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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저자 : 이순예
출판사 : 한길사
출판년 : 2013
ISBN : 9788935660094

책소개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 저자는 예술작품이 활성화시키는 반성능력이 사회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간파한다. 아울러 예술에 자율성을 부여한 근대 사상가들의 고민이 오늘날 우리에게 사유의 지렛대로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서구 계몽은 이성의 빛을 신뢰하고 진보에 미래를 걸었지만,

진보의 결과로 도래한 유토피아에서 시간은 정지되어버렸다.

시간성의 회복이 관건이다.

감성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펼쳐질 수 있다.

21세기 예술이 담당해야 할 과제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재구성은 지구상에 자연스럽고 안정된 질서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모든 것을 들쑤셔 인류가 ‘효율성’의 미망에 사로잡힌 채 움직이도록 몰아가고 있다. 움직임에는 가속도가 붙고 행복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망을 언제 포기했는지 현대인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근대성 기획의 가장 탁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살면서도 그런 기획을 왜 추진했는지, 애초의 약속 따위는 잊고 사는 현대인은 일상이 그저 피로할 따름이다. 피곤한 현대인은 어떻게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가.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명의 피로감을 한번 파헤쳐보고, 아직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생각해보려는 견지에서 시작됐다. ‘문명의 피로감’이라는 표현에는 이 문제를 구조적인 차원으로 옮겨놓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21세기로 접어든 현시점에서 이른바 ‘근대성의 원형’을 다시 본격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까닭은 오늘날 인류가 겪는 문제가 바로 근대성 기획의 결과물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강압적으로 재구성해야만 했기 때문에 급기야 자기 교정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깨달음은 소중하다. 문명인의 재계몽은 근대 시민사회 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연구하는 생산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근대는 사회영역의 분화와 개인의 분열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기획이었다. 이러한 이념을 사회적으로 실천했던 서구 시민사회가 예술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바로 그 분화된 영역들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유기체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상의 세계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칸트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서만 <순수이성 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으로 생긴 형이상학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독일 비판철학 전통 위에서 합리성을 자기 반성시키는 비합리성의 힘에 주목한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연구해온 저자 이순예(이화여대 강사/철학 박사)는 수년에 걸친 고민의 결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영웅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을 소재로 서술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물론이고, 본문(42쪽, 44쪽, 48쪽, 129쪽, 134쪽, 305쪽, 316쪽, 332쪽, 360쪽, 395쪽, 398쪽)을 통해 예술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이론적 실천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도르노 예술론의 사회적 가능성

아도르노는 합리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세기에 이르도록 서로 대립적이라고만 여겨졌던 비합리가 합리성을 고양시키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부정변증법이 사유의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유가 참이려면 어쨌든 오늘날에는 사유 자체에 반대해서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면 갈 방향도 제대로 찾는다는 아도르노의 생각만큼 주체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주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를 토대로 아도르노는 철학적 미학과 사회학을 결합한 독특한 이론을 구성했다. 이는 예술을 통해서만 가능한 결합이었다. “철학적 반성은 개념으로 비개념적인 것을 확인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구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적 구성이며, 예술은 미적 구성이 경험적으로 실현되는 유일한 영역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가 삶의 토양을 돌보고 삶의 방식 자체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는 아직 뚜렷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처지다. 저자는 인간이 타고난 이성능력들 가운데 판단력을 활성화시킬 의도로 예술론을 전개한 아도르노에 주목한다.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사회구성체론과 관련해 예술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던 적이 있었다. 80년대 리얼리즘 논쟁이다. 하지만 이 논쟁의 결과 예술은 독자적인 의미를 크게 훼손당했다. 이른바 진보진영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제출한 한국적 반영론은 이론이성에 전권을 부여하고 열정적으로 예술의 사회과학화를 추진했다. 그러한 까닭에 인간의 정신과 심장을 도구적 이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계몽해야 할 예술은,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예술론이 그가 제시하는 방식 그대로 유효하다거나 그의 자본주의 분석이 올바르기 때문에 철학적 미학을 사회의 전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도구적 이성의 폐해를 교정하는 가장 강력한 계기는 판단력’이라는 아도르노의 판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근대인-미적 주체의 탄생

