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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트 폰 랑케와) 근대 역사학의 형성 : 역사연구방법론과 역사사상
(레오폴트 폰 랑케와) 근대 역사학의 형성 : 역사연구방법론과 역사사상 / 이상신 지음
내용보기
(레오폴트 폰 랑케와) 근대 역사학의 형성 : 역사연구방법론과 역사사상
자료유형  
 동서단행본
ISBN  
9791191161083
DDC  
901-23
청구기호  
901 ㅇ729ㄱ
서명/저자  
(레오폴트 폰 랑케와) 근대 역사학의 형성 : 역사연구방법론과 역사사상 / 이상신 지음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형태사항  
549 p. ; 24 cm
주기사항  
2022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서지주기  
참고문헌(532-539 p.)과 색인(540-549 p.) 수록
입수처  
대한민국학술원 기증
주제명-개인  
Ranke, Leopold von , 1795-1886
일반주제명  
역사학[歷史學]
기타저자  
이상신
가격  
\37000-기증
Control Number  
bwcl:120350
책소개  
이 책은 근대 역사학의 창건자로 불리우는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역사연구방법론과 이론 및 역사사상을 정리한 저술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문헌학적·비판적 방법을 도입하여 사실주의 원칙을 세움으로써 역사연구와 서술을 학문화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헌비판의 경험론적 방법 외에도 역사를 “정신화”시켜서 “정신적 통각”을 통해 역사적 사실들과 그 발전들을 파악하는 직관적 이해방법을 또한 활용하면서, 역사연구에는 철학적, 시문학적 정신이 다 함께 필요하며, “역사서술은 학문이자 동시에 예술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로써 그는 역사를 정신적, 이념론적으로 사유하는 이상주의와 비판적, 경험론적인 사실주의를 결합시켰다.
랑케에게 역사는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충돌 속에 형성되는 “역사적 순간(계기)”을 통해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그는 양자를 같이 주목했다. 개체들이 그 자체의 통일성을 지닌 역사적 개성들, 민족 및 국가들, 역사적 시대들이라면, 보편적인 것은 일반적 조건 및 상태, 또는 역사 속에 항시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역사적인 것이다. 역사 발전에서는 후자가 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지만, 전자의 결심과 행위를 통해 비로소 “역사적 순간”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그는 개체들에 대한 연구를 선행시켰고, 이를 근거로 하여 보편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도모했다.
랑케에게는 개체와 보편적인 것의 상호작용 속에 형성되는 보다 더 높은 개체들로서의 “모든 시대들은 신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자체의 고유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역사가 그들 개체들의 각각의 발전들에 의한 혼돈은 아니다. 그들은 신과의 직접성을 통해 공동의 작용 속에 있으므로, 역사는 하나의 의미 있는 진행이다. 이러한 그의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에서는 역사의 직선적, 전반적인 진보가 인정될 수 없다. 역사에는 퇴보도 있고, 해체와 생성이, 몰락과 재생이 함께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 속에서도 연속성을 보여 주면서 발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발전들, 시대들은 그 연속성 속에서 관찰 및 파악되어야 한다.
랑케의 연속성 사상에서는 모든 역사적 생의 성과들은 역사의 필연적인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계승 및 지속될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연속성이나, 연속성을 파기하는 변화는 모두 다 비자연적, 비역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혁명을 거부했다. “역사발전은 진화로서이지, 혁명으로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분적, 점진적 변혁을 통한, 또한 내부의 대립 없이 전체 의지로서 이룩하는 혁명들은 긍정적인 발전으로 보았다. 그에게 역사의 모든 변화 및 발전들은 주로 개인들에게서 표명되는 자유와 주로 집단들에게서 나타나는 필연과의 종합이며, 이것은 “역사화”되면서 역사적 필연성으로 합리화되었다.
