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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천천히, 스미는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저자 : G K 체스터튼|도로시 세이어즈|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로버트 바이런|리처드 라이트|마저리
출판사 : 봄날의책
출판년 : 2016
ISBN : 9791186372074

책소개

영미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들을 채집한 책.

『천천히, 스미는』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창작된 아름다운 영어 산문들을 채집한 책이다. 모두 25명의 작가의 작품 32편을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작가의 개인적, 사회적 기억, 자연과 사물, 인간에 대한 정확한 관찰, 그리고 작가의 눈을 통과한 개성 넘치는 표현들은 그 자체로도 빛나고 도드라질 뿐 아니라, 특히 전체 글의 흐름 속에서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의 《녹스빌: 1915년 여름》, 조지 오웰의 《마라케시》, 알도 레오폴드의 글들, 그리고 토머스 드 퀸시의 《어린 시절의 고통》 등. 그중 드 퀸시의 산문은 인간의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듯한 압도적인 전율을, 오웰의 산문은 인간에 대한 성실한 관찰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책에 담긴 작품들은 3분의 2 이상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로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산문 작품들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모든 능력이 활발하게 깨어 즐거움의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든다. 또 좋은 에세이는 첫 문장부터 우리를 사로잡아 삶을 더 강렬해진 형태의 무아지경으로 빠뜨린다.”
- 버지니아 울프

1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현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창작된 아름다운 영어 산문들을 채집한 이 책은 지금, 이곳의 우리가 보아도 공감이 갈 만한, 어쩌면 우리보다 더 넓고 깊게 사물과 인간을 찬찬히, 오래도록 들여다본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했다. 바로 이들의 이 작품들.

잠과 깸(F. 스콧 피츠제럴드) 녹스빌: 1915년 여름(제임스 에이지) 오버롤스 작업복(제임스 에이지) 나방의 죽음(버지니아 울프) 어린 시절의 고통(토머스 드 퀸시) 그의 이름은 피트였습니다(윌리엄 포크너) 윌리엄과 메리(맥스 비어봄) 삶의 리듬(앨리스 메이넬) 철새들의 행진(존 버로스)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조지 오웰) 산처럼 생각하기(알도 레오폴드) 내가 바람이라면(알도 레오폴드) 소나무의 죽음(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돼지 빚을 갚다(마저리 키넌 롤링스) 구불구불한 길(힐레어 벨록) 마라케시(조지 오웰) 야간 공습 중에 평화를 생각하다(버지니아 울프) 용서(도로시 세이어즈) 살아 있는 짐 크로우의 윤리(리처드 라이트) 어떤 질문(리처드 라이트) 서문(윌리엄 포크너 )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홀브룩 잭슨) 읽을 것이냐, 읽지 않을 것이냐(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여백(케네스 그레이엄) 색깔 없는 것은 1페니, 있는 것은 2페니(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장난감 극장( G. K. 체스터튼) 제임스 서버의 은밀한 인생(제임스 서버) 나의 이탈리아어 독학기(마크 트웨인) 마슈하드 가는 길(로버트 바이런) 덜보로우 타운(찰스 디킨스) 베로나(찰스 디킨스) 걷는 여자(메리 헌터 오스틴)

2 기억의 기록, 관찰의 기록, 사색의 기록
작가의 개인적ㆍ사회적 기억, 자연과 사물, 인간에 대한 정확한 관찰, 그리고 작가의 눈을 통과해 개성 넘치는 표현을 얻은 글들은 정확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대목들로 넘친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남김없이. 그들은 자체로도 빛나고 도드라질 뿐 아니라, 특히 전체 글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가치를, 멋을 발한다.
가령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의 [녹스빌: 1915년 여름], 조지 오웰의 [마라케시], 알도 레오폴드의 글들, 그리고 토머스 드 퀸시의 [어린 시절의 고통] 등. 그중 드 퀸시의 산문은 인간의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듯한 압도적인 전율을, 오웰의 산문은 인간에 대한 성실한 관찰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에이지의 글은 “소리로 이루어진 글을 쓰겠다”며 앉은 자리에서 50분 만에 완성했다는데, 그의 표현 그대로 내내 고막을 홀렸다.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 보낸, 마지막 여름의 소리를 담은 글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나니 더욱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3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한곳에 모여 독특한 화음을 이루었다

ㆍ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생긴 생활과 공간과 생태의 변화를 다룬 글들, 가령 존 버로스의 [철새들의 행진], 힐레어 벨록의 [구불구불한 길], 알도 레오폴드의 [산처럼 생각하기] 같은 글들은 지금, 이곳의 문제들, 현실들과 거의 구분 없이 겹쳐 읽힌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에 대한 절제된 애도의 글이라 할 만하다.