합리와 비합리가 그 어느 하나의 용어로 수렴될 수 없을 만큼 혼재된 긴장의 시대를 ‘미학의 세기’라고 지칭한다면, 이는 세기의 과제였던 개체구성 기획에 주목한 결과다. 합리와 비합리를 동시에 모두 고려하는 이러한 관점은 살아 있는 구체적 인간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겠다는 시대정신에도 부합된다. 미학의 세기에 인간은 ‘분열’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근대적 분열은 객관성에 근거하고 있다. 개체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분열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일은 미학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 실러의 <군도> 속 프란츠를 통해 분석이 파괴를 불러오는 현상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 인정의 계기를 통해 절대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근대인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 미적 대상은 현상계에 물자체의 흔적을 끌어들인다. 이런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 경험적 대상성의 형식을 딛고 물자체의 흔적에 도달하는 사유를 하는 계몽인, 즉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계몽인은 이원론적으로 분열된 존재를 극복하고 온전한 주체로 자신을 정립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구성되는 미적 주체가 근대인이다.

또한 박경리의 <토지>에 드러나는 근대적 시간성에 주목해 체계와 진리의 어긋남에서 비롯되는 분열의 구조를 지적한다. 특히 이용, 최치수, 윤씨 부인의 내적 분열을 분석하며 이들을 근대인으로 불러내는 서술은 흥미진진하다. 더불어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며, ‘이 꽃은 아름답다’고 사람들이 말을 하는 사태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 꽃과 아름다움 그리고 쾌감, 이 셋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칸트는 ‘이 대상 X는 아름답다’는 김식판단의 독립성을 네 가지 측면(질적인 면, 양적인 면, 관계의 면, 양태의 면)에서 분석해 각각의 계기들로 나누어 서술했다.



비판기획이 걸은 객관화의 충동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문명사는 인격적 ‘통일’의 그 찬란한 순간을 가슴속에만 간직하지 않고 제도화시킨 후 모두에게, 아직 형이상학적 분열을 사회적으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지역의 구성원에게까지 적용해온 궤적을 남겼다.



“이런 객관화의 충동, 모두가 다함께 좋은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선’의 충족요건임이 분명할 터인데,

문명사에서 이런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았다.

모두 다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의지가 집단의지로 뭉치게 되면,

개인과 집단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개인의 억압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집단의지의 실현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린 것일까.”(214쪽)



근대인이 ‘미적’ 주체를 객관화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여긴 까닭은, 무엇보다도 통일된 순간을 주체의 내면에서 의식하는 상태란 너무 불안정하다는 사정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통일된’ 상태에 도달하고 싶었고, 철학자들은 그 통일된 주체를 토대로 사회와 우주의 질서를 논하고자 했다. 그 ‘순간적 통일’을 영속화시키는 프로그램을 계발할 필요에 칸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했고, 결국 객관화된 근대의 기획이 열정적으로 추진되는 역사가 전개되었다. 헤겔은 이 프로그램의 철학적 완성을 위해 매진했고, 마르크스는 완성된 프로그램의 객관성은 현실변혁의지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실천 프로그램을 제출했다. 칸트의 불안하지만, 순수하게 의식의 활동성에 기초한 비판문법은 19세기 사상가들을 따라 객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 객관적인 프로그램들은 근대의 부정적인 결과를 지구상에 불러들인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탄핵받았다.



헤겔-절대이념의 감각적 가상

헤겔이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데서도 예술은 칸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체계완성을 수행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독일 관념론 철학체계의 완성자인 헤겔과 그런 철학이 시작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고 평가되는 칸트 사이에는, 예술론을 둘러싸고도 무시하지 못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칸트가 통합을 매개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가상이라는 위상을 예술에 부여했다면, 헤겔은 이를 체계의 이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가상으로 뒤바꾸어놓은 것이다. 칸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미학논의의 전개과정은 미학이념의 객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드러나는 감정의 도구화 경향에 주목한다. 절대이념의 감각적 가상으로서의 예술이란 예술적 ‘처리’에 어떤 형태로든, 비록 형식적으로나마 새로움을 보탤 여지를 전혀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은 테제다.

