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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밀수 이야기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저자 : 사이먼 하비
출판사 : 예문아카이브
출판년 : 2016
ISBN : 9791195874156

책소개

대항해 시대에서 블러드 다이아몬드까지 밀수는 어떻게 세계의 운명을 바꿨는가?

그동안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의 책이 나왔다. 주인공은 ‘밀수’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21세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밀수’를 키워드로 세계의 변화와 흐름을 설명한다. 대항해 시대의 실크·향신료·은에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금·아편·차·고무를 거쳐 현대의 코카인·헤로인과 아프리카의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7세기 동안의 광활한 여정이 펼쳐진다.

이 책에서 다루는 밀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뒤흔든다. 역사의 은밀한 주역 ‘밀수’를 통해 세계 무역의 변화와 문명의 확산, 패권의 향방을 추적해나간다. 세상 모든 곳을 비춘 ‘가장 어두운 것에 관한 탐험’이자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인류의 진보와 세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한편으로 어떻게 이뤄지게 됐는지 살피면서 역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된다.

이 책에는 다양한 밀수품과 더불어 수많은 ‘밀수꾼’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여겨온 인물들도 많이 있다. 그들이 왜 밀수꾼의 길을 걷게 됐는지 살피는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무역 전쟁의 비사와 드라마틱하게 구성된 풍성한 이야깃거리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계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깊은 지식도 얻을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교역 금지품 7세기 역사로 밝히는 세계사의 이면
낭만과 반역 그리고 권력의 역사

실크로드는 어떻게 거대 ‘밀수 통로’가 되었는가?
나폴레옹이 ‘영국 금화’를 몰래 사들인 이유는?
왜 미국은 ‘마약 밀수’ 항공사를 40년 동안 운영했는가?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가 피로 물든 보석이 된 까닭은?


“나의 해적은 들으시오. 그대의 함선을 가득 채워서 돌아오시오.”
1568년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는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하려는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은밀히 불러 이렇게 명령했다. 여왕이 명한 임무는 다름 아닌 당시 스페인이 독점하고 있던 ‘향신료’의 밀수였다. 이 임무에 더해 발포 및 약탈도 허락됐다. 훗날 그의 세계 일주는 ‘탐험의 항해’라고 역사에 기록됐지만, 이 사건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많은 다른 항해에서 그는 교역 금지품을 밀거래한 밀수꾼이었다.
1811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영국의 밀수꾼들을 위해 프랑스 그라블린(Gravelines)에 위치한 외국인 거주지에 ‘밀수 도시’를 세워주었다. 나폴레옹 1세가 된 이 황제의 목적은 영국 금화 ‘기니’의 밀수였다. 이른바 ‘기니 런(Guinea Run)’의 시작이었다.
제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소비에트 연방은 독일의 문화 유물을 당당히 밀수하고자 ‘트로피 여단(Trophy Brigade)’이라는 이름의 정예 조직을 창설했다. 이들은 예술품과 유물을 확보하고 이를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까지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장의 최전방에서 활약했다.
1768년 영국 세관은 와인을 가득 싣고 있던 밀수선 리버티 호를 북아메리카 식민지 보스턴 항에서 압류했다. 관세 납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배의 선장은 밀수꾼 존 핸콕(John Hancock)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또한 그는 이 행위로 명성을 얻었고 급기야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선언문에 최초로 서명한 인물이 됐다.
현재 콜롬비아 과히라(Guajira) 반도에 있는 대부분의 항구는 여전히 ‘밀수 항구’다. 하역되는 밀수품은 주로 담배, 위스키, 의류, 가전제품이며, 트럭에 옮겨 실린 뒤 사막을 가로질러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밀수품 메카 마이카오로 수송된다. 그곳에서 밀수품은 기록이 주어져 ‘합법화’된다.
지금도 멕시코에는 미국으로의 마약 밀수를 신화화하는 ‘나르코 코리도(Narco-corrido)’라는 음악 장르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마약 영화 ‘나르코 시네마(Narco-cinema)’ 산업도 번성 중이다.