ㆍ 지금의 세상을 형성한 폭력과 차별 그리고 공포에 대한 당대의 체험이 녹아든 글들, 가령 조지 오웰의 [마라케시], 버지니아 울프의 [야간 공습 중에 평화를 생각하다], 리처드 라이트의 [살아 있는 짐 크로우의 윤리] 같은 글들은 불평등과 갈등, 불안과 초조를 선명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그 현상들에 대해, 그 감정들에 대해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찰하는 작가의 모습까지 은연중 드러낸다.

ㆍ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들 즉 상실, 죽음, 고통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산문들, 가령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피츠제럴드의 [잠과 깸], 토머스 드 퀸시의 [어린 시절의 고통] 등이 한 축을 이룬다. 또 작가들의 작품이 싹튼 토양을 엿볼 수 있는 글들, 가령 찰스 디킨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리처드 라이트, 윌리엄 포크너의 글들은 그들의 이후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덧붙임
모두 25명의 작가의 작품 32편을 수록했는데, 그중 3분의 2 이상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엮은이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제임스 에이지의 [녹스빌: 1915년 여름]과 찰스 디킨스의 [덜보로우 타운]을 들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과거도 없이 태어난 이 세상에 기대하는 것도 거의 없었고 불멸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어요. 먹이(애정으로-자신이 이해도 못하고 대답도 못하는 말을 하지만 친숙한 목소리와 손길로-주는 먹이는 무엇이든, 얼마나 조금이든 상관하지 않았지요)와 달려갈 땅, 숨 쉴 공기, 철따라 찾아오는 태양과 비, 그리고 피트가 땅을 알고 태양을 느끼기 오래 전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꿩 무리면 충분했습니다. 피트는 직접 꿩 냄새를 맡기 전부터 충실하고 충직한 사냥개 혈통의 조상들로부터 그 냄새를 알고 있었지요. 그게 피트가 원하는 전부였습니다.
윌리엄 포크너, [그의 이름은 피트였습니다](59쪽)

윌리엄의 동굴에서 끌려 나와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책들, 메리의 정원에서 온 환한 꽃들. 그 서까래와 계단, 타일이 여전히 있다. 먼지와 거미줄과 어둠에도 변함없이 이 문 너머에, 나와 너무도 가까운 그곳에. 마법에라도 걸린 듯 문 경첩이 천천히 돌아가며 열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아마 들어가서는 안 되리라. 쳐다봐서도 안 되리라. 그곳에 의미를 주는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도, 그 모든 것을 빼앗겼는데도 남아 있는 사물들을 보고 싶지 않으리라. 하지만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 물건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과거의 그 무엇도 그들을 다시 찾아와 서성이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한단 말인가? 과거의 무엇이, 언젠가, 어쩌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너무 적다. 떠난 이들이 아마도 사랑했을 그 물건들에 어떻게 마음이 부드러워지지 않겠는가?
맥스 비어봄, [윌리엄과 메리](77-78쪽)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주나 지난 해 마음이 겪었던 것을 지금은 겪지 않으나 다음 주나 다음 해에 다시 겪을 것이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병에도 운율이 있다. 점점 짧아지는 주기로 죽음을 향해 거리를 좁혀가고 점점 길어지는 주기로 회복을 향해 멀어져간다. 하나의 원인에서 생긴 슬픔을 어제도 참지 못했고 내일도 참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원인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견딜 만하다. 심지어 해결되지 않은 무거운 근심조차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허락한다. 후회도 머물지 않는다. 되돌아온다.
앨리스 메이넬, [삶의 리듬](81쪽)

어린 시절 봄이나 가을에 나그네비둘기들이 벌이던 축제와 행진을 보며 자라고 나이 든 사람치고 그 광경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삶에서 가장 기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너무도 풍요롭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장대한 동물적 삶의 광경이자 하늘과 야생에서 펼쳐지는 너무도 비옥한 광경이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나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새된 소리로 울부짖는 이 푸르고 하얀 새 떼로 들판과 숲이 하루나 이틀쯤 뒤덮이는 광경을 보았다. 그 무렵이면 가끔씩 하늘이 비둘기 떼로 변하는 듯 보이곤 했다.
존 버로스, [철새들의 행진](91쪽)

