더라도, 민족의 염원이던 통일을 이루고자 자신을 희생한 것이라고. 오늘날 남북 간의 대화나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백범의 북행이 선구적인 업적으로 회자되는 것은 이 같은 백범의 자기희생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까.



그날



선생님을 내가 죽였다

그러나 분단을 막기 위한 백범의 노력은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 선거,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9월 10일 북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허망하게 좌절된다. 이어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다.



백범 선생은 휘호를 쓰려는 듯 의자에 단정히 앉아계셨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때가 12시 40분을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선생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바로 지하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모 아주머니가 만둣국이 다 되어간다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위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 정신이 멍해졌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백범 선생 방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별안간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급하게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2층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래층에서 이풍식, 이국태 비서가 뛰어 올라가려는 순간, 안두희가 권총을 계단에 철커덕 떨어뜨렸다.

“선생님을 내가 죽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자는 백범의 암살이 안두희 개인의 계획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경교장 주위에 군복을 입은 괴청년들이 서성이다가 백범이 피격 당하자마자 몇 분 내에 나타난 일, 헌병들이 와 경교장 정문을 통제하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제지한 일, 군인들이 경찰의 안두희 연행을 막고 먼저 안두희를 데리고 간 일, 이 모두가 조직적인 배후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범 암살의 진상은 먼 훗날, 1995년이 되어서야 밝혀진다.



선생님의 발자국을 따라 살겠습니다

1949년 7월 5일 백범의 국민장이 열렸다. 날이 가물어 바닥이 다 드러난 청계천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집 보는 한두 사람 외엔 모두 장례행렬이 진행되는 가두로 나갔다 한다. 하루 종일 북적이던 번화가에도 인적이 끊겨 바람에 휴지 구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또한 영구 봉송 뒤 돌아오던 사람들은 여전히 수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한다.

엄항섭은 추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 우리들은 선생님의 끼치신 뜻을 받들어 선생님의 발자국을 따라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을 위하여 삶으로서 선생님의 신도되었던 아름답고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로 선생님의 위대하신 영전에 삼가 맹서합니다.



“나는 나라를 위해 왜놈이 죽일 일은 했어도 내 민족에게 죽을 일은 안 했다”며 자신을 둘러싼 암살 소문을 일축하던 백범. 그러나 백범은 ‘내 민족’에게 죽었다. 추악한 권력 쟁투에 희생되었다. 평생을 조국광복과 자주독립된 국가 건설을 위해 헌신한 대가가 결국 동포의 총탄이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백범은 민간인 살해범, 테러범, 대한민국의 건국과 무관한 인물이라는 논란에 휘말려들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대의를 버려서는 안 된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고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 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문화부와 건국60주년기념사업회가 의뢰해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등 7명이 공동집필한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이란 제목의 책자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등장하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기 위해서인지 이명박 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서 시계를 10년 전, 아니 그 훨씬 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백범의 폄하 역시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다.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던 백범이 그리도 못마땅한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상존함에도 북행을 감행, 김일성과 협상하며 어떻게든 조국의 분단을 막으려 했던 백범이 진정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일 뿐인가.

저자는 말한다. 백범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소원했던, 독재를 배격하고 자유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던, 이기적 개인주의를 버리고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이 땅의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이 책은 그러한 백범의 면면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역사를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퇴행을 보고 있으려니, 38선을 가로지르는 백범의 당당한 발걸음이 더욱 그리워진다.

2009년 1월 5일 12시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백범이 진정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자리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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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들어가며

1948년의 사진 한 장



1장 1948년, 역사의 한 페이지

북으로 북으로|제가 김일성입니다



2장 1945년 해방

허무한 해방|임시정부 당면정책|귀국 준비



3장 귀국

27년 만의 귀국|내 고향 만주 이야기|대한민국임시정부 환영대회|남들은 내게 돈을 주는데, 백범은 가져가는구먼



4장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내 정세|절대로 단정은 불가하다



5장 마지막 독립운동

밀사 파견|그래도 나는 북으로 간다|선생님은 못 가십니다



6장 역사의 한 페이지는 남겨야 될 줄 아오

이 회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최승희 무용단|평양냉면|김구와 이승만을 타도하라|내가 바로 타도 대상 김구란다|만경대 나들이와 김일성 생가|공동성명서와 4김회담|전쟁의 전조인가|북에서의 예배|북한에 남으십시오|귀로



7장 다시 남에서

남쪽에서 기다릴 운명|전국 순회



8장 그날

경교장에 울린 총성|암살자 안두희와 그 배후|백범 선생 가시다



9장 잊지 못할 선생님

경교장을 떠나서|백범 선생의 경고, 동족상잔 6?25|재민농원과 사업|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시해진상규명위원회



10장 내 인생의 회고록

만년의 회상|1941년의 갈림길|삼촌을 찾아|한국광복군|중경으로 가는 길|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와의 첫 만남|경위대 활동



마무리하며­내가 본 백범 선생

엮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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