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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장편소설)
저자 : 셰한 카루나틸라카
출판사 : 인플루엔셜
출판년 : 20230831
ISBN : 9791168341289
책소개
삶과 죽음,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저승 누아르’
심사위원 만장일치 2022년 부커상 수상작!
*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 올해의 책
* 전 세계 25개국 번역 출판 계약
“나는 언젠가, 내 조국의 전쟁과 분열을 다룬 이 소설을
서점의 판타지 코너에서나 보게 될 날을 소망한다.”
_셰한 카루나틸라카
2022년 부커상 시상식.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클레어 키건 등 쟁쟁한 후보들이 오른 가운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낯선 이름이 호명된다. 스리랑카의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의 『말리의 일곱 개의 달』, 그것도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이라는 소식에 전 세계 출판계가 들썩였다.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형이상학적 저승 누아르. 독자를 세계의 어두운 심장으로 데려가는 진지한 철학적 유희”라는 부커상의 찬사에 대비되는, 작가의 담담하고 차분한 수상 소감 또한 주목받았다. 자신의 조국을 배경으로 한 ‘이 모든 이야기가 나중에는 판타지 소설로 읽힐 날을 소망한다’는 그의 한마디는 스리랑카의 고통이 끝나지 않았음을, 어딘가에서는 역사가 저버린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을 은유했다.
1990년 스리랑카 콜롬보, 자신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사진작가와 억울한 유령들이 펼치는 ‘이상한’ 이야기를 담은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영국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수많은 스리랑카의 목소리들이 그랬듯 조용히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변이 일어났다. 영미권 주요 언론이 이 책을 ‘2022년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소설’로 꼽으며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것.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주요 언어권에서 순차적으로 번역 출판 계약된 이 책은 부커상 수상과 함께 더욱 유명해질 준비를 마친 상태다. 25년 넘게 이어진 내전과 독재로 얼룩진 스리랑카의 어둠이, 목소리를 빼앗긴 채 사라진 억울한 유령들의 외침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한국어판 『말리의 일곱 개의 달』에는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가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이 특별 수록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그러나 외세의 침략과 내전, 독재를 두루 겪어내야 했던 두 나라에 대한 작가의 역사 인식을 읽을 수 있고, 그럼에도 끝끝내 품을 수밖에 없는 아픈 희망도 엿볼 수 있다.
목차
네게 명함이 있다면,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말리 알메이다
사진작가, 도박꾼, 걸레.
묘비가 있다면,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말린다 앨버트 카발라나
1955-1990
하지만 네게는 둘 다 없다. 이 도박판에 더 걸 칩도 없다. 그리고 이제 너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다. 죽음 뒤에 삶이 있는가? 그것은 어떠한가?
--- p.20
“성함 압니다, 말리 선생님.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절대 빛으로 가지 마시고.”
너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 통로로 향한다. 이번에는 내려간다. 화난 라니 박사의 가성과, 모세와 근육질 히맨의 우렁찬 바리톤 고함이 메아리로 멀어진다.
“사후조차 대중의 어리석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소년은 말한다. “생전의 기억을 잊고 무슨 빛을 향해 가라고 떠밀지요. 전부 압제자의 부르주아 통치술입니다. 불평등조차 무슨 큰 그림의 일부라고 합니다. 거기 저항해 들고일어나지 못하도록.”
--- p.33
그러나 도박쟁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신이 없는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살인자는 주사위 놀음이다. 다른 아무것도 아닌, 그저 정글 같은 불운.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그것.
카메라가 진흙으로 가득 찬다. 너는 카메라를 마구 흔들어보고 목에 걸려 있는 것들을 당겨본다. 다시 니콘을 얼굴에 갖다 대니 이제 갈색이 아니다. 깨진 유리와 번진 색깔이 보인다. 킬리노치치 폭격 직후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 다친 개, 피 흘리는 남자, 어머니와 아이가 보인다. 너는 허물어진 건물 꼭대기에서 이 사진들을 찍었다.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니 배에 난 구멍이 차츰 커져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다. 네가 상자에 보관한 사진 중 가장 잔혹한 장면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네겐 가장 슬프다.
--- p.69
라니 박사의 음성이 검은 상념을 뚫고 들어온다. “네 영혼은 손상당했다고 하는구나. 중간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봐요, 아줌마. 정말 감사합니다만.”
“난 네 아줌마가 아니야. 여기 계속 있으면, 넌 먹힐 거다.”
“누구한테?”
“세나 동무는 마하칼리를 위해 일하고 있어. 그는 자신이 이용당한 그대로 널 이용하고 있다. 중간계에는 절망에서 힘을 빨아들이는 식시귀와 악마가 가득해. 빼앗기면 안 된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돼.”
“세나는 산 사람에게 속삭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어요. 당신이 그렇게 해줄 수 있습니까?”
--- p.218
“말했잖아. 하트 10은 우리 아파트 전화번호 옆에 그려져 있었다고.”
“그게 무슨 뜻일까?”
“그냥 우리 사진이겠지.” 재키가 말한다. “아니면 그냥 네 사진만 들어 있거나.”
딜런은 주소록을 재키에게 받아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다.
“네 이름은 여기 따로 있어. 재키라고. 그리고 괄호 안에 사촌 딜런이라는 이름도 적혀 있군. 이 주소록은 얼마나 된 거지?”
한때 가슴이 있던 자리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팔이 쑤신다. ‘10점 만점’이라는 제목의 봉투 안에 든 모든 사진이 떠오른다. 남이 훔칠 가치는 가장 적으나 그 어떤 사진보다 더 보호해야 할 사진, 네게 그 사진들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