이처럼 완성된 이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이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예술에 부과된 까닭은 명백하다. 바로 예술에서 사적 자의성을 털어내고 보편타당성을 부여받은 ‘감정’을 감각적 드러냄의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 기획은 역사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 시민예술은 철학적 사유의 치밀함과 감정을 동원한 전략의 탁월함에 힘입어 ‘이념의 복무’와 ‘감각적 세련’이라는 두 과제를 수행하면서 찬란하게 꽃피웠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그 찬란함의 허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화려한 장식 아래서 삶이 공허하게 굳어지는 과정을 은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파시즘의 등장이 그런 공허함의 역사철학적 귀결이었다는 분석까지 나온 터다.



마르크스주의-실패한 혁명, 말레비치-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보는 화가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적 사유와 경제법칙을 내적으로 융합시킨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철학과 경제학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원리에 따르는 두 영역을 나란히 묶어놓은 이론구성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거듭 ‘해설’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이해된 자본주의 운영원리를 ‘인식’한 후,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의 장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 어떤 계기를 통해 보장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핵심은 ‘노동하는 대중’, 즉 노동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다. 이 개념은 근본적으로 변혁론 구성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변혁론은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 즉 착취 메커니즘을 터득한다는 전제를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현실에서 아직 ‘자본가의 무덤을 파는 존재’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노동대중을 프롤레타리아로 존재이전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만 혁명적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브레히트와 뮐러의 작품을 통해 지난 시기 실재했던 위대한 인간적 가능성의 순간이 충분히 만개되지 못하고 주저앉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는 프롤레타리아라는 집단을 행위의 주체로 내세움으로써 비판문법을 정지시킨 결과였다.



“계몽의 전통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말레비치에 이르러 극단적인 변형을 경험한다.

말레비치가 인간의 ‘보는 일’ 영역에 도입한 새로움은 정말 ‘완전히 다른’ 새로움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더 이상의 새로움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

그런 태도의 급진성이 새롭다는 개념의 내포를 채우고 있다.

‘논리의 적용’이 현실의 재구조화로 직결되는 정치학은 계몽의 기획을 기획의 정치로 세속화시켰다.”(363쪽)



의식의 계몽을 정치적 결과물로 육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지리적으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이었던 소비에트 사회구성체에서 실행된 기획정치는 인류의 문명사에 전무후무한 역사철학적 경험을 보탰다. 계몽의 육화를 구조적인 폭력으로 경험한 공동체가 지구상에 실재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인류에게 간단하지 않은 반성을 촉발하는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안티테제로서의 예술

세이렌 구역을 지나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는 오뒷세우스. 노래하는 요정들과 배를 탄 항해자 일행이 만나는 이 ‘사건’을 시민사회에서 계몽과 예술이 맺는 관계에 대한 예시로 읽는 독법은 어느덧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지난 시기 한국의 예술담론은 세이렌의 노래를 예술과 계몽의 짜임관계에 위치한 알레고리에서 이탈시켜 ‘리얼한’ 현실관계에 긴박시켰다. 주인은 노래를 즐기고 노 젓는 수행원들은 즐김의 가능성을 강요하는 부당한 노동분업을 서사시에 등장하는 ‘사건’에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이러한 투사는 현실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부당함을 지적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비판은 지난 시기 한국에서 예술을 창작하고 수용하는 이론적 토대였다. 세이렌 알레고리를 노동분업의 사회현실에 투사해 사회과학 담론으로 형질변형시키는 작업은 예술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예술은 시민사회 구성의 핵심원리인 ‘개별성’에 주목할 수 있는 요인을 갖는다는 점에서 사회과학과 다르다. 그리고 이 차별성 때문에 더 큰 가능성을 갖는다.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그 개별성을 실현시키는 조건은 집단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킴으로써 예술은 시민사회구성의 본질적인 문제에 파고들 수 있다.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카프카와 브레히트가 세이렌 알레고리를 해석하는 가운데 드러낸 그들의 예술관에 주목한다.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비합리

