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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반생기
문주반생기
저자 : 양주동
출판사 : 최측의농간
출판년 : 2017
ISBN : 9791188672011

책소개

국문학자이자 시인, 비평가인 양주동의 산문집. 최측의 농간은 저자가 재미로 읽으라고 써 놓은 원고를 촘촘히 따라가며 읽고 정리해 출간하기 위하여 공구서만 수십 권, 단행본만도 수백 권을 참조하였다. 한글세대가 보다 편히 읽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판본을 펴내기 위하여 이번 출간을 기획하였다.



난해한 초판(영인본)의 원고를 전면개작의 수준으로 풀어놓을 경우 당대의 분위기, 저자 특유의 개성적인 글쓰기 방식 등이 소실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 '한글세대를 위한'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다소 난해.난삽하고 복잡해지더라도 저자의 의중을 최대한 존중하는 가운데 당대의 '글/말'소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민하였으며 그 고민의 결과, 원고를 해치지 않고 원고를 풀어 보충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초판에 없던 1,996개의 각주를 작성해 법고창신의 절충을 시도하였다.



<문주반생기>는 단순히 술 먹고 분탕질 치던 날들에 대한 한 식자의 회고록이 아니며 격동의 시대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고난과 역경을 풍류와 해학 속에서 긍정할 줄 알았던 한 지식인의 고독한 발걸음의 기록이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미디어 소개]

☞ 한겨례 2017년 12월 21일자 기사 바로가기

☞ 새전북신문 2017년 12월 18일자 기사 바로가기

☞ 광주매일신문 2017년 12월 17일자 기사 바로가기

☞ 오마이뉴스 2017년 12월 17일자 기사 바로가기

☞ 한겨례 2017년 12월 15일자 기사 바로가기

☞ 서울신문 2017년 12월 15일자 기사 바로가기

☞ 뉴스1 2017년 11월 29일자 기사 바로가기

☞ 시사매거진 2017년 12월 17일 기사 바로가기

☞ 전북일보 문학소개면 2018년 1월 12일 기사 바로가기



기념비가 된 글쓰기, 『문주반생기』라는 이름의 특급열차 - 요(要)



저자가 재미로 읽으라고 써 놓은 원고를 촘촘히 따라가며 읽고 정리해 출간하기 위하여 공구서만 수십 권, 단행본만도 수백 권을 참조하였다.

충격적 경험으로 남은, 최초 완독의 순간으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 놀라운 텍스트의 전문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을 오래 품어왔던 우리 최측의농간은, 우리와 같은 한글세대가 보다 편히 읽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판본의 『문주반생기』를 펴내기 위하여 이번 출간을 기획하였다.

난해한 초판(영인본)의 원고를 전면개작의 수준으로 풀어놓을 경우 당대의 분위기, 저자 특유의 개성적인 글쓰기 방식 등이 소실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 최측의농간에서는 ‘한글세대를 위한’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다소 난해.난삽하고 복잡해지더라도 저자의 의중을 최대한 존중하는 가운데 당대의 ‘글/말’소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민하였으며 그 고민의 결과, 원고를 해치지 않고 원고를 풀어 보충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초판에 없던 1,996개의 각주를 작성해 법고창신의 절충을 시도하였다. 최측의농간에서 작성해놓은 주석을 벗 삼아 촘촘한 저자의 문로(文路)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 『문주반생기』는 단순히 술 먹고 분탕질 치던 날들에 대한 한 식자의 회고록이 아니며 격동의 시대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고난과 역경을 풍류와 해학 속에서 긍정할 줄 알았던 한 지식인의 고독한 발걸음의 기록임을, 마침내 완독한 독자들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독학무사(獨學無師)의 고군분투

기념비가 된 글쓰기, 무애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 전(全)



_『문주반생기』라는 이름의 특급열차



2014년 가을에서 겨울, 3개월 가까운 시간 우리는 문고판 크기의 실용대옥편을 곁에 두고 그 작지만 알찬 옥편을 통해서도 찾을 수 없는 글자들은 커다란 자전을 뒤적거려가며 『문주반생기』의 영인본이 실려 있는 『양주동전집』 제4권을 완독하였다. 문고판 발췌본으로 처음 그 존재를 알았고, 내용 누락 없는 초판의 영인본이 『양주동전집』에 실려 있음을 알게 되어, 전집을 통해 그 전문을 독파한 순간이었다.

