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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Poetry and Walks)
저자 : 한정원
출판사 : 시간의흐름
출판년 : 2020
ISBN : 9791196517199
책소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시가 산책이 될 때, 산책이 시가 될 때…
시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럼, 산책을 한다는 건? 그건 어쩌면 고요한 하강과, 존재의 밑바닥에 고이는 그늘을 외면하지 않는 묵묵함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건 결국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여기에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초록색 신호일 수도 있다.‘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시와 산책』은 작가 한정원이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과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들을 담아낸 맑고 단정한 산문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가의 첫 책이다. 놀라운 이유는 이 책이 너무나 좋아서.
작가가 쓴 스물일곱 개의 짧은 산문에는 그녀가 거쳐온 삶의 표정들이, ‘시’와 ‘산책’을 통해 느꼈던 생활의 빗금들이 캄캄한 침묵 속에서도 의연히 걸어가는 말줄임표처럼 놓여 있다. 한없이 느리게도 보이고, 더없이 끈질기게도 보이고, 지극히 무연하게도 보이는 문장들로 그녀는 ‘시’와 ‘산책’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완성한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그녀가 평생 시를 쓰고, 읽고, 보듬고, 도닥이면서도 결국 혼자 꽁꽁 얼려두고 숨겨만 두었던 마음속의 아주 깊은 곳으로 첨벙 뛰어들어, 그녀의 조용한 방관 아래에서 페소아와, 월러스 스티븐즈와, 로베르트 발저와, 파울 첼란과, 세사르 바예호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울라브 하우게와, 에밀리 디킨슨과, 안나 마흐마토바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포루그 파로흐자드와, 실비아 플라스와, 가네코 미스즈를 만나고야 만다. 그녀와 함께, 그녀가 사랑했던 시인들과 함께, 그녀가 종종 입 밖으로 소리 내던 시어들과 함께, 천천히 너르게 산책을 떠난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겨울의 마음이 되었다가, 봄의 소리가 되었다가, 여름의 발자국이 되었다가, 가을의 고양이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산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쓰다듬으며 서로에게 묻기도 한다.
“당신은 당신이 낯설지 않나요? 당신이 잘 보이나요?” _본문 중에서
우리는 자신으로 살기 위해 누구처럼 살지 말자고 서로에게 다짐도 한다. 그녀의 문장으로 웅장해진 가슴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 제법 힘껏 펴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감추기도 하면서도, 결국은 그녀의 문장들로 점점 거대하고 성대해지는 우리의 세계를 목격하는 기쁨을 누린다.
아주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처럼『시와 산책』의 문장들은 몇 번을 곱씹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야 우리에게 와 곁을 내어준다. 어느 날은 우리를 젊어지게도 하고, 어느 날은 우리를 늙어가게도 하면서. 그러니, 바로 지금이, 우리가 ‘시’와 ‘산책’을 할 바로 그 순간이다.
목차
온 우주보다 더 큰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산책이 시가 될 때
행복을 믿으세요?
11월의 푸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과일이 둥근 것은
여름을 닮은 사랑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영원 속의 하루
바다에서 바다까지
아무것도 몰라요
잘 걷고 잘 넘어져요
국경을 넘는 일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
저녁이 왔을 뿐
하나의 창문이면 충분하다
회색의 힘
진실은 차츰 눈부셔야 해
고양이는 꽃 속에
언덕 서너 개 구름 한 점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부치지 않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