이 무렵이면 오랜 단식을 마친 두꺼비는 사순절이 끝나갈 무렵의 앵글로 가톨릭교도들처럼 대단히 종교적인 인상을 풍긴다. 움직임은 힘이 없지만 절도 있고 몸은 쪼그라든 반면 눈은 기이하게 커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때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사실을 알게 되는데 바로 두꺼비가 살아 있는 그 어느 생명체보다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눈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두꺼비 눈은 금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인장 반지에 가끔 박히는, 아마 금록석이라 불리는 금색 준보석 같다.
조지 오웰,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94-95쪽)

봄을 비롯한 계절의 변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일이 위험한가?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족쇄에 묶여 신음하거나, 어쨌든 신음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래하는 검은 새나 노랗게 물든 시월의 느릅나무처럼 돈 한 푼 들지 않을뿐더러 좌파 신문 편집장들이 계급 관점이라 부를 만한 게 없는 자연 현상 덕택에 삶이 종종 살 만하다고 말한다면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조지 오웰,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97쪽)

우리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나무와 물고기, 나비 그리고 두꺼비 같은 것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미래가 조금 더 가능해질 것이며, 강철과 콘크리트만 떠받들라고 가르친다면 우리 인류는 남아도는 에너지를 서로 증오하고 지도자를 숭배하는 일에 쏟아붓게 되리라 나는 믿는다.
조지 오웰,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99쪽)

구름에서 울음소리가 멀리서 개 짖는 소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온다. 온 세상이 궁금해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이 낯설다. 곧 소리가 커진다. 기러기 울음소리가 보이지 않지만 다가온다.
기러기 떼가 낮은 구름에서 나타난다. 낡고 해진 새들의 깃발이 곤두박질치다 솟구치고, 위로 아래로 나부끼다가, 함께 또는 따로 펄럭이며 전진한다. 키질하는 새들의 날개 하나하나에 바람이 다정하게 엉긴다. 기러기 떼가 먼 하늘의 희미한 얼룩이 될 무렵 마지막 울음소리가, 여름을 보내는 영결 나팔소리가 들린다.
통나무 뒤가 따뜻해진다. 바람이 기러기 떼와 함께 떠났으니. 나도 갈 텐데-내가 바람이라면.
알도 레오폴드, [11월: 내가 바람이라면](107-108쪽)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던 하늘은 앞으로 이백 년간 빈다. 소나무는 이제 재목이 되었다. 소나무를 쓰러뜨린 사람은 하늘을 파괴했다. 봄이 되어 머스케타퀴드 강둑을 다시 찾아온 물수리는 앉아서 쉴, 익숙한 나뭇가지를 찾아 빙빙 맴돌아도 못 찾을 테고 매는 새끼들을 지켜줄 만큼 우뚝 솟았던 소나무들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이백 년에 걸쳐 차츰 차츰 하늘을 향해 자라며 완성된 식물 하나가 오늘 오후에 사라졌다. 올해 일월 추위가 풀릴 무렵까지도 소나무 우듬지가 어린 가지를 펼치며 다가오는 여름을 예고했는데 말이다. 왜 마을 종은 애도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는가? 애도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거리에, 숲길에 애도 행렬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람쥐는 다른 나무로 뛰어갔다. 매는 빙빙 돌며 점점 멀어져 새로운 둥지에 자리를 잡았지만 벌목꾼은 그곳에도 도끼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나무의 죽음](111-112쪽)

사람들은 갈색 얼굴을 지녔다. 게다가 너무 많다. 그들이 진짜 당신과 같은 인간인가?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나? 아니면 벌이나 산호충 개체들처럼 서로 구분되지 않는 갈색 물건에 불과한가? 그들은 흙에서 나와 몇 년간 땀 흘리고 굶주리다가 묘지의 이름 없는 흙더미로 되돌아가며 아무도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무덤마저도 곧 희미해져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버린다.
조지 오웰, [마라케시](140쪽)

육체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는 일이 중요할수록 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흰 피부는 언제든 꽤 잘 보이는 편이다. 북유럽에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아마 한 번 더 쳐다보게 될 것이다. 더운 나라에서는, 지브롤터 남쪽이나 수에즈 동쪽에서는 어디를 가나 일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내가 거듭 경험한 일이다. 열대 지방에서 우리 눈은 사람만 빼고 모든 풍경을 흡수하는 것 같다. 메마른 토양과 손바닥선인장, 야자나무, 먼 산을 빨아들이지만 작은 밭을 가는 농부는 노상 보지 못한다. 농부는 땅과 같은 색깔일뿐더러 다른 걸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덜 흥미롭다.
조지 오웰, [마라케시](143쪽)