계몽은 내세가 아닌 지상에서 행복을 누려보겠다는 인간의 투지로 오늘날까지도 간단없이 이어져왔다. 처음과 달라진 점은 투지는 여전하지만 행복은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이 주도권을 확보하고는 행복마저 합리화하는 ‘일탈’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급한 일은 이 구도를 사회적으로 계몽하는 일이다. 근대성 논의는 경제중심주의로 재편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이 분명 다른 가능성도 내장한 능력임을 드러내는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대사회의 병리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모색하는 견지에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아도르노의 예술론에 큰 기대를 건다. 비대칭적으로 발전해나간 인간의 이성능력에 다시 균형을 잡아줄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체계가 그냥 객체가 아니라 개인이 참여해서 만들어나갈 무엇이라면, 개인이 먼저 자신의 욕구와 지향에 대해 뚜렷한 의식을 지니고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에 21세기는 주목해야 한다.

아도르노가 예술론을 통해 제시하려는 전망은 인간존재의 이원성이 체계와 구조의 역동성을 보장하고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근대가 체계의 완강함으로 인간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갔다는 진단에 따라 근대에 내장된 ‘비합리’를 저항의 거점으로 내세우는 논리다. 예술은 그 고유한 형식의 힘으로 비합리가 ‘사적 주관성’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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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시작하기 전, 짧은 생각들|프롤로그

어떤 전설 21

영웅 아이네이아스 이야기 22

예술과 권력---바티칸의 라오콘 군상 26

도망치는 아들 31

나는 나의 기억이다 35

◆우연의 진정성 42

◆뉴턴의 업보 44

◆빛과 무질서 속에서의 예술 48



1 다시 처음으로



출발점으로서의 근대성

분석과 자연스러움 55

과학주의의 승리 59



자기 계몽과 질서구성

마음껏 따지고 구분하라! 63

투항의지로 변질된 자유의지 66



근대 시민사회와 예술

칸트와 아도르노 69

교양시민 73



2 예술과 비판



비판문법을 완성시키는 예술

개념들, 도구들 79

근원의 빛 86

비판이론의 전망 91



3 칸트의 『판단력 비판』



심중에서 우주로

지구는 숙명이다 105



근대적 분열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투사하는 현재 125

◆피와 살이 확장되는 순간 129

◆찬란함은 누리고 사과의 노동은 부정한 대가 134



미적 주체

파괴를 부르는 분석 137



더하기 하나|『토지』의 근대인들

성공한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 149

체계에 승복하지 않는 인격 152

또 다른 질서 159

윤씨 부인의 부정사유 165



순수한 미적 판단의 연역

왜 연역이 필요한가 169

판단력 비판 §§30~42 연구 180



더하기 둘|용의 승천

마음의 보편성 197

농부 이용의 승리 200



4 비판문법의 객관화



미학적 예술체계

고정하고 싶은 충동 207

매개를 프로그램으로 하는 분리 216

예술과 철학의 결합 223

헤겔 231



마르크스주의

실패한 혁명 245

시간적 변화의 공간적 정지, 『공산당 선언』 268

‘사회적 노동범주’의 역사철학적 한계 282

학습극 304

◆『조처』 305

빵을 순수기표로 만든다 312

◆『임금삭감자』 316

비판문법과 대중 326



5 체계의 승리



말레비치의 극대주의

개념으로 전복되는 감성 331

◆타자가 자신과 동형이 되는 순간 332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중단시키는 창작 340

대상이 제거된 사막의 사실성 353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정신의 자기 부정 360



6 너무 멀리 왔다



세이렌, 무조건적인 것

포세이돈의 저주 367

세이렌의 노래 378



안티테제로서의 예술

비물질을 제압하는 과학주의 381

시민적 개인은 어디서 오는가 385

세이렌의 침묵과 욕설 393

◆프란츠 카프카 395

◆브레히트 398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비합리

현재는 근대성의 구성물이다 401



서희―탈주술화된 세이렌|에필로그

문명인들의 내면세계 407



참고문헌 419

찾아보기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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