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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의)
저자 : 키타노 타케시
출판사 : 북스코프
출판년 : 2009
ISBN : 9788996113287
책소개
「하나비」 「자토이치」 「기쿠지로의 여름」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거장의 유쾌하고 진지하며 독창적인 세상 읽기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다케시 군단’을 거느린 일본 최고의 방송인 기타노 다케시. 이 책은 젊은 시절 택시기사부터 엘리베이터 보이까지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스트립 극장에서 만담을 시작해 희극배우로서 실력을 쌓아 마침내 최고의 위치에 올랐으며, 오토바이 사고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던 기타노 다케시의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과 독특한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독설과 풍자의 대가다운 거침없는 입담으로 생사, 교육, 관계, 예법, 영화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우러나온 생각들과 기존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만의 철학이 유감없이 드러난 그의 글 속에는, 현대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공존한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고민과 다양한 경험들, 유머가 깃든 개인적인 일화들, 인생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 등 흥미롭고 맛깔스러운 이야기들 속에서 오늘날 세계적인 거장 기타노 다케시를 있게 한 그만의 독창적인 사고思考를 엿볼 수 있다.
목차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지키며 자식을 키우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잘 살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유명해지건 좋은 영화를 만들건 그 만족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너는 어느 쪽 인생을 선택하겠느냐고 스무 살의 나에게 물었다면, 괴롭든 어떻든 뜨거운 인생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인생을 한 번 더 다시 산다 해도, 역시 나는 몇억 도의 고온으로 활활 타오르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 p.27
묘한 이야기지만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근본적으로 그런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원래 아무런 색도 없다. 거기에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색을 입히는 것은 인간이다. 왕따를 당해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왕따가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하기 전에, 진짜 문제는 왕따를 당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의 무리에 속하고 속하지 못하고의 문제를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하게 느낀다는 이야기다. 어떤 어른도 아이들에게‘사람은 친구 따위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는 말해주지 않는다. --- p.41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거짓말은 그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 부모는 “무리야, 너 같은 멍청이는”, “새 글러브를 갖고 싶어” 하고 말하면 “안 돼, 우리 집은 가난해서” 그걸로 끝이었다. 멍청이와 가난뱅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거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절대 하지 않았다. (…)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라도 자식들에게 참는 것을 가르치는 게 일종의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의 차디찬 바람 앞에서 참을성 없는 인간은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p.59
내 어린 시절의 기쁨은 이런 식으로 거의 포기에 가까운 동경과 그렇게 동경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동경하는 게 있을까? 신형 휴대전화나 손에 넣지 못한 컴퓨터 게임? 요즘 세상에서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이란 좀처럼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걸핏하면 줄을 서고 싶어 하는 걸까? 라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줄을 서다니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줄을 서는 것 자체가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 p.61
자기 자식이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음을 가르치는 것은 조금도 잔인한 일이 아니다. 그게 괴롭다면, 어떻게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무기를 아이가 찾도록 도와줘라. 그걸 발견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아이가 세상에 나가 현실에 녹다운되어 상처를 입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강인한 마음을 키워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마음이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처 입고 힘들어하다 포기하면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노력해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이의 골수에 새겨주도록 하라. --- p.68
경쟁이 없는 세계에서 최고란 건 있을 수 없다. 정말로 의미 있는 일에서 오직 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는 놈이 있으니까 이기는 놈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기는 싫으니까, 자기 자식에게 지는 걸 인정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노력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느니 하면서 아이들에게 온리원이 될 수 있는 세계를 찾으라고 말한다. 경쟁을 부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최고라는 것에 연연한다. --- p.82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만약 내가 전혀 팔리지 않는 연예인인데도 아야노코지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뜨지 않았다면 만나서 입으로는 “잘됐다” 정도의 말은 하겠지만, 내심‘웃기고 있네. 어째서 나는 못 뜨고 네가 뜨는 거야’하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 타인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 것 같다. --- p.100