ㅡ밀수, 역사가 ‘감춰온’ 세계사의 주역
밀수(密輸/smuggling)란 “몰래 물건을 사들여 오거나 내다 파는”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매매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다. 직관적으로도 밀수라는 용어는 썩 좋은 어감은 아니다. 불법, 나쁜 짓, 범죄, 사회적 병폐…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것이 밀수를 설명하는 모든 것일까? 만약 밀수가 문명을 전파했고 세계 권력을 좌우했으며 역사 자체를 바꿨다면? 또한 우리 모두가 그 넓은 세계의 일원이라면?
또한 밀수는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통일 신라 흥덕왕 때 중국으로부터 차를 밀수해 들어온 김대렴(金大廉)과 고려 공민왕 시절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반입한 문익점(文益漸)이라는 두 분의 위대한 밀수꾼들이 계셨다. 특히 문익점 선생이 아니었으면 한반도에서 털가죽을 가진 짐승들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다른 나라가 갖고 있던 고유의 자원이나 기술까지 밀수의 대상이었다. 김대렴이나 문익점의 경우에도 자원에 대한 밀수였다고 할 수 있다. 차와 면화가 가진 잠재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밀수를 역사에 대입하면 놀랍도록 거대한 세계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 책 《밀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 역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감춰져야 했던 밀수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시대의 흐름과 권력의 이동에 따라 합법과 불법을 오갔던 다양한 교역 금지품과 수많은 밀수꾼들을 죄다 불러내 이 은밀한 교역에 대해 스케일 큰 그림을 그려낸다. 저자인 사이먼 하비 교수는 밀수를 “무역과 경제의 역사이자 세계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낭만’, ‘반역’, ‘권력’이라는 세 가지 프리즘으로 밀수의 세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는 “밀수의 낭만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을 하나의 역사로 서술하는 일은 가능한가?”, “밝음과 어두움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이율배반적 질문을 시작으로 이 방대한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ㅡ‘사욕’과 ‘국익’을 넘나든 야망의 역사
《밀수 이야기》는 15세기에서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7세기 밀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 열강들의 제국화가 진행되던 15~16세기를 필두로 권력의 향방이 걸려 있던 밀수의 정치적·경제적·과학적·문화적 역학관계가 오늘날에 이르는 세계 정치경제사에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왔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대항해 시대의 실크·향신료·은에서부터 제국주의 시대의 금·아편·차·고무를 거쳐 현대의 코카인·헤로인과 아프리카의 피로 물든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여정을 묵직한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하비 교수는 “밀수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이 세계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기와 마약류 밀수가 오늘날 국제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미 과거에서부터 밀수품은 늘 같은 양상을 띠어왔다”고 설명한다. 요즘에는 전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물품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얽히고설킨 정치적 이해관계와 양보할 수 없는 패권 전쟁의 주역이 되는 현장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밀수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몰래 자행한 배포 큰 밀수꾼들의 사적인 거래도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막강한 배후 세력이 있었다. 바로 ‘국가’였다.