그녀는 나이 든 여자라는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짐을 나르는 짐승이라 자리 말이다. 한 가족이 길을 갈 때 보면 아버지와 다 큰 아들은 당나귀를 타고 앞서가는데 나이 든 여인이 짐을 짊어지고 걸어서 그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 흔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주 동안 늘 거의 같은 시간에 장작을 짊어진 노파들이 줄지어 우리 집 앞을 지났고 내 망막에 그 모습이 맺히기는 했지만 내가 그들을 봤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장작이 지나간다. 그것이 내가 본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그 뒤를 따라가다가 장작더미가 이상하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바람에 장작더미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우연히 시선이 갔을 뿐이다.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흙 빛깔과 똑같은 가여운 늙은 몸을 주목하게 됐다. 짓누르는 무게 아래 허리가 꺾인,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을.
조지 오웰, [마라케시](145-146쪽)

그 기쁨의 꾸러미에 눈이 멀어 조금이라도 더 보고 더 만지려 조바심치며 뜸을 들이는 아이의 망설임에 비하면 뷔리당의 당나귀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볼 만큼 보고 만질 만큼 만진 아이는 드디어 연극을 선택하고 인내심이 바닥 난 점원은 나머지를 회색 서류함에 쓸어 담는다. 아이는 다시 밖으로 나온다. 저녁 식사 시간에 조금 늦었다. 푸르스름한 겨울 저녁 하늘에 가로등이 불빛을 터트린다. 〈방앗간 주인〉이나 〈해적〉 같은 연극을 옆구리에 끼고 달려가는 아이의 발걸음이 얼마나 경쾌했던지! 그 환한 웃음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찼던지! 그 웃음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들린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색깔 없는 것은 1페니, 있는 것은 2페니](192쪽)

사라져버렸다. 아름다운 산사나무 두 그루도 산울타리도 잔디도 그 모든 미나리아재비와 데이지도 덜컹대는 냉혹한 철로에 자리를 내주었다. 역 너머로는 흉측한 검은 터널 괴물이 그 모두를 집어삼키고도 아직도 허기진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나를 싣고 떠났던 마차는 ‘팀슨의 파란 눈 아가씨’라는 경쾌한 이름으로 불렸고 윗길에 있던 팀슨 승합마차 회사에 속해 있었지만 나를 싣고 되돌아온 기관차는 97번이라는 엄숙한 이름으로 불리고 S.E.R.(영국 남부 철도)에 속해 있으며 지금 황폐한 바닥에 재와 뜨거운 물을 토해내고 있다.
찰스 디킨스, [덜보로우 타운](262-263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1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버지니아 울프, [나방의 죽음] 17
F. 스콧 피츠제럴드, [잠과 깸] 23
제임스 에이지, [녹스빌: 1915년 여름] 33
제임스 에이지, [오버롤스 작업복] 42
토머스 드 퀸시, [어린 시절의 고통] 48
윌리엄 포크너, [그의 이름은 피트였습니다] 59
맥스 비어봄, [윌리엄과 메리] 63
앨리스 메이넬, [삶의 리듬] 81

2 내가 바람이라면
존 버로스, [철새들의 행진] 89
조지 오웰,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94
알도 레오폴드, [산처럼 생각하기] 102
알도 레오폴드, [내가 바람이라면] 107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나무의 죽음] 109
마저리 키넌 롤링스, [돼지 빚을 갚다] 114
힐레어 벨록, [구불구불한 길] 130

3 어떤 질문
조지 오웰, [마라케시] 139
버지니아 울프, [야간 공습 중에 평화를 생각하다] 149
도로시 세이어즈, [용서] 157
리처드 라이트, [살아 있는 짐 크로우의 윤리] 167
리처드 라이트, [어떤 질문] 177
윌리엄 포크너, [서문] 182

4 소소하고 은밀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색깔 없는 것은 1페니, 있는 것은 2페니] 189
G. K. 체스터튼, [장난감 극장] 201
제임스 서버, [제임스 서버의 은밀한 인생] 208
홀브룩 잭슨,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 220
오스카 와일드, [읽을 것이냐, 읽지 않을 것이냐] 231
케네스 그레이엄, [행복한 여백] 235

5 길 위에서
마크 트웨인, [나의 이탈리아어 독학기] 243
로버트 바이런, [마슈하드 가는 길] 255
찰스 디킨스, [덜보로우 타운] 261
찰스 디킨스, [베로나] 279
메리 헌터 오스틴, [걷는 여인] 286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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