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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는 영원히
저자 : 황모과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판년 : 2023
ISBN : 9791168127166
책소개
SF 작가 황모과가 그린, 너무나 특별해서 이토록 평범한 아이들이 꿈꾸는 교실 혁명!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대상 수상작 〈모멘트 아케이드〉로 데뷔하여 MBC 〈시네마틱드라마 SF8〉로 제작된 단편소설 〈증강 콩깍지〉, 여아 선별 임신중지로 사라진 여성들을 기억하는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등을 쓴 황모과의 신작 『10초는 영원히』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학교, 가식적인 선생님과 이상하고 수상한 개성 만점 친구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나’는 언제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친구들만큼이나 엉뚱한 아이 ‘류비’가 전학 온다. 동체 시력이 나쁜 류비는 움직이는 사물이나 사람을 볼 수 없지만, 10초 이상 가만히 있는 것은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나’와 같은 사람을.
목차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다고 이런 감옥에 살고 있나? 물론 학교 밖에 나간다고 감옥이 아닐 리 없다. 그러니 졸업 후 개과천선할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삐뚤어진 수감자는 나뿐만이 아니다. 선생님들도 참 불쌍하다. 우리 대신 모범수를 연기하는 가식적인 교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분들도 교사를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 pp.5~6
류비는 움직임이 멎은 세상만을 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공간, 류비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면 정적을 두른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조용히 책에 집중하는 사람, 또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 혹은 몸을 격렬하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 류비의 시야로 들어온다. 줄곧 무인의 세계 속에 살던 류비는 그 순간 누군가를 환대한다. 세상이 조용해지며 류비의 세계는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 p.21
“근데 그거 알아? 사람의 눈동자를 10초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면 사랑에 빠질 확률이 아주 높아진대. 그러니까 내 눈에 자기 얼굴을 제대로 맺히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나랑 사랑에 빠져버리는 거야.”
--- p.22
나는 단 한 순간도 긴장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내게 말했다. 게으르니까 그 모양이라고. 아니거든? 나는 이 모양이라 게으르게 보일 뿐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게으른 애가 뻔뻔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인과가 반대인 말로 나를 모욕했다.
--- p.32
최대한 느리고 낮게 호흡했다. 눈도 천천히 깜박였다. 교실의 소음은 그대로였지만 시간만은 멈춘 듯했다. 사물이 되어, 늙은 고양이가 되어, 꼼짝도 안 하는 돌이 되어 류비 앞에 섰다. 이제 누가 내게 게으르다고 욕을 퍼부어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멈췄다. 깨어 있는 동안, 잠들지 않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10초였다.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보낸 10초였다. 마치 영원과도 가까운 10초가 흘렀다.
--- pp.36~37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잠이 많다는 사실도 참 좋은 일 같았다. 류비의 세계에 오래 머물 수 있으니까. 나처럼 느리게 사는 이의 속도가 누군가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잠이 많고 행동이 굼뜨고 일 처리가 조금 느린 것 때문에 핀잔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뿌듯하게까지 느껴졌다. 바삐 움직이는 다른 사람의 손을 끌어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서두르면 당신은 류비의 세계엔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