사철제본된 두꺼운 영인본의 마지막 장을 덮었던 그 순간은, 그야말로 개안(開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미약하게나마 실감할 수 있었던, 실로 놀라운 기쁨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던 경험을 시력을 되찾는 일에 비유하고플 만큼, 그 순간은,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묘사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의 경이가 내면으로의 파문이 되어, 온 마음을 휘감아왔던 순간이었다. 일찍이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손때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옥편만큼이나, 강렬한 독서의 경험을, 실로 얼마만의 해보는 것이던가?

이 책의 출간은 그 아둔하고 미련한 독서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충격적 경험으로 남은, 최초 완독의 순간으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 놀라운 텍스트의 전문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으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 출판을 시작했는지도 모를 만큼, 『문주반생기』라는 텍스트는 크고 작은 일들에 흔들리고 지쳐왔던 최측의농간을 지탱해준 엔진과 다르지 않았다.



_『문주반생기』라는 이름의 미로



그간 문고판 발췌본으로 널리 알려졌었던 만큼 최측의농간 또한 그 발췌본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쉽게 찾아 접해볼 수 있었던 발췌본은 그러나 전체 원고에서 일부의 내용만이 불완전하게 수록되어 있어 『문주반생기』라는 책의 진가를 온전히 체험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앞선 연유로 전문을 찾아 읽어보고픈 사람들에게도 상황은 좀처럼 녹록치 않았다는 것이다. 고서에 범주에 넣어도 무방한 초판(1960년 출간)은 우선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자체가 극히 드물었으며 소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출이 불가한, 도서관 내에서 사서의 감독 아래 제한적으로만 열람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의지가 있다면 찾아 접해볼 수 있는, 전집에 실린 영인본의 경우에도 읽기에 난감한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초판을 영인하여 큰 수정을 가하지 않은 판본이었으므로 정확성은 뛰어났지만 현시대의 다수 일반인 독자들에게는 그 자체 ‘암호문’처럼 보일 만큼 난공불락 요새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마저도 온라인상에 노출 되어 있는 전집에 대한 서지정보가 불확실하여 전집 제 몇 권에 『문주반생기』가 실려 있는지조차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책 한 권을 온전히 만나는 일이 이토록 지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던 셈이다.

우리가 완독한 『문주반생기』 영인본은 당연히 세로쓰기였고(가로쓰기 세대에게는 세로쓰기라는 정서 방식 자체가 이미 시각적으로 도저한 난독을 유발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현대에는 한글만으로도 의미 전달의 기능을 명료하게 수행하는 대부분의 명사들마저 오직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었으며 동서양의 고전 작품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원문 그대로 인용되어 있고 중국어, 일어 등이 한자로만 표기 되어 있는 통에 마치 독자들을 수렁에 빠뜨리도록 설계된 활자들의 미로처럼 보였다.



최측의농간에서 이 책 『문주반생기』를 소개하고자 함은 그러므로 절판된 책을 복간하여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발췌본과 초판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워보고자 하는 열망과 닿아 있다. 그 열망의 근원에, 『문주반생기』라는 한 권의 책과, 무애 양주동이라는 대학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뿌리내리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_풍류와 해학의 휴머니스트, 무애 양주동이라는 이름의 신화



무애 양주동. 그를 둘러싼 무수한 풍문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전한다. 그 이름을, 우리가 매우 단편적으로-최초의 향가 해독 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와 그를 둘러싼 일화들은 그야말로 설화적이라 이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5세 때 이미 사서삼경을 줄줄 외웠으며 약관의 나이에 유수의 동양고전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던 그를 두고 걸어 다니는 고전아카이브가 따로 없었다는 증언이 전한다. 한문은 물론 일본어, 영어, 불어에도 능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넓이와 깊이가 남달랐던 그가 당대 조선인들은 무관심하였던 향가 25수의 해독을 일본인 학자(오구라 신페이)가 처음 시도한 데에 자극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향가 25수의 해독을 이룩해냈다는 업적은 워낙 유명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제자를 자처하는 대학자들이 존재하고, 그들 대부분 스승에 관한 전설적인 에피소드 몇 개 정도는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증언 또한 전한다. 스스로 국보1호라 칭했던 기인,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무애 양주동을 두고 전하는 신빙성 있는 증언들의 일부이다.