막상 차를 타보고 놀랐다. 포르쉐에 탔더니 포르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호 대기하는 동안에 빌딩 쇼윈도에 내가 탄 포르쉐가 비치는 것을 보고서야,“ 역시 포르쉐는 멋있구나” 하고 기뻐했을 정도다.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친구를 불러냈다. 포르쉐의 열쇠를 건네면서 부탁했다. “이 차로 고속도로를 달려줘.”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쫓아가며 내 포르쉐가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택시 조수석에 앉아서 “좋죠? 저 포르쉐, 내 거요”라고 했더니, 기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직접 안 타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바보군요, 내가 타면 포르쉐가 안 보이잖아요.” --- p.122
돈을 갖고 싶다느니 하는 당연한 말은, 똥 싸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인간이란 아무리 폼을 잡아도 한 꺼풀 벗기면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한 꺼풀의 자존심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문화’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하류’로 여기는 천박함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 p.125
우정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네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내가 꼭 도와줄게. 내가 곤란할 때는 네가 도와줘. 우리는 친구잖아.” 이런 건 우정이 아니다. (…) “네가 곤란하면 나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곤란할 때 나는 절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런 자세가 옳다. 서로에게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우정이 성립한다. --- p.127
예법이라는 것은 바꿔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다. 예법에 대해 아무리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알고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반대로 예법 따위는 몰라도 사람을 배려할 줄만 안다면, 예의에서 크게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안되는 놈들은 그런 배려가 전혀 없다. 남의 기분을 배려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다. --- p.141
진정한 예법은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남자에게 예법이란, 내가 후카미 씨와 함께 있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일종의 동경이거나, “그때 그 사람 멋있었지” 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초밥 먹는 법도 술 마시는 법도, 옛날에는 그렇게 멋있는 어른을 흉내 내면서 배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인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예법을 익히지 못한 것은 모범이 될 만한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p.156
메일 세계에서는 문자뿐만 아니라 개인의 감정 표현까지 유행하는 티셔츠 무늬처럼 획일화되어 있다. 물론 인간이 하는 일이니 완전히 획일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 나름대로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며 감정을 표현하려고 머리를 쓰고 연구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지혜도 연구도 어디까지나 휴대전화나 메일의 작은 화면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미묘한 감정과 복잡한 사고는, 보다 단순하고 알기 쉬운 감정과 사고로 바뀐다. 그런 메일로 자기 기분을 충분히 전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무서운 일이다. 돈의 노예와 마찬가지로, 메일로 다 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획일화된 기분밖에 모른다는 뜻이므로. --- p.162
인터넷에는 내 팬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사이트가 몇 개나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끔 게시판이란 걸 들여다본다. 어느 날 거기에 쓰인 이야기가 너무나 사실과 달라서 ‘사실은 이렇습니다’ 하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기타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그랬더니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글에 대해 총공격을 퍼부었다. ‘본인의 이름을 속이는 이 나쁜 놈’이니, ‘나는 다케시 씨를 잘 안다. 그 사람은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느니. 나는 완전히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고 얼른 도망쳐야 했다. --- p.168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 자신을 위해 찍고, 나중에 “너도 볼래?” 하고 물을 뿐이다. 영화감독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영화를 좋아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것에도 두 종류가 있다. 영화감독이 목적인 사람과 감독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영화감독이 목적인 사람은 영화만 찍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자기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바로 후자와 같은 타입이다. --- p.192
연예인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절묘한 타이밍’이다. 때때로 이 ‘절묘한 타이밍’을 잘 못 맞추는 사람이 있다. 운이 나쁜 것이다. 이것은 천성인 듯하다. 사람을 웃기는 데도 울리는 데도 이 절묘한 타이밍이 결정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절묘한 타이밍이 몇 분의 1초만 어긋나도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멋진 장면을 찍어도, 절묘한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추면 관객을 끌어들일 수가 없다. --- p.210
나는 어째서 영화를 찍고 있는 걸까. 대학을 중퇴하고 아사쿠사로 굴러 들어와 엘리베이터 보이를 하다가, 유명한 만담가의 제자가 되어서 만담가가 되고, 배우도 하고, 드디어 영화감독이 되었다. 정말로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나는 진품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영화를 찍게 된 뒤에도 자꾸자꾸 방향을 바꾸어왔다. 내 의지로 오래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실은 내 의지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