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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피베리
호텔 피베리
저자 : 곤도 후미에
출판사 : 황소자리
출판년 : 2023
ISBN : 9791191290257

책소개


“다른 커피들은 둘이서 하나가 되는데, 피베리만은 이렇게 혼자야. 마치 우리들처럼….”

출간 이후 일년 넘게 베스트셀러!
미스터리와 멜로, 성장소설을 넘나드는 곤도 후미에 대표 장편소설!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려 학교 교사를 그만둔 지 4개월째. 생의 의미도 재미도 잃은 채 아래로 아래로만 침잠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기자키에게 어느 날 친구가 하와이 여행을 권했다. “그 섬에 ‘호텔 피베리’라는 작은 숙소가 있는데 말이야, 그곳에는 누구든 딱 한 번만 묵을 수 있어. 재방문이 허용되지 않는 특이한 호텔이지.”

간단하게 짐을 꾸려 도착한 ‘호텔 피베리’는 작고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에 묵고 있는 여행자는 기자키를 포함해 다섯 명. 안주인이 차려내는 음식은 맛있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와이의 풍경도 좋았다. 그렇게 안온한 평화가 이어지던 어느 날, 한 투숙객이 호텔 풀장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다. 이틀 후 또 한 명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불안한 공기가 휘몰아치는데….

미스터리와 멜로, 성장소설이 절묘하게 결합된 《호텔 피베리》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곤도 후미에의 대표작으로 섬세하고, 아련하게 쓸쓸한 그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여러 표정을 지닌 하와이섬의 자연 풍광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숨긴 서로 다른 내면의 그림자를 절묘하게 대비시키며 인물들 간 불안한 심리를 극적으로 고조하는 글쓰기는 피베리 커피 맛보다 강력한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일상과 비일상, 욕망과 상실, 회한과 희망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삶의 다양한 지도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이 작품은 ‘곤도 후미에만이 써낼 수 걸작 미스터리’이라는 평을 들으며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목차


하나의 섬에서 비가 내리는 지역과 내리지 않는 지역으로 분명하게 나뉜다는 것이, 일본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나에게는 매우 놀라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폭우만 내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흐린 날조차 없어 보이는 삶도 있으니까.
--- p.7

“원래 그 호텔 오너도 백패커였다고 해. 세계를 방랑하던 중 ‘너무 긴 여름 휴가는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어.”
가슴속에 아릿한 통증이 스쳤다. 그것은 나도 느껴온 감정이었다. 너무 긴 휴가는 분명 나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다. 앙금 같은 무언가가 가슴속에 쌓여가는데, 몸은 현실에 익숙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그 숙소에는 처음 오는 손님만 묵을 수 있어. 가장 길게는 3개월. 미국에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최장 3개월이니까.”
--- p.22

고독은 언제나 지독하게 착하다. 특히 나처럼 나 자신이 싫은 인간에게는. 이처럼 편안한 고독감을 맛보기 위해, 스기시타는 항상 여행을 떠나는 걸까?
--- p.43

“그 나무는 말야, 생존하는 데 많은 태양 빛이 필요해. 그래서 다른 식물들과 밀접하게 자라지 않아. 듬성듬성 떨어져서 자생할 수밖에 없지. 즉 오히아는 풀꽃이 거의 없는 용암지대에서만 자랄 수 있어.”
수분이 많은 풍요로운 토지에는 여러 종의 식물이 자란다. 그러면 많은 태양 빛을 다른 식물들에게 빼앗겨서 오히아 나무는 자랄 수가 없다. 그 성질 때문에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 p.69

그녀가 꺼낸 피베리는 일반 커피보다 알이 작았다. 가즈미씨가 그것을 내 손 위에 올렸다. 자세히 보니, 피베리는 다른 커피콩과 다르게 또르륵 말린 듯 둥근 형상을 하고 있었다.
“둥그렇네요.”
“맞아요. 피베리는 열매 속껍질 안 그 방에 한 알밖에 없어요. 그래서 희소성이 있는 거예요.”
즉, 보통 열매라면 두 알을 수확할 수 있는데, 피베리는 한 알밖에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비쌀 만하군. 그녀는 내 손에서 커피콩을 집어 올렸다.
“왠지 불쌍해 보이기도 해요. 다른 커피는 둘이서 하나가 되는데, 이 아이는 외롭게 혼자야.”
--- p.101

풀장에 가라앉으면서 가모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런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살아있을 때는 가모우의 내면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가 죽고 나니 왠지 후회가 몰려왔다. 죽은 사람은 다시 읽을 수 없는 책과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한들, 이제 와 알 수 있는 것은 드러난 것들의 일부뿐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짤막한 인생 줄거리를 듣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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