이런 증언들을 통해 고리타분한 한학자, 국어국문학자를 상상해서는 그러나 곤란하다. 20대 시절(1920-30년대)의 그는 이미 시인, 번역가, 문학비평가로서도 큰 활약을 하며 이른바 신학문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학습하고자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대(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명문 와세대대학에 유학하여 영문학 학위를 받고 오기도 했던 그의 본업은 영문학자이기도 했다. 『문주반생기』 속에도 10대에 이미 작은 서당을 꾸려 훈장노릇을 할 정도로 한학에 능했던 그가 영어와 수학을 독학하며 신식학교에 입학하고자 홀홀단신 서울로 유학하여 충격과 경이 속에서 스승에게 신학문(수학과 영어)을 배우던, 유쾌하고 애잔한 일화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전통의 질서에 얽매인 고답적인 한학자나 시대착오적 선비가 아니라 국권이 침탈당한 비극적 시대 속에서 새로운 문명과 문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적극 체득하고자 했던 열린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그의 열린 태도는, 그가 일생을 통해 관계 맺었던 많은 인물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주반생기』 속에서 도쿄 유학시절의 일본인 동급생이었던 ‘시모무라’(下村)를 자못 호의적으로 회상하는 대목이나 당대 조선 문단의 거장이었던 춘원 이광수와 벌였던 문학 논쟁을 호기롭게 서술하고 있는 대목 등을 통해 우리는 나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당대의 많은 이들과 논쟁하고, 허심탄회하게 벗이 되어 술잔을 기울일 줄 알았던 당당하고 유쾌한 휴머니스트의 초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주반생기』 곳곳에 등장하는 호기로운 저자의 모습과 그로부터 연원한, 때로 오만해보이기까지 한 자신감은 독자들로 하여금 불쾌함은커녕 웃음과 함께 긍정의 끄덕임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과 어조로, 스스로와 독자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마당놀이를 펼쳐 보이는 모습이 무척 통쾌하고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서도 상세히 서술되는 바, 유년기에 이미 부모를 모두 잃고, 사실상 고아가 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지난한 역경의 시간을, 늘 빈궁에 시달리면서도 위트과 유머를 잃지 않고 유쾌하게 살다간 그의 초상은 그의 다른 어떤 저술보다도 이 책 『문주반생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고 할 수 있다. 『문주반생기』를 통해, 녹록치 않았던 삶의 조건 속에서도 풍류와 해학을 벗 삼아 일평생을 고군분투하였던 그의 자전적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문주반생기』라는 전무후무한 텍스트는 이미 그의 유년기부터 준비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_『문주반생기』, 핏빛 근대를 증언하는 해학의 다이너마이트



이렇듯, 위트의 달인이자 천재 휴머니스트였던 저자가 모 문예지의 젊은 편집자로부터 대중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수필을 청탁 받아 어떠한 체계적인 계획도 없이 시작한 원고의 서술이 한 권의 책으로 남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 『문주반생기』다. 이 책은 그러므로 저자에 의하면 킬링 타임 북 -시간 죽이기 좋은, 재미로 읽는 책- 이라는 위상을 가진다.

그러나 영어, 한문, 일본어, 그리고도 각종 어(語)와 문(文)에 능통했던 저자의 다채롭고 현란한 어휘 구사 앞에서 독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지 모른다. 위트와 해학, 문학과 다양한 학문의 높은 경지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가운데 특유의 한문투 문체가 텍스트 곳곳에서 춤을 추고 있으니, 이로 인해 독자들의 머릿속에 지끈 지끈 쥐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서고금의 서적을 널리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던 저자가 하나의 문장을 통해서도 무수한 시간의 지적 행간을 담아 독자들의 머릿속을 종횡무진 헤집어놓기 일수이니 잠시라도 맥을 놓치면 이미 지나왔던 부분들로 수차례 되돌아가는 일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촘촘한 저자의 문로(文路)를 차근차근 따라가 볼 고요한 열정을 지닌 독자들이라면, 일단 눈과 머리에 그 특유의 글쓰기가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통쾌한 재미, 식자소화(識者笑話: 전문지식을 알아야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의 전범, 독보적 해학의 다이너마이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저술한 학술서-과는 달리 이 책 『문주반생기』를 통해 우리는 그러므로 살아 펄떡이는 글의 형상은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과의 다양한 일화들을 저자의 위트 있는 필치를 통해 만나는 일 또한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염상섭, 이은상, 현진건, 이광수, 최남선, 강경애 등 지금은 문학사의 한 성좌가 되어 있는 문인들과의 인연, 그들과 함께한 고난과 역경, 그 속에서도 자못 호기롭게 함께 나눈 풍류와 낭만적 순간들이 이 책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풍류란 어떤 것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채롭게 형상화될 수 있는 지에 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넓고 깊은 스펙트럼을 내포한 『문주반생기』라는 책이 이제까지는 술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책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감내하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 최측의농간의 판단이었다. 이 책에는 분명, 술과 관련한 다양한 일화들이 해학적으로, 때로는 애상(哀傷) 속에 그려져 있지만, 그런 일화들만 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주반생기』라는 놀라운 텍스트의 다른 많은 빛나는 대목들을 크게 놓치는 셈이다. 이 책은 한 지식인이 자신의 반생을 회고하며 들려주는 흥미로운 후일담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온몸으로 살았던 당대에 관한 치열한 증언이 담긴, 생생한 르포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갖은 풍파로 점철되었던 한국 근대의 비극적 풍경들을 현미경과 만화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당대 지식인들과 함께했던 격렬하고 유쾌했던 만남과 이별의 순간들, 일제강점기 속에서 자행된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만행에 대한 보고와 분개, 서구의 앞선 문명에 무지했던 조국과 스스로에 대한 충격과 반성, 갖은 풍파 속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신문물을 체득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던 한 실존자의 의지가, 이 책 속에서 빛나고 있다.