ㅡ‘밀수’ 강국이 ‘경제’ 대국이 된 아이러니
역사에서 밀수는 항상 경제적·정치적인 행위였고 그 규모나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따라 항상 지정학적인 영향을 받았다. 달리 말하자면 밀수는 ‘국제관계’, ‘분쟁’, ‘세계화’의 주요 요인이었다. 현재 우리가 강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밀수를 토대로 부를 축적했다. 밀수 강국은 하나같이 그 시대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했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은 일찌감치 경제 패권을 쥐었고, 17세기 네덜란드는 향신료 독점을 통해 유럽의 대표적인 빈국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환골탈태했다. 다음 주자는 영국이었다. 이 나라는 밀수를 토대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북아메리카의 미국이 밀수를 국가의 최우선 사업으로 삼아 영국의 ‘산업 혁명’을 통째로 밀수하면서 새로운 패자로 자리매김했으며 21세기인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미국 또한 다양한 밀수 교역 금지품 중 가장 사악하다고 할 수 있는 무기와 마약 밀수에 관여한 적도 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Iran-Contra Scandal)’은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 CIA를 주축으로 군부와 백악관 참모들까지 개입해 벌인 조직적인 밀수 사업이었다. 이때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적대국’으로 분류한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고 중앙아메리카의 마약 밀수에 개입해 벌어들인 돈으로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항하고 있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ㅡ‘혁명’을 불러일으킨 ‘위험한’ 밀수품들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들만 밀수품은 아니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기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밀수의 대상이었던 무기와 예술 작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더욱이 인류를 계몽시킨 ‘문화’와 ‘사상’도 당시에는 체제를 뒤흔드는 요소였기에 밀수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밝음과 어두움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능케 하는 대표적인 밀수품이 바로 문화와 사상이다. 이는 ‘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만인은 평등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은 왕정 체제를 유지하려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용인할 수 없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밀수로 전파됐다. 이런 사고방식이 허용됐던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 ‘책’이라는 형태로 밀수 유통망을 통해 전유럽에 뿌려졌다. 밀수가 ‘혁명’의 요소가 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많은 순교자를 만들어낸 조선 말기의 천주교 사상은 주문모(周文謨) 신부와 함께 중국에서 밀수돼 들어온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의 한글 번역판 성서의 유통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ㅡ세상 ‘모든 곳’을 비춰온 가장 ‘어두운’ 무역 이야기
이 책은 밀수의 거의 모든 형태와 그 일에 뛰어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면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본국의 지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밀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대항해 시대 식민지 이주민, 혁명 사상을 밀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혁명가가 된 밀수꾼, 마약 밀수로 벌어들인 지저분한 수익을 고가의 예술품 수집이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소비했던 남아메리카 마약 중개인 등 시계와 지도를 넘나들며 실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또한 인종 말살 정책까지 써가면서 인도네시아 향신료 제도에서 독점 체제를 통해 타국의 밀수를 통제하려고 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중국을 상대로 한 아편 밀수를 독점하고자 했던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같이, 국가 권력이 발 벗고 나서서 직접 밀수에 뛰어들었던 사례도 소개된다.
밀수는 흥미로운 주제다. 하비 교수는 “밀수가 없었다면 문명의 확산도 없었고 지금의 세계화도 불가능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그는 “밀수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연간 10조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전세계 밀수꾼들이 힘을 합쳐 국가를 세우면 미국이나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대국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밀수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서는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가 교역 행위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세상 모든 곳을 비추고 있는 가장 어두운 거래, 밀수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책속으로 추가 *

밀수는 대개 혁명의 땅으로 향하는 직선주로를 달렸지만 검열이 심한 지역에서는 우회로를 활용했다. 시칠리아(Sicilia) 왕국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계몽에 대한 열망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작가 쥬제페 토마지 디 람페두자(Giuseppe Tomasi di Lampedusa)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책 《표범(The Leopard)》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세관을 통해 시행되던 검열 제도 덕분에 그 누구도 디킨스나 엘리엇, 플로베르, 심지어 뒤마의 작품도 알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19세기 후반 리투아니아(Lithuania)에서도 벌어졌다. 1864년부터 1904년 사이에 책 밀수꾼들이 모든 서적은 키릴문자로 인쇄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정책에 반발해 소(小)리투아니아(동프러시아) 에서 로마문자로 인쇄된 문학 작품이나 잡지, 신문 등을 밀수해 리투아니아로 들여왔다. 이렇게 낭만적 자유주의 신문 〈새벽(Auszrai)〉과 월간지 〈종(Varpas)〉이 밀수를 통해 국경을 넘어왔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땅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몇 십 년이 지나서는 반대 방향으로 운송되기도 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닥터 지바고(Dr. Zhivago)》는 요즘 눈으로 보면 그리 선동적인 작품이 아니지만 1950년대에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인식됐다. 1956년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 (Isaiah Berlin)이 그 원고를 밀수해 러시아 밖으로 빼돌렸다. 역사에서 지워져버렸을 수도 있었던 글과 사상이 마침내 1957년에 출간됐다(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로 출간됐다). 이 작품은 195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1965년 명작 영화로 재탄생했다.
---p.165-166 「제6장: 혁명과 저항」 중에서

