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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
저자 : 존 란체스터
출판사 : 서울문화사
출판년 : 20200410
ISBN : 9791164380244
책소개
우리에게 닥칠 기후 변화가 가져올 거대한 재앙!
곧 도래할 황폐화된 시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부커상 후보작에 오르며 문학성과 작품성을 전 세계에 인정받은 화제의 소설!
‘이 시대의 『1984』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난민과 불법 이민자, 국경과 장벽, 기후 변화, 자국중심주의 등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다양한 이슈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뀐다면,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소설 『더 월』은 이러한 여러 세계적 이슈를 배경으로 어쩌면 우리에게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19년 부커상 후보작에 오른 이 작품은 ‘이 시대의 『1984』’라는 평을 받으며 그 문학성과 작품성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파이낸셜타임즈」, 「이브닝스탠다드」 등의 언론에서 2019 최고의 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더 월』의 배경은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정치적 분열이 증가해 황폐해진, 지금보다 미래의 세상이다.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세상에서 한 섬나라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모든 해안선 및 국경을 둘러싸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다. 넘으려는 자와 그들을 막으려는 자가 교차하는 벽 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은 여전히 국경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목차
‘벽’ 위는 춥다. 벽에 대해 누구나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이 춥다는 말이다. 배치를 받고 그곳에 당도했을 때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도 춥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도 춥다는 것이고, 그 위에서 내려와도 기억나는 것은 춥다는 것뿐이다. 벽 위는 춥다.
그 추위를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슬레이트처럼, 다이아몬드처럼, 달처럼 한기가 느껴진다고 하면 될까. 자선(慈善)이라는 것처럼 한기가 느껴진다고 하면 될까. 그래, 이 비유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 추위는 빗대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말로도 그 추위를 대신 표현할 수 없다. 그냥 몸으로 느껴야 한다. 비할 데 없는 추위다. 추위는 단지 추위일 뿐이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추위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이런 추위는 없다. 이곳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자연 현상 같은 추위 그 자체다. 추위는 이곳의 근본적인 성질, 즉 본질이다. 그래서 여기 온 첫날 처음 벽으로 가는 순간, 추위가 온몸을 후려친다. 이런 곳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 지형적으로 연결되는 한 벽은 기본적으로 어디든 다 똑같은 벽이지만, 모시게 될 상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알다시피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렵겠지만 그 때문에 차라리 마음은 조금 홀가분할 수 있다. 벽에 관해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 pp.5-6
벽에서 맞는 아침, 새벽과 저녁과 밤은 시의 시간이다. 하늘콘크리트바다바람. 오후는 산문의 시간이다. 1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벽. 200미터마다 서 있는 경계병. 5만 병력이 수시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또 다른 5만 병력이 교대조로 대기 중이니까 10만 병력이 주야로 경계 근무를 선다. 게다가 2주일은 당번, 2주일은 비번이다. 경계병 중 절반은 벽을 떠나 휴가 중이거나 훈련 중이거나 2주일 교대 근무를 위해 대기 중이다. 따라서 20만 현역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다. 지원 인력과 보조 인력에 장교와 군무원을 더하고, 해안 경비대와 공군과 해군에 병가를 낸 병력 등등을 더하면, 벽을 방어하는 병력이 30만을 넘어선다. 그래서 모두가 열외 없이 벽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것이 규칙이다.
다만 번식자는 열외다. 이건 역설이다. 벽을 지키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번식할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벽에 배치시킬 병력이 충분하도록 말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병력 부족이 머지않아서 그런지 부족한 병력을 메꾸기 위해 복무 기간을 2년 반이나 3년으로 더 길게 연장시키자는 소문이 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끔찍하게 변한 탓에 번식을 꺼린다. 그래서 번식할 경우 벽을 떠나도 된다는 우대 조치가 생겼다. 벽을 떠나고 싶다면 번식하는 거다. 언제든 벽 복무를 해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랴? 그때 가면 상대가 전멸해서 벽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이들도 때가 되면 번식할 수 있으니 그렇게 벽을 떠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 종의 수명도 연장하게 된다. 떠나고 싶다면 번식하라. 이게 표어다.
사람들이 왜 번식을 원치 않을까? 대격변 이후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파괴했기에 인구 증감을 조절할 권리가 없다. 번식을 원치 않는 사람을 선택자라 부른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류를 우리가 전부 다 먹여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대부분 기아와 수난을 겪으며 사망과 절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인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여기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기아와 수난을 겪고 있지 않지만,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겪고 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양하다.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이게 한 가지 답변이다.
--- pp.40-41
컴컴한 동굴 같은 마음속 어딘가에 사는 괴물은 이렇게 속삭인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만약 상대가 공격해 온다면, 만약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면, 만약 혹독하게 훈련받은 대로 전투를 해야 한다면, 즉 악몽에서나 봤을 법한 그냥 아주 조금 궁금하기도 한 전투, 그래서 죽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를 전투를 해야 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게, 추위와 굶주림과 지겨움과 피곤함 말고 다른 걸 느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매일 아침 소총에 대검을 꽂아 휘두르면 신나지 않을까? 최악의 상황이 발발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여전히 나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