_새롭게 단장한 『문주반생기』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하여 수백 권의 책을 들춰보는 일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보따리가 담겨 있는, 저자가 재미로 읽으라고 쓴 책에 최측의농간은 각주 1996개를 달아놓았다. 초판(영인본) 『문주반생기』에는 각종 동양고전 원문과 고사성어, 당대에는 일상 속에서 널리 쓰였지만 현대에는 사전 속에만 등재 되어 있는 한자어와 순우리말, 당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좀처럼 쓰이지 않는 한자 조어, 현대에는 쓰임새가 다한 폐어(廢語), 중국과 일본에서만 쓰이는 한자어 표현이 다수 등장하며 그와 더불어 현 세대에게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다수의 일반 명사들조차 상당량 한자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최측의농간이 새롭게 펴내고자 했던 『문주반생기』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재미있고 깊이도 있는 이 책의 전문을 공유해보고자 시작한 기획이었으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과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우리 최측의농간과 같은 한글세대를 위하여, 각주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전면개작 수준의 폭넓은 윤문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면개작의 수준으로 현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원고를 풀며 대폭 윤문할 경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등을 아우르는 한국 근대의 독특한 말하기·글쓰기 환경과, 정통 한학세대이면서 당대의 석학이었던 저자 특유의 글쓰기·말하기 방식이 소실될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쓴 글의 글자 하나, 구두점 하나 고치는 것조차 자신의 허락 없이는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최측의농간에서는 그러므로 ‘한글세대를 위한’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다소 난해?난삽하고 복잡해지더라도 저자의 의중을 최대한 존중하는 가운데 당대의 ‘글/말’소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민하였으며 그 고민의 결과, 초판에 없던 1,996개에 이르는 각주를 통해, 원고를 해치지 않고 원고를 풀어 보충하는 하나의 방법을 고안하였던 것이다. 단순 어휘 풀이 정도만으로 범위를 한정한 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각주를 통해 현대적 의미를 부연하고자 시작했던 각주 작업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진한 점이 적지 않다고 판단, 불분명하거나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정보 외에는 가능한 한 많은 관련 정보들을 폭넓게 수록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이는 우리 최측의농간이 이 책을 함께 완독했던 경험을 각주의 형태로 기록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독자들과 이 놀라운 텍스트를 진정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측의농간에서 작성해놓은 주석을 벗 삼아 촘촘한 저자의 문로(文路)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측의농간판 『문주반생기』의 출간은 따라서 선대의 위대한 업적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자가 재미로 읽으라고 쓴 책을 촘촘히 따라가며 읽고 정리하기 위하여 공구서만 수십 권, 단행본만도 수백 권을 참조하였다. 특히 이 책의 각주를 작성하기 위해 주로 참고한 공구서들-주로 각종 사전류-의 경우 한 권 한 권이 일생의 작업에 해당하는 무게감 있는 저작들이었다. 한 개인으로부터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주체들이 이루어 놓은 그 찬란한 지식과 정보의 서적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는 『문주반생기』라는 망망대해 속에서종종 길을 잃으면서도 두려움과 불안에 호기롭게 맞설 수 있었다. 돌다리들은 건너보기도 전에 두드려보다가 무너지기 십상이었지만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어설프게라도 허공을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용기의 뿌리에는, 바로 그런 다양한 참고문헌들이 있었음을,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을 받은 인터넷 아카이브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고전종합DB’, ‘동양고전종합DB’,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등의 다양한 동서양 고전 아카이브 웹사이트들을 통해 우리는 본문에 등장하는 무수한 동서고금 작품들의 원문을 확인하고 그 진위여부를 판단해 바로잡거나 안도할 수 있었다. 구글(Google)과 어도비(Adobe)사에서 합작 개발하여(한국 업체로는 산돌커뮤니케이션이 참여하였다) 일반에 무료 배포하고 있는 동아시아 호환 폰트 ‘Noto Serif CJK(본명조)’를 통해 누락되거나 디지털화 되지 않은 무수한 글자(한글 고어를 포함해 상용한자 범위를 벗어나는 한자)들을 시각적인 왜곡이나 누락 없이 온전히 복원하여 표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꼭 언급하고 싶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모두에게 버림받으리라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적지 않았다. 원고의 부분과 전체를 뜯어보고 합쳐보고, 뒤에서부터 읽고 앞에서부터 다시 읽으면서 수차례 협의하고 토론하였다. 더 나은 방향은 어떤 것인가 하는 자문을, 고문이 되는 독백들을 던지고 삼키고, 집어 던지고 집어 삼켰다. 그러므로 우리 최측의농간은 우리가 궁금했던 것들을 우리가 답할 수 있는 선에서 고군분투하였음을 밝힌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 최측의농간이 어떤 관점과 원칙을 세워 작업하였는지는 본문에 앞서 ‘일러두기’를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놓았으므로 이 책의 간략한 설계도를 보고 싶은 독자들은 책 서두에 상재해 놓은 그 장황한 일러두기를 한 번쯤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도 시간낭비는 아닐 것이다.