1891년 11월 10일,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채 쇠약하고 수척하고 고뇌에 가득 차 있던 한 남자가 마르세이유(Marseille)의 작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병원 사무원은 기록에 간결한 설명을 추가하면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무역업자. 이송 도중에.”
병원 사무원에게는 신원불명자 한 사람이 죽은 것이었지만, 그는 시문학 분야에서 눈부신 경력을 쌓다가 친구이자 동료 시인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 쏜 총에 맞은 뒤 아프리카로 떠났던 아르튀르 랭보였다. 문학 연구가들에게는 그가 마르세이유에서 죽기 전 20년의 세월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가 이렇게 서글픈 종말을 맞이했던 것이다.
랭보는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고 없는 동안 달아오르던 문학적 평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 다. 아마도 그에게 누구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면 시인이 아니라 무역업자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었지만 그의 무역은 점차 밀수가 돼갔다. 그리고 그는 애초에 밀수업자가 되기로 한 듯 보인다. 아프리카로 떠나오면서 집에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밀무역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pp.239-240 「제9장: 밀수로 채워지는 세계」 중에서

불법으로 복제된 상품들은 오리지널에 대해 즉각적이고도 미묘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역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6세기 이후 줄곧 유럽에서 가장 책을 많이 팔던 사람들은 행상들이었다. 이들이 기존 서점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로버트 뉴워스가 《국가들의 잠행(Stealth of Nations)》에서 지적했듯이 실제로는 합법적 경로 와 불법적 경로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식적인 창작 작품에 대한 비공식적인 반응과 그 반대 의 경우를 언급하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여러 개의 변종을 예로 들고 있다. 소위 길거리 판에서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맺기도 하는데, 《리어 왕(King Lear)》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하면 《맥베스(Macbeth)》는 뮤지컬로 바뀌기도 했다.
이렇게 웃기는 왜곡된 버전들은 당시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더욱이 이 해적판들이 새로운 ‘정식판’이 되기도 하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인 제2의 정식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가 한스 그리멜스하우젠(Hans Grimmelshausen)의 소설 《짐플리치무스의 모험(Der abendeuerliche Simplicissimus)》의 해적판이 나왔는데, 이것이 원작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자 정식 제3판으로 인정받게 됐으며 심지어 작가까지 이를 승인했다. 비공식적인 시장이 언제나 창의성이 결여되고 품격을 떨어뜨렸던 것만은 아니었으며, 이 사례에서 보듯이 ‘존재의 타당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값싼 상품의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제품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어째서 이런 것들은 쉽게 구해지고 가격 또한 저렴할까? 어떤 공급선이 이런 효율성을 제공하고 있을까?
---pp.368-369 「제15장: 암시장」 중에서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어가며 낭만과 반역 그리고 권력의 역사

제1장_위대한 야망: 대항해 시대의 밀수
탐험이 된 밀수|밀수의 카리브 해|식료품의 왕, 후추의 지배자|포르투갈의 헛된 노력|뛰는 스페인, 나는 밀수|메넨데스와 호킨스|존 호킨스의 밀수 모험|해적 사냥꾼

제2장_독점: 향신료 제도와 남중국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얀 피터스존 쿤|향신료 제도의 네덜란드인|잉글랜드인들의 활약|런 섬 이야기|독점이라는 맥락|남중국해의 캡틴 차이나

제3장_밀수의 바다: 카리브 해와 은의 강
네덜란드의 소금 밀수|프랑스의 밀수꾼들|영국 제국의 밀수 사업|모험 이야기의 주인공들|불법 담배|은 그리고 세계 경제의 탄생|독점 체제의 삼투 현상|밀수되는 사치품들

