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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저자 : 미시마 유키오
출판사 : 예문아카이브
출판년 : 2016
ISBN : 9791187749042
책소개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금각사』 「우국」 저자
미시마 유키오의 48년 간 숨겨진 괴작!
“나는 목숨 따위 아깝지 않아요. 내 목숨은 팔려고 내놓은 것, 어떻게 되든 불만 없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미시마 유키오의
48년간 잠들어 있던 숨겨진 괴작이 발견되다!
작가가 작정하고 쓴 좌충우돌 엔터테인먼트 소설
『금각사』『가면의 고백』「우국」 등으로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고 할복자살을 하는 등,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문단의 문제아 미시마 유키오의 장편소설 『목숨을 팝니다』가 일본 문학 번역의 대가 김난주 번역가의 손길을 거쳐 국내 독자들을 찾는다. 이 작품은 자살에 실패한 뒤, 자신의 목숨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남자 야마다 하니오의 해프닝과 로맨스, 그리고 반전이 계속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기발한 소재, 가벼운 터치와 스릴 넘치는 전개 등 미시마 유키오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소 이미지가 다른 이 소설은 그동안 미시마 유키오의 팬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이었다. 1968년 「플레이보이」지 연재 이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본의 대표 서점인 ‘기노쿠니야’에선 2015년 연간 판매량 1위에 오르는 등 일본에서 2015년을 기점으로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재조명받고 있다.
목차
목숨을 판다는 당신의 광고를 봤을 때부터, 그 어쩌고 꽃무지 하는 약을 시험해 보려면 이 사람이 안성맞춤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러니까 당신, 40만 엔에 내게 목숨 팔 생각 없어요? 10만 엔은 소개비로 내가 갖고, 남은 40만 엔을 당신이 죽기 전에 내가 책임지고 당신의 가족이든 친척에게 보내 줄게요.” “난 가족도 친척도 없는데요.” “그럼 목숨 팔아 번 돈은 어떻게 해요” “당신이 그 돈으로 처치 곤란한 큰 동물, 예를 들어 악어나 고릴라 같은 걸 사세요. 그리고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 악어와 고릴라와 함께 사는 겁니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은 그런 동물밖에 없을 것 같으니 말이죠. 핸드백 가죽용으로 팔아넘기는 짓은 절대 안 됩니다. 매일 먹이를 주고, 운동도 시키고, 성심성의껏 사육해야 하죠. 그리고 그 악어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면 됩니다.” “당신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죠.” --- p.80
전철표를 사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또 이상한 감각이 머리에 되살아났다. 살풍경한 콘크리트 계단이 한없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하니오는 열심히 그 계단을 오른다. 아무리 올라도 플랫폼에 도착하지 않는다. 오르면 오를수록 계단 수가 점점 많아진다. 저 위에는 분명히 기적 소리가 울리고, 전철이 오가고,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기척이 있는데, 자신이 오르고 있는 계단과 그 장면이 도무지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미 죽은 인간이다. 도덕심과 감정,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죽은 여자의 사랑이라는 무거운 짐이 머리에 들러붙어 있다. 그에게 타인은 바퀴벌레와 똑같은 존재인데! --- p.91~92
자신은 언제나 이렇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산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도쿄 애드에 다니던 시절, 모던하고 밝은 오피스에서 다들 유행하는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손을 더럽히지 않는 일만 하던 나날이 훨씬 더 죽음에 가깝지 않았을까. 지금 죽기로 작정한 인간이, 죽음 자체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미래에 어떤 기대를 품고 브랜디를 홀짝이는 모습 역시 모순에 차 있지 않을까. --- p.107~108
하니오는 ‘이유’를 지닌 모든 인간을 경멸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었다. 무의미는 절대 히피족이 생각하는 형태로 인간을 덮치지 않는다. 그것은 신문의 활자가 바퀴벌레로 변하는, 그런 형태로 찾아온다. --- p.207
비참함과 고독, 행복과 성공이 저 하늘 아래에서는 다 똑같다. 한 꺼풀 벗겨내면 똑같이 별 돋은 하늘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인생의 무의미함은 저 하늘과 똑바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하니오는 이 싸구려 여관에 몸을 숨긴 ‘별나라 왕자님’인지도 모른다. --- p.241
아마 하니오 같은 남자는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도 또 다른 ‘동족’을 만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고독한 인간은 개처럼 상대의 고독한 냄새를 잘 맡는다. 그가 절대 건전하고 실용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레이코는 막 잠에서 깨어나 몽롱한 눈으로도 이내 꿰뚫어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인간에게 자신의 둥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습성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전에 살던 단출한 아파트에서 ‘목숨을 파는’ 장사를 시작해 성공을 거둔 끝에 잠시 쉬면서 호사스럽게 지낼 장소를 찾고 있던 하니오에게 이 집은 그야말로 최고의 집이었다. 낮은 천장부터가 왠지 장엄한 무덤 같은 인상의 집이다. “이곳에서 한동안 심신의 피로를 풀고 싶군.” 하니오가 거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왜 피곤한데요?” “왜는, 아무튼 피곤하군.” “인생에 지쳤다, 사는 것에 지쳤다, 그런 평범한 뜻은 아니겠지요.” “그게 아니면? 달리 지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레이코는 슬쩍 코웃음을 쳤다. “당신, 이미 알고 있잖아요. 죽는 것에 지쳤다는 걸.” --- p.196~197
혼자였다. 별 돋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찰서 앞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경찰을 상대하는 술집의 빨간 초롱이 두세 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니오의 가슴에 밤이 들러붙었다. 밤이 그의 얼굴에 납죽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경찰서 현관 앞의 돌계단 두세 개를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하니오는 바지 주머니에서 꺾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울고 싶었다. 목구멍이 울먹울먹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이 부옇게 번져 여러 개가 하나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