_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새로운 시대의 『문주반생기』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존재하듯,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다. 『문주반생기』라는 책을 출간하기 위하여 몸부림쳤던 1년 6개월 가까운 시간 곳곳, 땅거미 지는 풍경과 다르지 않은, 검은 외로움이 깃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며 아무도 내주지 않는 책들을 직접 만들어 읽자고 시작했던 것이 출판사 최측의농간이었다. 어느덧 우리는 10권의 책을 출간하였고, 그보다 훨씬 많은 책들을 출간 준비하고 있게 되었다.

『문주반생기』의 출간을 현실화하는 이제, 우리는 책 속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성어 하나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겨 보려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이르러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만 같은 상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떨어져 죽을 것 같이 두렵지만 두려움을 감내하며 어렵게 내딛는 한 번의 걸음을 통해 사실은 더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말이다. 『문주반생기』라는 첩첩의 미로 속에서, 우리의 열망을 포기하거나 그 열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질 때면, 우리는 이 성어를 마음속으로 새기고 또 새겼다. 두려움을 무릅쓸 때, 살길이 열린다고 했던가. 외로움의 다른 얼굴은 두려움이었으니, 최측의농간은 이제 짧지 않았던 우리 외로움과 두려움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판본의 『문주반생기』를 펴낼 수 기회가 온다면, 작고 가볍게 단장하여 일상의 곁에 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책의 형태로 선보이고 싶었다. 600쪽 분량의 책으로 만들어놓고 작고 가벼움을 이야기하느냐는 핀잔을 모면키 어려울 듯 하다. 본래 문고판으로 기획하였던 것이니, 할 수 있는 선에서, 가능한 한 휴대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였다.

새롭게 단장한 『문주반생기』를 소개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는 전혀 몰랐던 어떤 것을 알리는 일이 아니라 왜소하게 알려졌던 어떤 것의 진가를 전하는 일과 닿아 있다. 진가(眞價: 참된 가치)라는 말의 무게를, 우리는 알고 있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이번 출간을 통해, 널리 전해지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주반생기』라는 책의 빛나는 ‘진가’를 알리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자 했다.

최측의농간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근간도서목록에 당당하게 『문주반생기』라는 서명을 명기해놓았던 우리는,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았던 크고 작은 문의들을 통해 그런 짓거리가 실로 객기였음을, 절절히 깨달아야만 했다. 기대하는 사람들, 우려하는 사람들도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잊거나 지쳐갈 만큼, 그로부터도 계절은 여러 번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아직 남은 아쉬움과 한탄을 뒤로 하고 독자들의 너그럽고도 매서운 질정을 기대하면서 최측의농간의 근간도서목록에서 『문주반생기』를 삭제할 것이다.