랑케는 역사를 항상 정치생활과 종교생활을 결합시켜서 서술했다. 이것은 그가 국가를 “현실적·정신적인 것”으로, “신의 사상”으로, 그리고 교회를 종교의 대변기관으로 보면서, 국가와 교회는 다 함께 하나이자 동일한 두 개의 정신적 제도들이므로 정치사와 종교사는 분리될 수 없다고 사고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문화를 시문학, 예술, 학문 등의 좁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생활의, 법과 인간사회의 모든 기반들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확대시켜서 파악했다. 그에게 문화는 모든 시대들에서 가장 강력하게 연속성을 보여 주면서 전개된다. 그리하여 그는 문화에 관해서는 정치와 종교에 비해 가장 적게 서술했지만, 모든 역사생활을 문화 속으로 용해시켰다. 결국 그에게 국가와 종교 및 문화는 역사의 세계의 운반자들이 된다. 이것은 그의 종합적인 역사관찰에서 세워진 인식이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 행위 및 그 작용요소들을 가장 중요시하면서도, 국가의 재정정책과 경제생활, 사회운동 및 각 신분들의 관계 등에게도 관찰시야를 당시까지의 어떤 누구보다도 넓게 확대시켰다. 더욱이 그는 유럽 각국들의 역사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역사로, “하나의 국가들의 체제”의 부분들로 파악함으로써 보편사적 역사가의 경지로 나아갔다. 그가 이와 같이 여러 민족 및 국가들의 역사들을 통일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개체 사상과 역사주의적 사고에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역사를 정신화시켰으므로 그것이 가능했다. 그에게 “모든 것은 보편적이자 개별적인 정신생활”이므로, 모든 지역들 및 시대들의 역사들이 전체적, 통일적으로 관조 및 이해될 수 있고, 이로써 “인류의 공동체적 삶의 원리” 속에 진행되는 세계사가 보편사적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랑케는 객관성을 어떤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요청하는데, 역사학에서 그를 대변 및 상징하는 개념이다. 그에게 객관성은 모든 역사적 개체들 및 세력들을 비당파적으로, 공평하게 서술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랑케의 시혜가 아니라, 그들이 다 함께 역사형성에 참여했으므로 “다 함께 진열”될 역사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진실은 그러한 진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파악을 위한 그의 “자기해소”는 인식주체를 해체하는 것이므로 인식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회의를 불러일으키지만, 그에게는 역사의 거대한 진행 속으로 자신을 침잠시켜 그 흐름과 함께 호흡하면서 철저하게 인식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그에게서는 자기해소와 대상에의 몰입이 양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다 함께 진열”과 “자기해소”는 모든 사실들과 발전들에 대한 공평한, 공정한, 민주적 방법으로서 모든 역사적 생에 대한 윤리적 태도이며, 그의 경건성에서 나온 것이다.
랑케는 흔히 국가주의적, 보수적 역사가로 간주되어 오면서, 19세기 말의 제국주의적 발전과 20세기 전반의 양차 세계대전의 비극에 대해 사상적, 학문적 책임이 그에게 전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와 권력을 동일시했던 그의 이론은 국민의 생존권과 안녕, 국가의 자주성과 독립성, 그리고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에게 “강대세력들”은 약소국들의 권리와 자주성을 보증하는 “권리의 체제”이며, 국가들 간의 투쟁에서 승리는 도덕적 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보수성은 모든 기존 체제와 문화는 역사적 필연성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역사주의적 사고에서 세워진 것이다. 요컨대 그의 국가 및 권력사상은 결코 배타적, 민족주의적인 것도, 패권적, 제국주의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의 보수성은 역사학적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서 결코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흔히 그러했듯이, 그의 사상도 후세에 오용되었던 것이다. 그는 국민주권론적 개혁세력과 군주제적 보수세력이 대립하던 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어느 편에도 당파적 참여를 하지 않은 채, “제3의 방향”을 모색했다. 그것은 그가, ‘군주는 자신의 원리를 유지해야만 하되 시대의 방향 속에 있는 바를, 그리고 국민주권론으로부터 일어난 힘이 행하게 될 바를 수행해야 하며, 의회들은 폐지될 수 없지만 수정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던 바에서 극명하게 표명된 개방적인 중도적 보수주의였다.
랑케에게 모든 역사적 개성은 해당 시대의 산물이다. 그도 역시 한 시대의 역사가로서 시대적 한계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19세기 최대의 역사가”로, “근대 역사학의 창건자”로 불리는 것은 그가 경험론적인 비판적 방법과 직관적 이해방법을, 합리적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적, 철학적 사유를 종합하여 사실과 이념을 결합시켰고 개별 민족 및 국가들의 역사들을 통일적으로 관조하는 보편사적 역사가였다는 점에 있다. 그는 여러 영역들, 작용요소들을 가장 넓게, 가장 깊이 연관관계적으로 파악하면서 역사진행의 주된 흐름을 제시하고자 했던, 실로 당시까지로서는 가장 종합적인 역사가로서 일찍이 구조사적이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에 등장했던 구조사적 연구와 그 후의 일상사적, 분야사적 연구들은 랑케를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연구자는 그에게서는 역사 전체 속에 전개되고 있는 정신의 진행을, 훔볼트에게서는 “역사적 이념”을 파악하고, 그것과 함께 역사를 서술할 때 비로소 역사가의 이름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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