제4장_밀수의 사막: 스페인 제국의 영토
과히라 반도의 문학 상륙|표류와 기회|새로운 밀수품 지도|석탄과 소금|있어도 없는 밀수|전설의 밀수꾼들|밀수가 만들어낸 문화

제5장_밀수품의 맛: 전세계로 불어오는 밀수의 바람
밀수품에 열광하는 부르봉 왕국|말뿐인 법령들|라이벌들|파라과이 주식회사|브라질 연결망|몰려드는 밀수선|대륙을 넘나드는 밀수|피에르 푸아브르의 업적|또 다른 옮겨심기

제6장_혁명과 저항: 밀수가 전한 사상들
밀수와 혁명|검은 책들|사상의 밀수|밀수의 품격|밀수의 페르소나

제7장_해적과 애국자: 영웅이 된 밀수꾼들
밀수꾼 애국자|왕실의 비호|정부의 이중성|신세계가 가져다 준 기회|바라타리아의 지배자|기회주의적인 애국심|실패한 유토피아

제8장_통상적인 사업: 나폴레옹의 대 영국 밀수 작전
기니 런의 꼼수|밀수 도시|영리한 전술|가끔 우러나는 충성심|존경받는 밀수꾼들|양다리|기니 런의 반전

제9장_밀수로 채워지는 세계: 라플라타에서 홍해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프러시아의 왕|무기 밀수꾼 랭보

제10장_어둠의 제국: 아편에 중독되는 중국
양귀비의 눈물|중무장 자유무역|아편 밀수의 최전선|몸부림치는 중국|전쟁 준비|제1차 아편 전쟁|일상이 된 사업|제2차 아편 전쟁

제11장 복원과 저항: 너무 많은 아편, 너무 적은 차
손댈 수 없는 곳|인도의 아편 밀수|아편 배달원|차 한잔의 반향|차만 가져온다면|이식되는 차

제12장_산업 혁명: 노예, 기나나무, 고무, 제조업
불법적인 미국의 산업 혁명|노예무역과 제조업|기나나무 밀수 프로젝트|이식되는 나무|고무 왕국|헨리 위컴의 고무 여행|이식되는 고무|밀수와 제조업

제13장_문화의 밀수: 약탈당하는 보물들
유물 밀수꾼|자랑스럽게 전시되는 도굴품|강박관념과 특권의식|트로피 여단

제14장_나리들의 탈출: 인간 밀수의 흑과 백
혜성 작전|F 통로|게슈타포 탈출 작전|또 다른 나리들|어둠의 전파|스위스의 진정한 중립|로마의 길

제15장_암시장: 가격만 맞으면 무엇이든
백마장 호텔|고매한 약탈품|가짜들의 반란|세계화의 일부|시스템 D|전세계의 암시장들|비공식 경제가 공식 경제를 만날 때

제16장_남쪽에서 남동쪽까지: 하늘을 나는 마약
하늘에 세운 밀수의 회랑|황금의 삼각 지대|공수되는 마약들|아편항공|베트남 공군의 마약 밀수|라오스의 마약 수송기|1967년 아편 전쟁|무엇이든, 어디든, 언제나 실어 나르는 항공사|비밀 전쟁|에어아메리카

제17장_냉전 시대의 밀수: 중앙아메리카의 폭풍 속으로
아메리카에 차려진 마약 밥상|실뜨기 놀이와 콘도르 작전|범죄 조직의 항공 연결망|콘트라 반군|미국의 계획|마약 기지|그 비행기에 그 마약|다시 찾아온 마약-게릴라의 유령

제18장_밀수품 전쟁: 미국의 사업과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밀수로 만든 나라 미국|독립 전쟁의 밀수|남북 전쟁의 밀수|다이아몬드 밀수꾼들|지역의 문제에서 세계의 문제로|다이아몬드가 나오는 저주|썩은 국가 타락한 개인|피 흘리는 아프리카의 뿔

나오며_끝나지 않은 거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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