『문주반생기』는 단순히 술 먹고 분탕질 치던 날들에 대한 한 식자의 회고록이 아니며 격동의 시대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고난과 역경을 풍류와 해학 속에서 긍정할 줄 알았던 한 지식인의 고독한 발걸음의 기록임을, 마침내 완독한 독자들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최측의농간은, 호탕하고 유쾌한, 풍류와 해학이 가득한 그 발걸음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때로 한 발 한 발 어렵게 내딛는 독서의 걸음은 그에 상응하는 깊은 감동을 안길 수 있다. 이 책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만큼의 감동이, 이 책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여겼던 독자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독자들이여, 찬란한 『문주반생기』의 세계를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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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일러두기·5



유수 같은 세월이여·19



제1부 유년기



`문학소년 시절

문학소년 시절·27

나의 문학 수업·29

한문 공부의 회억·38

처음 읽은 소설·44

문학을 하게 된 동기·46



`소년 숙장

무명숙·49

TRADE MARK·53

‘귀재’의 영어 수학·59

몇·어찌·64

학만이 혼자 울리!·69



`‘신문학’에의 전신

‘신문학’에의 전신·71

요동백시 ‘데카덩’·76

맨 처음 발표한 글·81

‘철저와 중용’·88



`《금성》 시대

고구마, 소주, 불문학·93

시지 《금성》 발간·98

문학소녀와의 ‘연애’·104

요절한 기재 시인·106



제2부 ‘술’의 장



`초음기

열 살에 술·117

처음 취한 ‘삼일주’·120

술과 강의-‘사운’·126

도련님, 제발!·135

사랑, 술·137



`문·주의 벗들

‘백주회’·140

주우, ‘문교’·147

3부작 장편·150

서구 ‘명저’들의 허두·162

밥 한 상을 둘이서·168

단어 외우기 내기-‘기억술’·172

시인 ‘인가’·176



`주연, 학연

소주, 꼬치안주·184

‘학연’기·190

선선히 빌려준 진서·195

취중의 ‘선문답’·197



`종음기

‘국제’적 주연과 주정·201

객기는 연암이 먼저·207

동경 시대, 그 밖의 ‘문?주의 벗들’·218



제3부 청춘백서



`나의 청춘

Sturm und Drang·227

안하무전·237

무일푼의 신세로 된 ‘역사’적인 날·248

차를 끌지는 않았다·253



`신혼기

토방의 ‘새살림’·257

무전취식의 유일한 예·263



`정원초

‘백결 선생’의 상경·265

수주머니 삽화·269

폐의의 변·273

‘일간명월 역군은’·277

불수산을 짓는다고·281



`성동의 아침

용두리 춘사·288

공방전의 결말·294



`영도사 좌담회

“나는 오늘 듣기만 하겠소”·297

‘객설이 문학인가?’·302

“시조 집어치워!”·309

‘년.놈’의 제의·315

‘년.놈’ 변증설·323

“내 코는 칠피코야”·328



제4부 여정초



`여비도 없이

값진 ‘구걸’ 편지·331

재상 모호 대장부·335

의기 다시 충천·342

서울역의 감상·348



`분실기

인생 최대의 난관·356

공자는 차표를 잃지 않았다·366

바라는 ‘기적’·370

암, 그랬을 테지·376



`동해선에서

밤차는 간다-차중 점경·383

‘왕자’와 그 비, 빈들·387

아침의 향연·394

선선한 가을바람·402



`해어진 바지

일도로 왜죽왜죽·404

역전의 ‘효자’·406

신물작연·411

가을바람에 부친 내간·415

산 넘고 물 건너·424



제5부 학창기



`예과시대

‘아킬레스’의 두 약점·429

독어 교실에서 추방되다·432

지진과 천의·441

춘소초·446

흩어진 새들·463

선문답 삽화·468



`대학시절

영문과로의 전향·474

동급생 ‘시모무라’·481

대학을 졸업할 무렵·487

졸업논문·493

그까짓 성적쯤·501



제6부 교단 10년



`부임기

취직은 되었으나·507

성서 회전·513

부임기·523

‘적벽회전’의 전야·528

초야의 내방자들·531



`교단 회억

10월 사변·540

사제기·548



`연북록

‘향가’ 연구에의 발심·556

연구 삽화·563

서·제사·제어·567



후기·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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