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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일보의 탄생 : 언론에서 기업으로
조선˙동아일보의 탄생 : 언론에서 기업으로
- 자료유형
- 동서단행본
- ISBN
- 9788976964403
- DDC
- 070.9-23
- 청구기호
- 071.1 ㅈ122ㅈ
- 저자명
- 장신
- 서명/저자
- 조선˙동아일보의 탄생 : 언론에서 기업으로 / 장신 지음
- 발행사항
- 고양 : 역사비평사, 2021
- 형태사항
- 319 p. ; 23 cm
- 주기사항
- 권말부록: 자료 소개, 부록 1 동아일보사의 『취체역회결의록』; 부록 2 조선 언론기관의 통제지도책 ; 부록 3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 307
- 서지주기
- 참고문헌: p. 315-319
- 일반주제명
- 언론사
- 일반주제명
- 신문사
- 가격
- \16000
- Control Number
- bwcl:116182
- 책소개
-
마침내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두 신문
유구한 역사 속에 감춰진 사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정책을 바꾸게 만들었다. 헌병 경찰을 이용한 강압적인 무력통치에서 이른바 문화정치로의 변화다. 통치방침의 변화에 따라 언론통제가 완화되면서 ‘조선 민족의 불평을 완화해주는 안전판이며 민심의 흐름을 살피는 바로미터’로 한글신문 창간이 허용되었고, 이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창간되었다.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동아일보는 같은 해 4월 1일 창간되었으니, 2020년에 두 신문 모두 창간 100돌을 맞았다. 저자는 이 두 언론에 성대한 상찬과 비판이 있어야 할 100주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쟁도 없이 사사(社史) 속 궤변이 인용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동안 연구한 일제하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과 경영, 폐간에 이르는 과정을 파헤쳐 근대 신문의 역사를 구성했다. 보통 우리는, 일제 말 천황을 떠받들고 친일 기사로 도배되었지만 적어도 창간 초기에는 정간과 압수를 당할 정도로 항일을 내세웠다고 믿는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가해진 몇 번의 압수와 정간 사태,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이 두 신문을 ‘민족의 정론지’로 인식해온 이유였다. 사실, 또 그렇게 학습해왔다.
우선, 하나의 큰 사실부터 바로잡는다. 바로, 조선일보의 창간 주체다. 대체로 많은 사람이 조선일보의 창간 주체는 대정실업친목회라는 경제단체로 알고 있다. 그에 맞게 조선일보는 비정치적인 ‘실업신문’을 표방했으며, 그 창간 목적이 주효했는지 조선총독과 경무국장으로부터 창간 허가를 따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창간 주체는 대정실업친목회가 아니라 정확히 대정친목회이며, 이 단체는 내선융화운동을 목적으로 경성의 유지들이 조직한 친일단체였다. 그런데 창간 초기 조선일보는 불온한 기사로 23회에 달하는 발매 반포 금지와 두 차례의 정간을 당하며, 30건의 기사를 압수당한다. 정간과 압수는 곧 일제의 탄압을 의미하며, 이는 곧 저항(항일)으로 연결된다. 조선일보의 ‘항일’ 이미지는 이때 처음 대중에 인식되었다. 이 지점에서 큰 의문이 생겨난다. 친일단체가 만든 신문사의 항일 기사라니! 이 아이러니와 미스터리는 무엇인가?
당대에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개벽』 필자는 조선일보가 대정친목회의 주의·강령을 돌아보지 않고 경영난 타개를 위한 신문 판매 확장책으로 항일 기사를 게재했다고 본다. 기업 경영에는 능했지만 신문 경영에는 어설펐고, 3·1운동 이후 독립의 열망을 끓어오르던 세태를 무시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당대 의제를 선점하지 못한 채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조선일보는 결국 최다 압수를 당하고 독자를 만나지 못한다. 아무리 민족적 기사를 쓰고 항일 기사를 쓴들 그것을 읽는 독자를 만나지 못하면 기사의 생명력은 없다. 조선일보에게 영업용 항일 기사는 단기적으로 득이 되지 못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